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11년 만에 꺾고 손흥민 각성…밀집 수비 격파와 세트피스 정비 필요
#월드컵 예선에서 성과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여러 성과를 남겼다. 최근 대표팀은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 혹은 플레이오프행 위기에서 가까스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팬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표팀의 예선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최종예선 과정에서 각각 3패(2018 러시아 월드컵), 2패(2014 브라질 월드컵)를 안으며 최종전까지 안심할 수 없는 경기를 펼쳤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승점에서 동률을 이뤄 골득실 1점 차이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반면 이번 벤투호는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과거 대표팀이 힘겹게 월드컵 본선으로 향했던 원인 중 하나는 이란이었다. 이란은 특유의 강한 피지컬, 압도적인 홈 경기장의 분위기 등으로 대표팀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이번 대회를 포함해 최근 네 번의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이란은 한 조에 편성됐다. 그 중 지난 세 번의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이란을 상대로 단 1승도 따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은 달랐다. 2021년 10월 이란 원정에서 손흥민의 선제골에 힘입어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을 따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당시 박지성의 골로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 첫 승점이었다. 기세를 올린 대표팀은 지난 3월 24일 홈경기에서는 2-0(손흥민·김영권 골) 완승을 거뒀다. 2011 아시안컵 이후 11년 만의 이란전 승리였다.
또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예선 과정을 실로 오랜만에 한 감독 체제로 치렀다. 그간 힘겹게 대회 본선행에 오른 만큼 사령탑 교체가 잦았다. 한 대회 준비 기간에 복수의 감독이 거쳐 가며 대표팀은 연속성을 갖기 힘들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2차 예선과 3차 예선 16경기에서 단 1패만 내주며 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4년간 꾸준한 준비 과정으로 일관된 팀컬러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벤투 감독은 역대 대표팀을 거친 73명의 감독 중 최장기 사령탑이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2018년 8월 21일 부임 이후 현재 재임 기간 1300일을 훌쩍 넘겼으며 월드컵 본선까지 팀을 이끈다면 1500일을 넘길 예정이다.
대표팀은 벤투 감독 집권 기간 43경기에서 28승 10무 5패를 기록했다. 특히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1패씩만 당했다. 대부분 경기에서 승점을 따냈고, FIFA 랭킹도 상승했다. 벤투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하던 2018년, 대표팀의 FIFA 랭킹은 55위와 57위 사이를 오갔다. 이후 상승을 거듭하더니 2022년 20위권까지 진입했다. 최근 순위 발표일인 지난 2월 10일 기준 29위에 올라 있다. 이에 대표팀은 월드컵 조추첨에서 비교적 유리한 결과를 받을 수 있는 포트3에 배정됐다.
#손흥민의 각성
월드컵 본선 진출 조기 확정에 큰 공을 세운 선수는 대표팀 주장이자 에이스인 손흥민이었다. 이전까지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도 있었기에 그의 활약은 더욱 반가웠다.
손흥민은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최종예선 14경기에 나서 단 2골만 기록했다. 2골 모두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이었지만 손흥민이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장으로 나선 이번 대회는 달랐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빡빡하게 진행되는 일정 속에서도 손흥민은 10경기 4골을 넣었다. 특히 이란과 두 경기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1승 1무를 기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2차 예선에서도 3골을 추가한 손흥민은 A매치 98경기 31골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31골은 대표팀 역대 골 순위 6위 기록이다. 손흥민은 이번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허정무·김도훈·최순호(이상 30골), 최용수(27골) 등 전설적인 선배들의 기록을 넘어섰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손흥민은 이전까지 확실히 대표팀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있었다"며 "이번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극복해 나가는 것 같다. 득점으로 해결을 해주면서도 자신이 막힐 때면 '조연' 역할을 자처하며 팀을 이끌었다. 손흥민이라고 해서 언제나 잘할 수는 없다. 때로는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동료들에게 공간을 내주는 플레이도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잘 해줬다. 이제는 주장이고 경력으로도 팀을 이끄는 위치에 올랐다.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대표팀이 남긴 과제
최종예선 10경기를 치르는 중 9차전 이란전 홈경기 승리로 대표팀은 기세를 높였다. 11년 만의 이란전 승리, 3년 만의 서울월드컵경기장 매진으로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9차전까지 7승 2무를 거뒀고 마지막 아랍에미리트전을 남겨두고 있었기에 대표팀은 무패 기록을 쓰는 듯했다.
하지만 기대감은 곧 무너졌다. 이란전에 이어 열린 UAE전에서 대표팀은 0-1로 패했다. 이번 대회 첫 패배였다. 한국은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반면 UAE는 플레이오프행이 간절했다. 양 팀의 간절함이 달랐지만 전력차가 있었기에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패배였다. 벤투 감독도 "최악의 경기력이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패배로 대표팀은 이란전 승리로 어렵게 빼앗은 조 1위 자리를 도로 이란에 내줬다.
10년 이상 지적받던 대표팀의 약점을 또 다시 노출한 경기였다. UAE는 철저한 준비로 대한민국을 공략했다. 전반전은 내려서는 수비로 골문을 틀어막았다. 후반에는 역습 상황에서 득점과 함께 전방 압박을 시도했다. 상대의 계산된 움직임에 선수들은 허둥대기 바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UAE와 경기, 후반전 경기 내용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물론 상대 밀집수비를 깨는 것도 대표팀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는 단계다.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우리보다 강팀을 상대해야 한다. 상대가 '압박 수비'를 펼치며 우리를 당황시킬 텐데,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무득점으로 무릎을 꿇은 UAE전에서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 기회를 잡은 선수들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히거나 골대를 때렸다. 자연스레 주전 공격수 황의조의 부진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황의조는 벤투 감독 체제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공격수다(벤투 부임 이후 33경기 13득점). 하지만 최종예선 10경기 중 9경기에 출전해 무득점에 그쳤다. 대표팀 내 조규성이라는 또 다른 공격 자원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여전히 황의조는 주전 공격수로 간주된다. 대표팀에서 골감각 회복이 필요하다.
황의조를 제외한 대부분 대표팀 멤버들은 그동안 좋은 컨디션을 자랑했다. 김민재, 이재성, 황희찬 등 유럽파는 최근 좋은 흐름을 이어오고 있으며 김영권, 김진수, 김태환 등 국내파 위주로 구성된 수비진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본선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번 대회는 6월이 아닌 11월에 열린다. 기존 대회와 같이 6월에 열렸다면 현재 폼이 좋은 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긴 시간이 남았기에 변수가 많다. 남은 기간 선수들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부상이다. 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주전급 자원 절반 가까이가 부상으로 쓰러지는 불운을 기억하고 있다.
이 해설위원은 세트피스도 개선할 점으로 꼬집었다. 그는 "세트피스는 어려운 경기를 하는 상황에서 반전을 만드는 무기가 된다. 특히 현대축구에서 중요성이 강조된다"며 "우리 대표팀은 세트피스 득점 장면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번 UAE전도 코너킥을 16개나 얻었는데 대부분 허무하게 날렸다. 키커 교체까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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