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파동’ 논란 지켜보며 창업 결심…흡수체 넣는 등 새로운 시도로 대기업 시장서 주목 받아
#‘생리대 파동’이 창업의 계기
생리대는 최근 몇 년 사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작은 ‘깔창 생리대’ 논란이다. 지난 2016년 6월 국내 생리대 판매량 1위 기업 생활용품 전문업체 유한킴벌리가 제품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저소득층 학생들이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사용한다는 등의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가격 인상을 검토하던 업체들이 인상 계획을 철회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이때부터 정부는 저소득층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두 번째는 ‘생리대 파동’이다. 2017년 3월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를 공개하고 정부에 전수 조사와 위해성 평가, 역학 조사 등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논란이 확대되면서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같은 해 9월과 12월에 걸쳐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84종에 대한 전수조사와 위해평가를 실시해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생리대와 팬티라이너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유해물질이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스타트업 허그몬이 2017년 9월 탄생했다. 1980년생인 전정훈 대표의 삶에서 생리대와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 공대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현대중공업 엔진구매부에서 3년을 일했다. 이후 대표로서 마케팅 회사 대표를 거쳐 허그몬을 창업했다. 창업의 계기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대기업을 보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자가 여자를 제일 잘 안다’는 취지 아래 제품 기획과 개발팀을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했다.
전정훈 대표는 “여성들이 생리대를 착용했을 때 새고, 냄새나는 걸 당연하다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땐 ‘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하는데 왜 그런 불편함이 개선되지 않을까’라는 물음표가 떠올랐고, 그렇게 생리대 브랜드 허그미가 탄생했다”며 “강원도 동해에 있는 공장을 50번 이상 방문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 첫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생리대 시장 점유율은 유한킴벌리(57%), 엘지유니참(21%), 깨끗한나라(9%), 한국피앤지(P&G, 8%)로 4개 업체가 약 95%를 차지했다. 지난 2018년 12월 한국피앤지가 국내에서 생리대 브랜드 ‘위스퍼’ 생산 및 운영을 중단하며 한국 생리대 시장에서 철수했다. 다만 전체 생리대 시장 약 4200억(판매사 매입가 기준) 중에서 친환경·유기농 생리대 비중이 약 3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업계에선 추정하고 있다.
전정훈 대표는 “생리대 시장 점유율이 중소기업으로 조금 넘어왔지만, 여전히 대기업에서 독식하고 있는 구조”라며 “문제는 대기업도 소비자들도 생리대의 불편함을 인지해서 문제점을 개선해야 된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연구개발팀은 잘 팔리고 있는데 신제품 만들어서 실패하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ESG 경영 모범 스타트업 ‘허그몬’
허그몬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생리대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생리대에 친환경·유기농 순면커버를 사용하고 있다. 생리대 중간에 접착제 제거,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를 넣은 제품 포장, 울트라라이너 개발 등 모두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울트라라이너는 기존 팬티라이너와 달리 일회용 반창고 크기의 흡수체를 넣었다. 이물질이나 분비물뿐만 아니라, 갑자기 생리가 시작했을 때도 상당한 시간 동안 새거나 묻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흡수력이 좋다. 향균 99% 효능을 지닌 ‘퀀텀’ 원료 개발에도 힘을 싣고 있다. 허그미 생리대는 식약처를 비롯해 유기농 국제 인증 OCS, 프랑스 에코서트(ECOCERT), 스위스 SGS, 미국 FDA, 독일 DERMATEST, 로하스 등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을 받을 정도로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다.
전정훈 대표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생리대를 제거할 때 중간접착제가 속옷에 남는다. 여성분들은 속옷 세탁했을 때 중요 부위에 하얀 먼지처럼 생긴 게 접착제 라인으로 붙어 나온 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며 “정말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대기업들 누구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울트라라이너는 의도한 건 아닌데 요실금 있는 분들이 사용할 정도로 흡수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허그몬은 ESG 경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18년 유기농 순면커버 울트라라이너와 '부분 접착제 생리대'를 개발 및 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생리대 업계 최초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여성가족부 장관상인 ‘여성을 위한 사회공헌기업상’을 수상했다. 여성친화적인 사회공헌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여성인재육성 및 고용평등한 조직 문화를 조성해 여성의 삶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 덕분이다. 2020~2021년에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로부터 ‘지역사회공헌인정제 인정기업’으로 선정됐다.
전정훈 대표는 “지난해 ‘함께하는 사랑밭’이 600여 가구에 6개월 치 생리대를 공급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좋은 일이다 싶어서 6개월에 1년을 더해서 지급해드린 일이 기억난다. 덕분에 미혼모 가정,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분들에게 생리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MBC ‘놀면 뭐하니?’로부터 수익금을 받아 진행된 기부 사업이었다. 기부 사업이 끝난 후에도 자체적으로 매달 조금씩 보내드리고 있다. 그러면서 사업가로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허그몬은 국내에서 번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수출액만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부터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 수출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중국 파트너사와 함께 진행하는 건은 광고영상(CF)으로 중국에 허그미를 홍보할 예정이다. 말레이시아는 왓슨스 500여 개 매장에 입점할 계획이다. 국내는 지난 2월 기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판매방식에서 벗어나고자 자사 홈페이지를 론칭했다. 단기간 내 회원 수 10만 명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정훈 대표는 “생리대는 필수소비재다. 평균 40년 동안 28일 주기로 5일씩, 하루에 최소 5개 내외의 생리대를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여성은 평생 약 1만 20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국내 매출은 운영비로만 남겨두고 나머진 모두 사회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돌려드리고 싶다. 해외 실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전 대표는 “돈을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 보람차고 즐겁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을 찾아서 사업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절대 사업을 하여 시간 낭비하지 말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전정훈 대표는 “정부 지원 정책자금 등이 필요한 스타트업은 대부분 자격이 갖춰져 있지 않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주나 매출 또는 수출 등이 미비하거나 없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당 자격조건이 되지 않으면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스라엘(유대인) 정부 지원 정책자금의 선별기준은 선착순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성공하고 어떤 아이디어가 실패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한국 지원 정책도 장기적으론 유연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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