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며 마이웨이…‘윤’ 내홍 수습 김종인에 맡기고 방패 뒤로 숨어
‘맞짱에 능한 승부사(이재명)’ vs ‘원거리 타법의 공격수(윤석열).’
복수 여의도 관계자들이 평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스타일이다. 극과 극이다. 인파이터는 곧바로 득점하는 일대일 싸움을 즐긴다. 논쟁적 공약을 내고 라이벌을 시도 때도 없이 친다. 공격 대상에 바짝 붙는 이 후보의 질주 본능도 여기서 나온다.
아웃복서는 주워 먹기에 능하다. 수비 위주 전술을 구사하다가 한 방을 노리는 전법이다. 윤 후보가 ‘1일 1망언’ 등으로 실점 연발을 하면서도 지지도의 방어선을 구축한 것도 아웃복싱 전략과 무관치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인파이터와 아웃복서 중 누가 대통령에 근접한지는 그때그때 다르다”며 “일대일로 승부를 짓든, 주워 먹든 득점하는 건 매한가지”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승부에선 득점만 중요한 게 아니다. 득점하고 실점하면 제로(0)가 아니냐”라며 “공격 기술이 좋다고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꼽은 대표적인 인파이터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힌다. 승부를 즐기던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연정을 비롯해 임기 단축, 행정수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정책 논쟁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아웃복서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그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시절 ‘말 한마디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다만 승부처에선 인파이터 기질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이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명박(MB)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나선 게 전형적인 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웃복싱 스타일이지만, 당시 제1야당 포지션상 인파이터 기질로 대선 정국을 돌파했다.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 3김 중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인파이터,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아웃복서에 각각 속한다.
이번 대선은 ‘인파이터 대 아웃복서’의 대결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동시다발적 변곡점에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본색이 더 드러난 점이다. 양측 지지도는 한층 좁혀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2월 20∼21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후보는 40.1%, 이 후보는 38.0%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혼전을 벌였다. 1차 조사(12월 6∼7일)와 비교하면 이 후보(0.1%포인트 하락)보다 윤 후보(5.2%포인트 하락)가 더 빠졌다.
12월 21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TBS(의뢰처) 조사에선 이 후보가 40.3%, 윤 후보는 37.4%를 각각 얻었다. 이 조사에서도 윤 후보(4.6%포인트) 하락 폭이 이 후보(0.3%포인트)보다 더 컸다. KSOI·TBS 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순위가 뒤바뀐 것은 처음이다. 이 조사는 12월 17∼18일(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실시한 결과다.
그러나 이 후보 측 내부 분위기는 “이제 됐다”라는 긍정 기류보다는 여전히 긴장 모드가 역력하다. 이를 부채질한 것은 ‘이재명의 인파이터 본능’이었다. 애초 국토보유세 신설을 통해 투기수용 원천 차단을 외쳤던 이 후보는 ‘1년 보유세 동결’을 주장하며 돌연 입장을 선회했다. 부동산 감세를 위해 2021년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2022년 주택 보유세를 산정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한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2년 뒤 보유세를 왕창 올려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충당할 것이냐”라며 “청와대와 각 세우는 척하는 것이 국민 상대로 밑장빼기이자 야바위 슛”이라고 직격했다.
이재명발 다주택자 양도세 유예가 대선판을 덮친 직후 김부겸 국무총리(12월 2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상 12월 22일)이 잇따라 노(NO)를 외치며 미래 권력인 이 후보에게 어깃장을 놨다. 당·정이 이재명발 부동산 감세에 공감대를 형성(12월 20일)한 지 하루이틀 만이다.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 최대 아킬레스건인 부동산을 놓고 신구 권력이 정면충돌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민주당이 이재명발 부동산 감세안 논의를 위한 워킹그룹(내부 협의체)을 띄우면서 당정청 간 전면전은 피했지만, 당 내부에선 “대선 내내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파다하다.
