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왼쪽),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
삼성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는 개정 공정거래법(공정법)에 대해 재산권·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다. 삼성측은 ‘삼성생명 같은 금융계열사가 삼성전자 같은 알토란 법인의 지분을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위축시킬 경우 외국계 자본이 적대적 인수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를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운다.
이에 대해 공정법 주무 부처인 공정위는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정당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는 헌법 조항을 들며 개정 공정법에 위헌적 요소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의 헌법소원에 대해 직접 유감을 표명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애간장 태우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의 막강 변호인단 위용이 공정위로 하여금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개발해내는 법적인 대응 논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초호화 법무진은 제 아무리 정부 산하기관인 공정위라도 위축이 될 정도로 화려하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 몇 년간 법조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억대연봉을 포함한 파격적 대우를 받으며 삼성 울타리 안에 새 둥지를 틀었다. 삼성그룹이 보유한 변호사 수만 1백20명이며 그 중 판·검사 출신만 20명이 넘는다.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 법무실장을 필두로 서울지검 특수1부장 출신의 서우정 부사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성열우 전무, 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 김윤근 상무 등 말 그대로 ‘초호화’ 진용을 꾸리고 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삼성은 이미 법무법인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법률 논쟁 준비를 마쳤다. 헌법소원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는 율경종합법률사무소의 신창언 변호사와 황도수 변호사를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한 상태다. 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으며 황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으로 두 사람 모두 ‘헌법통’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삼성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고 있는 반면 공정위는 아직 변호인단 구성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중이며 크게 늦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여러 헌법학자들에게 이 사안에 대해 물어본 결과 ‘위헌이 아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밝히지만 삼성 법무진에 대한 부담감을 감추지는 못했다.
삼성에 비해 공정위는 외부 변호인 선임에도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국내 변호사 가운데 헌법과 공정법을 모두 전공한 변호사가 많지 않은 데다 이 분야에서 이름난 권위자들에 대해 이미 삼성그룹이 선수를 쳐놓은 상태다. 특히 대형 법무법인에 몸담고 있는 변호사들은 그들 법인이 주로 대기업을 고객으로 삼는 터라 삼성을 상대로 한 공정위 변호인단에 합류하길 꺼려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주머니 사정 역시 공정위의 변호인단 구성에 장애가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외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길 경우 최대 2천만원선의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능한 법조인에게 억대 수수료를 쏟아붓는 대기업의 투자 규모에 비해 초라한 대접이 아닐 수 없다.
인맥 대결에서도 일단 삼성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왕 삼성 구조구조본부 법무실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다. 물론 이번 소송에 청와대의 영향력이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만큼 이종왕 실장을 필두로 한 삼성 법무진의 이름값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은 헌법재판소 주선회 대법관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같은 경남 출신이며 고려대 동창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각에선 변호인단 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 공정위에 비해 인적 자원에서 ‘느긋한’ 삼성이 자칫 이번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공명정대하다면 삼성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밝힌다. 그러나 지난 4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의 헌법소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직접 밝혔을 정도로 공정위 안팎에 긴장감이 흐르는 게 사실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헌법소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준비과정이 변호인단 선임인데 삼성이 좋은 분들 많이 확보한 것은 누가 봐도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헌법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가 위헌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준비를 착실하게 해서 대비하면 대기업에게 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밝혔다.
공정위에 비해 삼성이 호화 변호인단이 주목받는 것에 대해 삼성측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강철규 위원장의 유감 표명이 있고 바로 다음날인 지난 5일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실 김윤근 상무는 “삼성 내부에서도 헌법소원까지 낼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법리적으로 국가기관의 판단을 받아 볼 필요성이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이 아님을 밝히며 일단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국내에 변호사가 수천 명에 이르는데 이번 헌법소원에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동원할 변호사들은 몇십 명 수준일 것”이라 밝혔다. ‘공정위가 삼성 꺾을 변호사 찾기 힘들다’는 세간의 시각에 대해 ‘삼성이 확보한 변호인단 외에 나머지 분들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냐’는 논리로 반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 다수 인사들은 이 같은 삼성의 ‘엄살’이 공정위에겐 곧 ‘포효’로 느껴질 것이라는데 공감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