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수탁 시장서 경쟁 중, 거래소 사업 진출 가능성도…합작 법인·지분 투자 방식 간접 참여 모양새
#가상자산 진출, 이제는 미룰 수 없다
신한은행은 최근 스테이블 코인 기술 개발에 공들이고 있다. 이사회로 참여 중인 헤데라 해시그래프와 함께 2021년 8월부터 블록체인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스테이블 코인 기반 해외송금 기술 개발을 진행해 지난 11월 말 해당 기술 검증을 완료했다. 미국의 대형 은행 JP모건이 JPM코인을 발행하는 등 해외에서 스테이블 코인 활용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스테이블 코인 기술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 화폐나 실물 자산을 기준으로 가격이 연동되는 가상자산이다. 수요만으로 가격이 오르내리며 가치가 변했던 기존 코인들과 달리 가격 변동성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가상화폐와 대체불가토큰(NFT) 등 디지털 자산을 보관·관리해주는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2021년 1월 가상자산 커스터디 전문 기업인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추진했다. KDAC은 거래소 코빗과 블록체인 기업 블로코, 페어스퀘어랩이 함께 설립한 가상자산 커스터디 기업이다. 아울러 같은 달 KDAC, 디지털 자산 금융사 비트고와 업무협약을 맺고 가상자산 전반의 커스터디 제공 및 솔루션 개발을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다른 은행들은 커스터디 사업에 한 발 앞서 뛰어들었다. KB국민은행은 2020년 11월 해치랩스, 해시드와 함께 가상자산 수탁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을 설립했다. 2021년 5월부터 가상화폐 수탁 서비스를 제공 중이며, 앞으로 NFT으로 수탁 서비스 범위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2월 17일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멀티에셋 디지털 월렛’ 시험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개발에 한창인 만큼 CBDC 상용화 시 대비하는 차원이지만, 가상자산과 지역화폐·NFT 등 다양한 가상자산의 충전·송금·결제가 가능하도록 구현했다.
우리은행은 2021년 7월 블록체인 전문기업 코인플러그와 함께 가상자산 수탁 합작법인 디커스터디를 만들었다. NH농협은행도 가상자산 수탁 전문기업인 카르도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해 지분 약 15%를 확보했다. 카르도는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가상자산 거래 및 보유량이 급증하면서 안전하게 관리해줄 수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수요가 꾸준할 것이란 판단에 따라 너나할 것 없이 커스터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고객이 보유한 가상화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예치해 해당 플랫폼의 운영 및 검증에 참여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스테이킹, 가상자산 신탁 등 여러 비즈니스를 창출해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관련법상 직접 가상자산 사업을 하기 어렵고, 가상자산을 인정하지 않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직접 사업하는 방식보다는 합작법인이나 지분 투자로 간접 진출하는 모양새다. 은행이 직접 가상자산 사업에 나서려면 은행법상 취급 가능한 업무 범위에 포함돼야 하는데 현행법상 법적 근거가 없다.
증권사 등 다른 금융사들도 이런 이유로 조심스럽게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21년 4월 캐나다 자회사를 통해 토론토 증권거래소에 비트코인 ETF 종목을 상장했다. SK증권은 가상자산 관련 투자 보고서를 내고 있고, NH투자증권도 이를 위해 가상자산 담당 애널리스트를 영입했다. 한국토지신탁은 지난 11월 후오비코리아에 약 160억 원 지분 투자를 단행해 지분 8%를 획득했다.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 진출이 목적으로, 이에 더해 NFT 발행 및 거래를 위한 플랫폼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이 향후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에 은행마다 뛰어들고 있다”며 “현행법상 직접 하긴 어렵고 당국 눈치가 보이니 합작 법인이나 지분 투자 방식으로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도 “합작회사까지 만든 것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금융권의 판단이 끝났다는 얘기”라며 “합작회사 운영 주체를 살펴보면 은행에 있던 서비스 책임자들이 퇴사해서 주도하고 있다. 전혀 관계가 없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은 관계사지만 법적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나중에는 자회사로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자산 산업, 격동기 맞이할 것"
금융권이 커스터디뿐 아니라 직접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사들은 가상자산 시장이 더 이상 각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거나 지분을 투자하기는 꺼리는 분위기다. 운영 주체가 되면 자금세탁과 해킹 등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커 고객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은행업 특성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같은 이유로 은행업이 나선다면 금융당국을 설득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비트가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도 이를 알고 있지만 가상자산 거래소들과는 접점이 적어 운영사 두나무를 컨트롤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존 금융사가 거래소 운영 주체로 나설 경우 업비트의 경쟁사를 만들 수 있고, 금융사는 당국과 밀접한 교감이 가능한 구조기 때문에 컨트롤하기가 더 쉬워진다. 이런 이유로 당국에 사업 허가를 요청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금융권의 자신감이 감지된다는 것.
토스뱅크의 최근 중소형 가상자산 거래소 인수설 역시 단순 해프닝은 아니라는 분석이 있다. 토스뱅크는 거래소 인수는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했지만, 프로비트 등 인수 대상 거래소들의 이름까지 거론된 것을 보면 실제 의지가 있었을 것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가상자산 거래소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는 단순 가상화폐 예치, 중개에 그쳤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파생상품부터 스테이킹,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NFT까지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출시 가능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가 매우 많기 때문에 기존 금융권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NFT 거래소뿐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소도 만들고 싶어 얼라이언스를 맺으려는 증권사, 게임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워낙 물밑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어 정확히 확인은 안 되지만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NFT 거래소 론칭을 준비하겠다는 기업도 있다고 들었다. 처음이 어렵지, 서비스가 한두 개만 나오면 이 시장에 참여할 기업들은 많다”며 “내년 상반기 가상자산 산업은 격동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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