윤석열 후보 측에선 ‘패밀리 리스크’가 전면에 등장할 경우 이재명 후보보다 더 불리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우선 윤 후보가 ‘공정’과 ‘상식’을 명분으로 정치권에 등판했는데, 김건희 씨 과거 이력들이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 후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까지 진두지휘한 경험으로 내로남불 프레임에서도 자유롭기 힘들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가족 네거티브 공격에 무너지면서 다된 밥으로 불리던 대선 승리를 놓쳤던 ‘2002년 이회창 악몽’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대쪽 판사’ 이미지로 정치권에 등장, 대권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첫 대선 등판 무대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집권여당이 외환위기 책임론에 휩싸였고, 이인제 경선 불복 여파였다.
절치부심 재도전했던 2002년 16대 대선은 이회창 후보가 ‘일부러 지려고 해도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라는 것이 당시 상황 논리였다. 이회창 대세론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판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최근 윤석열 후보가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의혹으로 난타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이회창 후보도 거센 네거티브 공세를 받았다. 호화 빌라 거주 논란 등 여러 이슈를 잠재웠던 이 후보였지만 결정타는 막을 수 없었다.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보도로 신문 지상이 연일 도배되던 때인 2002년 5월 21일, 육군 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는 “이회창 후보 장남 정연 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과 전 병무청장 등이 대책회의를 했다”고 폭로했다. 정연 씨 군 문제는 1997년에도 제기된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땐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굶어서 몸무게를 줄였다’는 내용이었다. 국민들은 병역비리보단 도덕적인 문제 정도로 받아들였다.
김대업 폭로 파장은 컸고 이 후보가 직접 나서 “결백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고 반박했지만 당시 여당은 “믿을 수 없다”고 재반박하면서 무려 5개월여간 난타전을 이어갔다. 김대업 씨가 제기한 ‘병풍 사건’은 검찰이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끝이 났다. 검찰 최종 수사결과 발표는 대선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2002년 10월 25일이었다. 김대업 씨의 거짓말이 들통 나면서 민주당 네거티브 전략도 실패로 끝났지만 이 후보 대쪽 이미지는 이미 상처가 날 대로 나 있었다. 대선 승리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 돌아갔다. 당시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한 국회의원은 옛 기억을 가다듬으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대법관으로 근무할 때 주심을 맡은 건에 대해 서슬 퍼런 독재정권 하에서도 사회적 약자 편에 서 소신 있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태도 때문에 ‘대쪽’이라는 별칭이 붙으면서 신망 있는 법조인이 됐다. 감사원장 시절에는 당시 정권과 관련된 핵심부서 비리라고 하더라도 성역을 인정하지 않고 엄정한 감사활동을 하면서 보수정당이 모셔올 수 있는 최고 후보였고 앞으로도 이런 후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대업 씨의 입놀림에 당했다. 사실이 아닌 거짓말에도 당할 수 있는 것이 대선판 네거티브다. 국민의힘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는 우선 ‘가짜 경력’ 의혹에 휩싸였다. 2007년 수원여대 초빙교수 지원서 경력을 거짓으로 기재한 의혹이 YTN을 통해 보도되자 민주당은 12월 14일부터 일제히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김 씨는 이 지원서에 2002∼2005년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이사로 재직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협회는 2004년 설립됐던 사실이 드러났다. 2002년부터 재직했다는 설명은 기록상 맞지 않은 셈이다.
안민석 도종환 권인숙 서동용 의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12월 15일 “김건희 씨가 2013년 안양대에 제출한 이력서에도 허위 수상경력을 적었다”고 주장했다. 2013년은 윤 후보가 김 씨와 결혼한 이후다. ‘윤 후보와의 결혼 전 일’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안 의원 등은 이날 보도자료를 배포해 “김건희 씨가 ‘2004년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을 수상했다고 했지만, 주관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확인한 결과 대상이 아닌 어떠한 수상자 명단에도 김건희나 (개명 전 이름인) 김명신 씨의 이름은 없었다”고 밝혔다. 안민석 의원은 12월 17일 김 씨 문제가 된 이력들에 대해 “18가지 중 7가지가 결혼 후”라며 “가짜 인생과 또 허위 이력, 채용 비리 이런 것을 두둔하는 윤석열 후보께서 과연 공정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씨의 또 다른 비리 의혹도 내놨다. 그는 12월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60억 원대 자산가인 김건희 씨가 건강보험료 7만 원을 낸 것이 공정한가”라고 물으며 부당 납부 의혹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지역 가입자는 재산 규모에 따라 건보료가 산정되는데, 많은 재력가들이 ‘1인 법인’을 만들어 직장 가입자로 둔갑한다”며 “(김 씨는) 사실상 탈세 수법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주장했다.
김건희 씨 사태가 불거진 뒤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자들만 만나면 “김건희 파장이 어떻게 결론날 것 같냐”고 묻는다. 그만큼 국민의힘 내부에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정하고 상식적인 후보라는 가치가 윤석열의 최대 무기인데 김건희 의혹이 대선판을 흔들면 윤 후보는 무장해제를 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선대위 지도부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12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사과 시점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내가 보기에 후보께서 전반적으로 완전히 파악하시면 본인 스스로 곧 사과하실 거라 본다”고 말했다. 우물쭈물하면 절대 안 된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준석 대표도 17일 “사과와 별개로 해명을 준비하는 모든 순간에서 저자세여야 한다”고 했다.
