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근가공작업을 하는 한 철근가공업체의 공장 모습. | ||
중소철근가공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은 지난 6월 초 기자회견을 갖고 GS건설의 철근가공 공장 신설을 반대한 데 이어 중소기업청에 탄원을 하는 등 반대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매출 10억원대 미만 영세중소기업 업종에 4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재벌기업이 뛰어들면 어쩌라는 것이냐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국내에는 1백여 개의 철근 가공업체가 있고, 이 중 자동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이 있는 철근가공업협동조합 가입사는 32개 사다.
건설 공사현장에선 철강으로 뼈대를 올리고 중간기둥이나 벽체에 철근을 넣는다.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이 철근을 구부리고 잘라내서 가공하는 것이 바로 철근가공업이다. 과거에는 공사현장에서 직접 가공을 했지만 최근 들어선 미리 가공공장에서 만들어와 현장에 투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현장가공을 하면 쓰지 못하는 자투리 철근이 많이 남는 데 비해 공장가공을 하면 가공비용은 들지만 로스율이 적다. 또 납품이나 정밀도 등의 효율성도 더 높다.
이런 철근의 공장가공은 지난 90년대 초반 서울 강남의 삼성병원 공사 현장에 처음 적용됐다. 일본에선 50년의 역사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도입된 지 15년 정도밖에 안됐다. 당시 삼성에서 현장 철근가공 책임자에게 기계설비 도입을 주선하고 공정을 맡겼던 게 국내 철근가공의 시작이었다. 삼성에서는 공사의 완벽성이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가공 보다는 공장가공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공사 책임자가 철근가공을 아웃소싱해서 나오면서 이후 다른 공사 현장에서도 철근가공을 외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때문에 이번 GS건설의 철근가공 공장 직영 시도에 대해 중소철근가공업계에선 “대기업이 삼성 같은 덕을 베풀지 못할망정…”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다른 대기업에서도 철근가공업 진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건설에서 같은 계열사인 동부제강이 있는 충남쪽에 철근가공공장을 차렸다가 결국 업자들에게 설비를 헐값에 넘기고 손을 뗐다는 것이다. 철근 가공이라는 게 구부리고 자르는 단순가공인 데다 노임이 가공비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대기업에서 인력과 조직, 부동산을 투입해 가공공장을 차리는 게 결국 단가상승만 불러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엔 주택공사도 철근가공을 외주로 돌려 공장가공을 택하기로 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철근 사용량 1천1백만톤 중 80%는 현장에서 즉석 가공해서 쓰는 형편으로 공장가공에 대한 수요가 큰 편이다.
그렇다면 GS건설은 왜 직접 진출을 시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지난 3월 철근가공업 진출을 공시한 GS측에선 “철근 가공업 진출이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물량을 제때에 공급받기 위해서”라고 진출 이유를 밝히고 있다.
GS건설에서 한해에 필요한 철근 수요량이 34만톤임에도 국내 최대 생산업체의 연간 가공능력은 8만톤에 불과해 타 건설사 공급 물량을 감안하면 현재의 철근가공업체 가공능력으론 수요를 제때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직접 진출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즉 철근 가공을 직접 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시공 효율성과 건설 공사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GS건설은 경기도 시흥 시화공단 안에 마련해 놓은 5천평의 부지에서 연간 21만톤, 경남 마산 칠서공장에서 연간 7만톤 규모의 철근가공을 위해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철근가공업협동조합은 “이제 도입기에서 성숙기로 진행해가는 철근가공 시장에, 톤당 가공비 3만~4만원을 중소기업에 주는 게 아까워 재벌이 진출하는 것은 중소기업은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거대 재벌이 단순 가공인 철근을 구부리고 자르는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얘기다. 이들은 GS가 물꼬를 트면 대기업들이 우르르 밀려들어올 것을 더욱 겁내고 있다. 유제철 철근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사업을 철회한 동부도 애초에는 자기 물량만 대겠다고 약속해놓고 시작하다 다른 건설사 공사현장 물량까지 떠맡아했다”며 GS건설에 대해 불신감을 나타냈다.
철근가공업협동조합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보호 및 기업간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를 근거로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에 사업조정 신청서를 냈고, 현재 중소기업청에서 이를 검토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서는 지난 6월 중순부터 철근가공업협동조합과 중소기업청, GS건설 3자 대면을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6월 말 3자 대면에서 철근가공업협회쪽에선 “GS의 철근가공공장 부지와 설비를 조합측에서 인수하는 대신 GS의 수요 물량을 넘겨달라”는 제안을 한 상태이고, GS쪽에선 ‘구두’로 GS의 가공공장이 없는 “충청권과 호남권의 물량을 넘겨줄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내 아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