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이동욱 이진욱 등 자존심 구겨…최근 캐스팅 트렌드는 화제성보다 연기력, 익숙함보다 신선함
#정해인‧이동욱, 안방에서 줄줄이 낙마
새해 들어 스타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1~2%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최근 대중을 아우를 만한 히트 드라마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고려해도 시청률 1%대는 이례적인 수치다. 가장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은 주인공은 정해인이다. 그가 주연한 JTBC 드라마 ‘설강화’는 글로벌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의 지수까지 주연으로 나섰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시청률도 반응도 시큰둥하다. 대중에게 아예 외면 받은 분위기다.
사실 ‘설강화’는 시작부터 논란을 안고 출발했다. 1987년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과 그를 간호해준 여대생의 사랑을 내세웠지만, 민주화운동 소재를 통해 역사 왜곡 여지를 남겨 거센 비판이 일었다. 1020세대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정해인은 물론 막강 팬덤을 자랑하는 지수도 이런 비판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D.P’의 성공으로 몸값이 급상승한 직후 ‘설강화’를 택한 정해인으로서는 방송 시작 3회 만에 시청률이 1.7%(닐슨코리아)로 추락하는 굴욕까지 맛봤다. 1월 30일 종영까지 반등 기회를 잡지 못한 채 2%대에 그쳤다.
정해인과 ‘설강화’의 사례처럼 주연 배우가 누구인지보다, 작품 자체의 경쟁력이 시청률을 보장하는 분위기는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배우 이동욱 주연의 tvN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 역시 이를 증명한다. 나쁜 경찰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첫 회 방송이 기록한 시청률 4.5%가 최고치로 남았다.
방송가에서 ‘금‧토 tvN 편성’은 드라마 제작사들이 가장 원하는 ‘황금 시간대’이지만 ‘배드 앤 크레이지’는 이런 이점을 살리는 데도 실패했다. 첫 회 이후 시청률은 하락을 거듭해 1월 28일 종영 당시 시청률 2%대를 겨우 유지했다.
이동욱이 그동안 안방극장에서 보여준 성과와 비교하면 의아한 결과다. ‘도깨비’와 ‘라이프’ 등을 성공으로 이끌면서 몸값을 높였지만 최근 성적은 부진의 연속이다. 이번 ‘배드 앤 크레이지’뿐 아니라 2020년 주연한 드라마 ‘구미호뎐’ 역시 5%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방송 직전 이동욱은 상대역인 위하준과의 연기 호흡에 특히 만족을 표하면서 “우리의 브로맨스를 믿고 보셔도 된다”라고 자신했지만 정작 시청자와의 소통에서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했다.
#OTT로 자구책 모색, 몸값 증명 무색
정해인과 이동욱은 높은 몸값만큼이나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스타로 통한다. 든든한 팬덤은 이들의 드라마 캐스팅에도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요즘처럼 각종 커뮤니티나 SNS(소셜미디어)에서 형성되는 ‘온라인 여론’이 중요해진 시기에 스타 팬덤의 역할은 드라마 성패를 좌우하는 역할까지 한다.
하지만 팬덤이 형성하는 여론에 대한 기대치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정해인과 이동욱의 팬덤이 아무리 작품을 옹호한다고 해도 대중성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배우 이진욱도 예외는 아니다. 판타지 장르에서 장기를 발휘해온 그는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 홈’의 성공으로 전성기 인기를 되찾은 데 힘입어 현재 tvN 드라마 ‘불가살’의 타이틀롤을 맡고 있다.
죽지 않는 존재인 주인공이 환생을 반복하는 한 여인을 600년간 좇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대규모 전투 장면 등 규모를 앞세워 출발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떨어졌다. 첫 회에서 기록한 6.3%의 시청률이 최고 기록이다. 이후 3%대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4%대로 오르는 등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tvN 방송 이후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되고 있지만 글로벌 차트에서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제작비를 감안하면 주인공 이진욱의 회당 출연료 역시 1억 원 이상으로 책정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특급 대우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오정세의 ‘반전’…시청자의 선택 ‘작품성’과 ‘연기력’
몸값 높은 스타들의 잇단 하락세 가운데 뜻밖에 반전의 결과를 얻는 주인공도 있다. 다름 아닌 배우 오정세다. 철없는 삼촌과 초등학생 조카가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TV조선 드라마 ‘엉클’을 통해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 호평받고 있다. 시청률 성과도 탁월하다. 크게 주목받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 첫 회 시청률은 2.4%. 하지만 오정세의 활약에 힘입어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도 급상승해 9.3%까지 올랐다.
오정세는 앞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스토브리그’에서 비중 있는 조연과 주연으로 활약하면서 대중과 신뢰를 쌓았다. 충실하게 연기 활동을 해왔지만 드라마 타이틀롤은 이번 ‘엉클’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화제성 면에서 정해인, 이동욱, 이진욱 등 스타에 밀렸지만 정작 작품이 공개된 이후 양상은 달라졌다. 작품의 완성도와 연기력을 승부처로 삼은 성공이다.
톱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캐스팅 전략은 올해 제작에 돌입한 드라마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스타 의존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오히려 작가와 연출자의 역량에 기댄 제작 움직임이 활발하다. ‘빈센조’를 성공으로 이끈 김희원 감독은 신작 ‘작은 아씨들’에서 김고은, 남지현, 박시후 등과 손잡았다. 화제성보다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택해 불의에 맞선 세 자매의 이야기를 만든다.
영화 ‘변호인’과 ‘공조’ 등 흥행작의 각본을 쓴 윤현호 작가의 신작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역시 주인공으로 안보현과 조보아를 내세워 새로운 얼굴이 만들어가는 신선한 이야기를 추구한다. ‘디어 마이 프렌드’, ‘라이프’의 홍종찬 감독도 신작 ‘링크:먹고 사랑하라, 죽이게’를 이끌 주인공으로 억대 몸값의 스타보다 ‘실력 있는 젊은 피’로 통하는 여진구와 문가영을 택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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