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도 불질러 소방인력 분산 꾀한 듯, 계획범행 정황…아들 살인미수 전과도, ‘교토 애니’ 방화 모방 가능성
#다니모토 용의자 역시 중태에
화재 현장은 대기실, 상담실, 진료실이 기다랗게 연결된 구조로, 안쪽에는 대피를 위한 비상 통로가 따로 없었다. 더욱이 사건 당일에는 우울증 등으로 휴직한 환자들의 직장 복귀를 돕는 ‘리워크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터라 많은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NHK는 “사망자들 대부분이 몸에 화상을 입지 않은 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는 출입구 근처에서 강한 불길이 치솟아 병원 안쪽에 있던 환자와 직원들이 미처 탈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이번 사건을 방화·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다니모토 용의자 역시 중태에 빠져 자세한 범행 동기나 경위를 직접 캐지는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다니모토 용의자는 종이봉투 2개를 들고 병원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출입구 근처 난방기구 옆에 놓고는 발로 차 넘어뜨렸고, 봉투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면서 불길이 크게 치솟았다고 한다.
CCTV 영상에도 용의자의 정황이 포착됐다. 불이 붙은 후에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출입구 앞에서 양손을 펼치고 서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에 대해 수사 관계자는 “다른 환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을 막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만큼 뚜렷한 살의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또한 용의자가 살고 있던 주택에서는 ‘대량살인’이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2019년 발생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을 오려낸 신문 지면도 남아 있어 경찰은 용의자가 관련 사건을 모방한 것인지도 조사 중이다. 앞서 경찰은 용의자가 11월 하순 자택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경찰은 ‘다니모토가 사전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병원 건물에서 불이 나기 약 30분 전 “다니모토 자택에서도 작은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한다. 이 화재도 다니모토가 방화한 혐의가 있다. 이와 관련, 인터넷상에서는 “작은 불이라도 신고가 있으면 소방 인원이 출동해 분산된다”며 “만약 의도적이라면 상당히 악질”이라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
#10년 전 ‘살인 미수’ 경악할 동기
현지 매체 아에라닷컴에 따르면, 다니모토 용의자는 10년 전 살인 미수 사건을 일으킨 바 있다. 놀랍게도 장남을 살해하려다 기소됐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1년 4월 25일 새벽 6시 15분경이다. 오사카시의 맨션 1층에서 “살려줘”라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다니모토 장남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당시 다니모토 손에는 부엌칼이 쥐어져 있었다. 인근 주민은 이렇게 증언했다.
“현관문에 피가 흥건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벽에 피가 튀고 엄청난 현장이었다.”
다니모토는 장남의 뒤통수와 왼쪽, 오른쪽 어깨 등을 차례차례 찔러 상해를 입혔으며, 살인 미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판결문에는 당시 다니모토가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동기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아내와 이혼한 다니모토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2009년 9월경 재결합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절당했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혼자 죽는 것 또한 두려워 쉽게 단행하지 못했다. 결국 함께 죽으려 장남을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살인 미수 사건은 사전 준비가 면밀하게 이뤄졌다. 범행에 사용한 식칼 외에도 흉기 3개를 따로 준비했으며, 호신용 전류총과 최루 스프레이도 구입했다. 당시 다니모토 용의자 변호인 측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오사카 지방법원은 “죽고 싶다 하여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를 끌어들이려 한 것은 염치없는 행태다”며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방화 사건이 일어나기 수개월 전에 다니모토 용의자와 만난 지인은 이렇게 털어놨다. “다니모토는 정신적으로 괴로운 일이 생기면 병원에 간다. 그러고선 ‘좋아지지 않는다, 병원이 나쁘다’고 불평한다. 술을 마시고 만취해 현실도피를 하려는 것인지, 툭하면 전처와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욕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원인은 다니모토 자신에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미수 사건으로 복역한 다니모토는 이후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지인은 “다니모토가 정직을 구하지 못해 복지 도움을 받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용의자 사망 시 사건은 종결
현재 다니모토 용의자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위독한 상태로 알려졌다. 도쿄지검 특수부 출신인 오이아치 요지 변호사는 “다니모토가 사망하면 ‘피의자 사망’으로 사건은 재판 없이 끝난다”고 설명했다. 목숨을 건져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뇌 손상이 있을 수 있어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뇌 기능이 상실됐을 경우 불기소될 가능성도 있다. 오이아치 변호사는 “다만 많은 희생자를 낸 방화 살인이기 때문에 검찰은 피해자 측 감정에도 신경 써야 한다”며 “어려운 판단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범죄 피해자 지원모임인 ‘올리브’의 사토 사쿠코 대표는 “우연히 그 자리에 있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의 슬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토 씨도 15세 때 강도 살인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아픔을 겪었다. 그는 “3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의 용의자는 살인죄 등으로 기소됐지만, 책임 능력을 조사하기 위해 정신감정 중에 있다”며 “흔히 정신감정을 하면 형벌이 가벼워지곤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사견을 밝혔다.
아나운서 바바 노리코는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망한 시점에서 목숨과 함께 인권을 모두 빼앗기는 반면, 죄를 지은 쪽의 인권은 그 후 지켜진다는 점이 불합리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법률은 만능이 아니라는 점에 통감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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