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부 현대건설 독주로 ‘양극화’…남자부 대한항공 선두 속 치열한 순위다툼 ‘평준화’
#역대 최강팀 탄생?
여자부의 현재 순위표는 '양극화'라는 단어로 축약된다. 선두 현대건설은 패배를 잊은 지 오래다. 이번 시즌 26경기 중 패배는 단 한 번뿐이다. 유일한 패배는 2021년 12월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2연승을 달리다 한 번 넘어졌지만 이후 다시 13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남녀부를 통틀어 역대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시즌 대형 FA 선수들을 잡아두고 '배구 여제' 김연경까지 영입하며 무패우승까지 예견됐던 흥국생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현대건설의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적인 가운데 2위 싸움은 한국도로공사와 GS칼텍스가 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유일하게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켈시)와 재계약을 맺었고 국가대표에서도 주포로 활약하는 박정아가 팀을 이끌고 있다. GS칼텍스는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일부 전력 유출이 있었음에도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이들 역시 평년 같았으면 선두에도 오를 만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현대건설의 압도적인 기록에 가로막혀 있다.
선두권의 빼어난 기록과 달리 하위권은 기록적인 부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양극화는 예견된 면도 있다. 페퍼저축은행이라는 신생팀이 창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IBK기업은행 창단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기업은행은 2010년 창단 이후 2011년부터 리그 참가).
11년 전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신인으로 수급했고 즉시전력감 베테랑들을 영입했던 당시 기업은행과 달리 페퍼저축은행은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급박하게 진행된 창단 과정과 리그 참가 결정에 선수단이 손발을 맞출 시간도 적었다. 개막 이전부터 다수가 이들을 최하위 후보로 지목했고 실제 2승 23패로 험난한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과 함께 하위권으로 처진 팀은 IBK기업은행이다. 이들의 부진은 예견되지 않은 일이다. 지난여름 2020 도쿄 올림픽 4강 진출을 이룬 국가대표 멤버를 3명이나 보유하며 강팀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가 터졌다. 주장이자 주전 세터인 조송화가 '항명 논란'을 일으키며 사령탑이 교체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그 사이 팀은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소방수로 투입된 김호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50여 일이 훌쩍 지나서야 팀이 안정세로 접어들고 있다.
#현대건설 왜 강해졌나
여자부의 가장 큰 화두는 현대건설의 탄탄한 전력이다. 불과 지난 시즌만 해도 정규리그 최하위 팀이다. 예열 기간도 없이 단시간에 팀의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이렇다 할 전력 보강조차 없었던 현대건설의 달라진 부분은 코칭스태프다. 지난 4년간 여자배구 레전드 출신 이도희 감독과 함께했던 현대건설은 강성형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불러들였다. 국가대표팀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강 감독과 함께 새로운 코치진도 부임했다.
V리그 개막 전 컵대회부터 현대건설은 강력함을 보였다. 주로 센터로 활약하던 정지윤이 레프트 포지션으로 전향했다. 국가대표를 떠난 김연경이 대표팀 미래를 위해 정지윤의 레프트 전환 필요성을 시사했고 선수 본인과 강 감독도 같은 뜻을 밝혔다. 이는 황민경, 고예림 외에 이렇다 할 레프트 자원이 없었던 현대건설에 플러스 요소가 됐다.
정지윤이 레프트로 이동하며 그간 유망주로 평가받던 이다현이 주전 센터로 나서게 됐다. 주전으로서 첫 시즌임에도 이다현은 현재 리그 전체 블로킹 3위(세트당 0.74), 득점 16위(213점)를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영건들의 활약 속에 기존 자원인 양효진, 황민경 등도 여전한 실력으로 힘을 보탠다. 황민경은 지난 시즌 부상으로 흔들렸지만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양효진은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며 소속팀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베테랑 황연주는 외국인 선수 야스민의 백업으로 나서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한유미 KBS 해설위원은 현대건설의 선전에 대해 "양효진, 이다현으로 구성된 센터라인이 가장 탄탄하다"며 "양효진은 높이를 활용한 속공, 시간차에서 강점을 보이고 이다현은 힘과 스피드 있는 속공, 이동공격을 이용한다. 둘의 조합이 좋다"고 진단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도 현대건설의 미래를 밝게 한다. 한 해설위원은 "이다현을 포함해 주전 세터 김다인, 레프트 정지윤 모두 어린 선수들이다"며 "이 선수들 모두 지난 시즌에 비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들"이라고 평가했다.
#승점차 촘촘한 남자부
여자부가 현대건설의 독주로 진행되는 반면, 남자부는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며 전력평준화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자부는 선두와 최하위 간 승점차가 60점 이상 크게 벌어졌다. 이와 달리 남자부는 15점으로 격차가 좁다.
승점이 아닌 승수 차이는 더욱 적다. 선두 대한항공이 15승 11패(승점 47점)를 거둔 반면 삼성화재는 11승 14패를 기록 중이다. 다소 앞서나간 디펜딩 챔피언 대한항공을 제외하면 더욱 오밀조밀한 승점차, 승수 차이에 6개 구단이 분포해 있다.
남자부의 혼전 양상은 시즌 초반 일정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1라운드에서 당초 강호로 평가받던 대한항공과 우리카드가 나란히 최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은 이들의 동반 부진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시즌이 지날수록 대한항공과 우리카드는 안정을 찾았으나 초반 부진에 발목이 잡혀 격차를 벌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던 팀들은 외국인 선수 등의 활약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력과 삼성화재는 지난해와 같은 5위와 7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1년 전 같은 시점과 비교해 많은 승수를 기록하며 앞선 팀들을 추격 중이다. 각각 외국인 선수 다우디(한국전력)와 러셀(삼성화재)이 팀을 이끌고 있으며 한국전력은 주포 서재덕의 군 복무 이후 복귀가 반갑다.
명실상부 V리그 강팀으로 거듭난 대한항공의 선두 질주에는 그림자도 존재해 씁쓸함을 자아낸다. 시즌 초반 하위권을 전전하던 대한항공의 반등은 정지석의 복귀와 궤를 함께한다. 정지석은 2021년 여름, 교제했던 여성으로부터 폭행과 불법 촬영을 시도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측과 합의를 이뤄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정지석을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3라운드 복귀 직후부터 맹활약하며 팀을 이끌고 있지만 팬들은 대한항공 본사와 홈경기장인 인천 계양체육관 주변에서 복귀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팬들이 주머니를 털어 설치한 전광판에는 "데폭남(데이트폭력남)의 착륙지는 대한항공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1라운드 2승 4패(승점 7점), 2라운드 4승 2패(승점 12점)로 흔들리던 대한항공은 정지석 복귀 이후 3라운드부터 5승 1패(승점 14점), 4라운드 4승 2패(승점 13점)로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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