실제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친문(친문재인)계인 홍영표·강병원·신동근 의원을 비롯해 설훈 의원 등이 다주택자 양도세 유예에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강병원 의원을 빼곤 모두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NY) 캠프에 몸담았던 인사들이다. 친문 강경파와 NY계의 반이재명 기류가 ‘여권 내부 갈등의 도화선’이라는 점을 예고한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도 당정청의 반대에 한발 뒤로 물러났지만, “(양도세 중과 유예가 안 되면) 대선 이후라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의 마이웨이 노선을 선언한 셈이다. 친노(친노무현)계 핵심 관계자도 “(개인적으론) 이 후보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부분들이 있지만, 이재명답게 나가는 게 좋다”며 “비주류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것 자체가 절반의 정권교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가 인파이터 본색을 드러냈다면, 윤석열 후보는 아웃복싱에 치중했다. ‘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 사퇴’로 이어진 윤핵관발 내홍에서 윤 후보가 보여준 것은 ‘뒤로 숨기’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른바 ‘조수진 뇌관’에 상임선대위원장을 박차고 나간 직후 윤 후보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에게 ‘SOS(구조신호)’를 쳤다.
윤 후보는 이 대표가 사퇴 배수진을 친 12월 21일 “김종인 위원장이 나한테 맡겨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에는 “‘선대위 그립(장악력)을 강하게 잡아 달라’고 했다”, “후보가 직접 관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알겠습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퇴한 이 대표와의 회동 여부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윤 후보는 12월 22일 쑥대밭이 된 당을 뒤로하고 호남으로 내려갔다. 김 위원장에게 해결사 역할을 일임한 뒤 민생탐방에 나선 것이지만, 당 안팎에선 “윤석열이 안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일각에선 “아웃복서가 아니라 중재력을 잃은 것”이라는 비아냥도 분출했다. 선대위의 사달 핵심 원인이 윤핵관(윤 후보 측 핵심 관계자)인데, 문고리 권력 의혹을 해소하지 않으면서 기강해이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사퇴 수습 방안을 김 위원장에게 떠넘긴 것도 윤 후보 리더십 한계로 꼽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윤 후보가 당선되면)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십상시’가 판을 칠 것”이라고 했다.
인파이터와 거리가 먼 윤 후보 스타일은 ‘김건희 등판’ 작전에서도 드러났다. 최근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경력 위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돌연 “처음부터 계획이 없었다”며 방패막이를 쳤다. 특히 김건희 씨 허위 경력을 둘러싼 당 대응을 놓고 이 대표와 조수진 최고위원이 충돌, 윤 후보의 아웃복싱 스타일은 한층 짙어졌다.
윤 후보는 12월 2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며 “영부인이란 말도 쓰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까지 언급했다. 청와대 개혁의 일환이지만, 김건희 씨 등판을 사실상 미루려는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건희 씨 등판의 실익이 없다는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후보는 이 후보와의 ‘맞짱 토론’도 피하고 있다. 윤 후보는 12월 20일 ‘코로나19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단체 연대’ 주최 토론회에 불참했다. 윤 후보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50조 원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앞서 11월 2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도 윤 후보 불참으로 1인 대담으로 격하됐다.
여야에서 정책 토론회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윤 후보 측은 ‘법정 토론 3회’만 고수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법정 토론회를 7회 이상으로 늘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윤 후보 거부로 무산된 토론회가 몇 개인지···”라고 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토론 거부자가 대통령 부적격자”라고 일갈했다.
두 후보 전략의 변수는 역시 대선 지지도다. 지지도가 떨어지는 쪽이 먼저 스타일을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인물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이 후보는 인파이터를, 보수 빅텐트를 노리는 윤 후보는 아웃복서 스타일을 당분간 각각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전략통은 “대선 중반은 리스크와 반사이익에서 누가 덜 먹히고 더 먹느냐의 싸움”이라며 “양 후보도 지지도에 따라 인파이터와 아웃복서 중 한쪽 포지션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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