김건희 씨 파장은 윤 후보 지지율에 직접적 충격을 던지고 있다. 12월 17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지난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 대상,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고)에 따르면 윤 후보는 35%,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36%의 지지도를 기록했다. 윤 후보가 오차 범위 내인 1%포인트 차로 이 후보에 뒤지는 ‘골든크로스’를 허용한 셈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한 관계자는 “후보가 아닌 후보 부인이라 당이나 선대위 차원의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빠른 대응이 힘들다. 시간을 끌면 절대 불리한 것이 네거티브 대응인데 2002년 대선꼴이 날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민주당은 12월 14일 YTN의 보도로 촉발된 ‘김건희 허위 이력’에 대해 파상공세를 취했다. 민주당 선대위 내부에선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지지율이 역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선대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당과 선대위 차원에서 그동안 준비를 하고 있었다. YTN 보도가 신호탄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후보와 가장 가까운 가족의 문제라는 점에서 치명타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했다.
김건희 씨 관련 보도에 대한 윤 후보 해명 태도, 국민의힘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당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12월 16일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들을 모두를 얼어붙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 후보 아들 동호 씨가 2019~2020년 사이 상습적으로 불법도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기는 이 후보가 여권의 유력 차기 잠룡으로도 거론되고 있던 시기라는 점에서 아들의 ‘일탈’은 더 큰 충격을 줬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 아들이 2019~2020년 사이 ‘이기고 싶다’라는 닉네임으로 미국 서버 한 온라인 포커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작성자 ‘이기고 싶다’는 이 게시판에 포커머니 구매 글을 100건 넘게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 강남 등의 도박장에 드나들었던 후기도 여러 번 남겼다. 포커 외에도 금액 제한이 없는 불법 ‘파워볼’ 홀짝 게임에서 500만 원을 잃었다는 내용의 게시글도 올리면서 스스로를 ‘도박 중독자’ ‘도박꾼’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아 형법 246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상습범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보도 후 이재명 후보는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일정 기간 유혹에 빠졌던 모양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었다”며 “아들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동호 씨 역시 “저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상처 입고 실망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깊이 고개 숙였다. 앞서의 선대위 소속 의원은 “선대위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맞다. 후보 가족의 문제이다 보니 선대위로선 알 길이 없었다”면서 “이 지사는 어설픈 해명보단 빠른 사과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본인이 직접 사과하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 후보의 빠른 사과는 윤석열 후보의 ‘우선 진상규명부터’라는 부분과 대조를 이루며 호평이 우세했다. 민주당 선대위 내부에 ‘수습이 가능하다’며 안도의 기류가 퍼질 때쯤 또 다른 악재가 날아들었다. 이 후보 아들이 한 온라인 게시판에 마사지 업소가 위치한 지역과 상호를 언급했고, 이를 두고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선대위는 “글을 올린 것은 맞지만 성매매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도 12월 17일 “본인이 맹세코 아니라고 한다. 부모 된 입장에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완결판
며칠 사이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은 거대 양당 선대위는 그야말로 초비상모드다. ‘패밀리 리스크’라는 대형 악재가 동시에 터진 이상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선거 승패가 달려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사실관계 파악이 먼저’라던 윤 후보가 12월 17일 “제가 강조해 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아내와 관련된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달게 받겠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께 다가가겠다.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공정’에 유독 민감한 2030 표심을 의식한 것이다.
이재명·윤석열 후보 측 모두 네거티브 전에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정책실종’이라는 비판이 거세긴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패할 경우 아들 문제로 두 차례나 고배를 마셨던 ‘이회창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윤석열 후보와 동병상련이다. 가족 문제라 후보 본인 말고는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면서 “어느 쪽이 더 센 걸로 상대방을 공격해 자신의 약점을 덮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윤석열 선대위 관계자도 “저쪽에서 후보 부인으로 먼저 시작한 싸움이다. 후퇴가 있을 순 없다. 네거티브엔 네거티브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선거판 생리”라고 말했다.
정가에선 상대 후보 가족들을 향한 공세가 갈수록 더 세질 것으로 점친다. 윤 후보 측에선 동호 씨의 또 다른 사례들을 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이 후보 부인 김혜경 씨와 관련된 건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 측 네거티브 전담팀 관계자는 “이 후보 외에 나머지 가족들(두 아들, 부인)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후보 측에선 김건희 씨를 집중 겨누는 모양새다. 앞서의 민주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김건희 씨는) 아직 등판도 안 했다. 솔직히 자식 문제는 부모도 어쩔 수 없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부인 될 사람은 다르다. 보다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는 게 세간의 여론”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런 상황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후보를 바꾸는 쪽이 이번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패밀리 리스크를 둘러싼 공방이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대선의 완결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김창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12월 16일 국회에서 “대선이 콩가루가 되고 있다. 시대정신에 대한 비전과 민생을 향한 정책은 없고 온통 양당 후보와 가족들의 범법행위로만 도배되고 있다”면서 “정치가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낙담과 좌절만 남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