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금융기관은 SK글로벌 사태 때 채권자로서 우호적으로 도움을 주었는가 하면 소버린과의 경영권 분쟁을 겪을 때는 SK의 백기사를 자처하는 등 SK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SK텔레콤에 카드사 합작 제안서를 제출한 금융기관이 2∼3곳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카드사 합작 경쟁은 더욱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작 SK텔레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금융기관 간의 경쟁을 지켜보고 있다. 경쟁이 과열될수록 자사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카드사를 합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당분간은 카드사 인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카드사 설립은 SK텔레콤의 숙원사업이다. 카드업을 병행할 경우 이동통신 가입고객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또 그간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시스템을 개발해 놓고도 SK텔레콤이 카드업 고유영역을 넘본다는 이유로 기존 카드업계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것도 큰 이유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의 카드업 진출을 ‘카드업계의 핵폭탄’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이동통신과 결합한 카드사업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확보하고 있는 1천9백만 명의 고객정보(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 ment)는 언제든지 나이, 성별, 직업, 라이프스타일, 소비성향에 따라 맞춤마케팅이 가능하다. 특히 카드업계의 거품이 꺼진 뒤 규모의 확대보다 흑자경영이 중요해진 분위기에서 이동통신 요금의 연체 여부로 불량고객을 가려낼 수 있어 부실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최근 SK텔레콤이 외식업체 아웃백스테이크와 할인제휴를 끊자 외식업계가 1위 탈환을 두고 들끓고 있는 것은 SK텔레콤의 마케팅 파워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별도의 카드 없이 휴대전화기에 칩을 얹는 방식도 경쟁력이다. 카드는 2개 이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휴대전화는 하나만 갖고 다니기 때문에 결국은 전화기로만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휴대전화 결제시스템인 모네타(moneta)를 2002년 11월 선보였으나 결제를 대행할 카드사들이 높은 수수료를 요구해 아직 이용자수 50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그동안 수차례 카드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2000년, 2001년, 2002년 잇달아 평화은행 카드부문, 동양카드, 전북은행 카드부문 인수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전북은행과는 51 대 49로 카드사를 설립한 뒤 유상증자로 SK텔레콤의 지분을 80%까지 끌어올리도록 양해각서까지 맺었으나, 금융당국이 전북은행 신용카드업을 인수해 설립되는 법인에 대해 3년 동안 대주주의 변동을 금지하겠다고 밝혀 무산됐던 것이다.
올해 다시 SK텔레콤의 카드사업 진출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1∼2년 전부터 금융기관이 M&A를 통해 대형화되면서 리딩뱅크 경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서는 향후 대형 금융사 1, 2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미 우리은행계열과 신한은행계열이 지주회사가 되었고 하나은행이 지주회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하나은행이 SK텔레콤과의 합작을 통해 판도를 뒤집어보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은행과 SK텔레콤은 구체적인 제안조건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공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SK 직원들에게 플래티넘 신용카드를 발급해 VIP 대접을 해오는 등 스킨십을 늘리는 것이 한 예다. 하나은행 본점도 SK 신사옥 옆에 위치해 SK의 본사 이전 이후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금리 우대 등의 유리한 조건으로 영업을 해왔다.
신한의 라응찬 회장이 직접 나서 SK의 최태원 회장을 만난 것도 하나측의 작업이 상당히 진전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한측은 “최근 SK텔레콤에 하나은행 카드사업 부문과 신한카드의 장·단점을 평가, 합작 파트너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하나은행은 합작사업을 구체적으로 제안해왔던 사실이 알려지자 오히려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신한금융지주가 곧바로 견제하는 등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측은 SK직원에 대한 우대영업에 대해 “어느 기업이든 우량고객들에게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애써 논란을 피해가려는 모습이다.
신한의 경우 이미 조흥은행을 인수해 합병 작업이 진행중이고, 내년 상반기에 신한카드와 조흥은행 카드사업부와 합병을 계획하고 있다. 신한은 또 SK텔레콤과 손잡고 신용카드 합작법인을 설립한 뒤 HSBC 등의 외국자본을 유치해 LG카드 인수에 나서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LG카드 인수에도 SK가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LG카드의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인수 시점이 빨라지고 있는 것도 SK의 카드업 진출설이 재점화된 배경의 하나다.
한편 SK는 공식적으로는 “카드업 진출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커지면 금융당국과 카드업계의 견제를 받아 또다시 카드업 진출이 좌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SK가 의외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SK 자체의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굳이 대형업체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SK는 금융기관과의 사업제휴에서 자사의 영향력이 상실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금융기관과 제휴한 모바일결제시스템인 엠뱅크(M-Bank)와 관련해 SK의 한 관계자는 “LG텔레콤의 뱅크온(Bank-On)이 은행에 유리한 조건으로 점유율을 급속히 늘려가자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것이었다. 수수료는 은행이 거의 다 가져가면서 SK텔레콤은 기술과 가입자 정보만 제공해 주고 있는 꼴”이라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SK로서는 겉으로는 논란을 피해가며 속으로는 금융기관들의 경쟁을 내심 저울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SK가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