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홍준표·경기 유승민과 맞붙을 김재원·김은혜 카드 주목…당선인 지방권력 우군 늘리기 시도 주목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윤 당선인과 대선 경선에서 여러 차례 얼굴을 붉혔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지방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당선될 경우 그 여세를 몰아 5년 후 대권 도전도 유력하다. 임기 초반부터 ‘좌승민 우준표’ 모시고 살아야 하는 윤 당선인의 시집살이가 시작될 것이라는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지 세력을 심으려는 ‘윤심 전략’이 가동될 것이라는 전망도 여기서 비롯된다.
#텃밭 TK 장악 나선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막판까지 치열하게 경쟁했던 홍준표 의원은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나섰다. 대선주자급 거물 정치인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도전한 것은 사례가 드문 일이라 대구시장 선거는 일약 전국적인 관심지역으로 떠올랐다.
홍 의원의 대구시장 도전은 ‘노후 대비용’이라는 상대 후보들의 공격에 직면하고 있지만 보다 큰 꿈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선 경선에서 홍 의원은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인 TK(대구·경북)에서 윤석열 당선인에게 밀렸다. 그는 경선 기간 TK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에게 밀리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고향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정가에선 홍 의원이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통해 TK의 확실한 맹주로 자리 잡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본다. 서울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하고 경남도지사를 거친 그는 지난 총선에서 고향인 대구 입성에 성공(수성을 당선)했지만 경선 결과만 놓고 보면 TK에서 확실한 지지 기반을 다지지는 못했다.
홍 의원은 4월 5일 대구시민들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지지를 호소하면서 “어쩌면 정치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대구시장에 도전한다”며 “여러분의 힘으로 홍준표에게 대구 시정을 한번 맡겨주십시오”라고 했다. 이 문자를 받은 한 지지자는 홍 의원이 개설한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 꿈’에 “정치인생 마지막이라니요, 오래 정치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홍 의원은 이 글에 “4년 후의 일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의미심장한 답을 남겼다. 대구 경영을 한 뒤 국가 경영에 재도전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홍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 내부 경쟁 후보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경북매일 등이 여론조사기관 에브리미디어에 의뢰해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대구지역 남녀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한 결과, 홍 의원은 44%로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김재원 전 최고위원(18.3%)을 크게 앞섰다.
뒤이어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4.4%,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 2.5%, 정상환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 부위원장 2.2%, 권용범 전 대구경북 벤처기업협회장 1.9% 순이었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는 4월 1일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재 대구시장 선거 판세는 압도적 인지도를 내세운 홍 의원의 독주 체제다.
그러자 홍 의원에 대한 견제구도 강하게 날아들고 있는 양상이다. 당이 정했던 ‘현역 의원 10%·무소속 출마전력 15%’ 감점이 대표적이다. 이 룰이 적용되면 현역 의원이고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력이 있는 홍 의원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출발선상부터 불리하게 된다.
홍 의원 반발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1인당 받을 수 있는 페널티는 최대 10%를 넘을 수 없다”는 ‘중복적용 방지’ 방침을 내놓으면서 홍 의원 달래기에 나섰다. 페널티를 둘러싼 논란 과정을 지켜본 상당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조항 자체가 특정인, 즉 홍 의원을 겨냥한 징벌성이라는 목소리도 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윤석열 당선인과 손을 맞잡은 대형 현수막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 내걸었다. 정치권에서는 ‘윤심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구의 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은 “대구시장 선거에 윤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윤 당선인이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 모르겠다”면서도 “하지만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거물 정치인이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적진 깊숙이 들어간 유승민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겨뤘던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불리는 이재명 상임고문 정치적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경기도지사 도전에 나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부터 잡겠다는 포석이다.
사실 유 전 의원은 대선 이후 정계 은퇴를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국민의힘 많은 의원들이 수차례 유 전 의원에게 이재명 상임고문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 ‘선당후사’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경제학 박사 출신에다 당내에서 개혁적 성향을 보이며 수도권에서 인지도를 쌓은 유 전 의원이 경기지사 필승카드라는 게 이들 의원들의 한목소리였다.
의원들이 권유할 때마다 유 전 의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제 환갑을 넘었는데(1958년생)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TK를 떠나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유 전 의원은 당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 전 의원 주변에선 ‘경기도지사를 발판으로 대선 도전에 한 번 더 나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유 전 의원은 4월 5일 경기도 수원시 국민의힘 경기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선 출마와 관련, “5년 뒤 대선에 대해 누가 알겠느냐. 4년간 (도지사를) 잘하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 부분은 오픈으로 두겠다”고 발언, 대선 재도전에 대해 열린 자세를 드러냈다.
유 전 의원이 참전한 경기도지사 선거는 국민의힘 당내 경선부터 흥행이 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 대변인을 전격 사퇴하고 초선의 김은혜 의원이 경기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4월 2~3일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31.4%, 김은혜 의원은 11.8%였다. 이어 강용석 변호사(9.7%) 심재철 전 의원(3.5%) 함진규 전 의원(2.1%) 순이었다.
여론조사를 놓고 볼 때 일단 당내 경쟁에서는 유 전 의원이 앞서 나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김은혜 의원의 가세는 ‘윤심 논란’으로 번졌다. 유 전 의원은 ‘윤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견제의 화살을 날리는 중이다. 그는 4월 7일 YTN 라디오 ‘박지훈의 뉴스킹’에 출연 “저는 김은혜 의원이 윤심이 아니고 그냥 ‘김심’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는 윤 당선인을 겨냥해 “윤 당선인 화두와 약속이 공정과 상식 아니겠느냐. 곧 대통령에 취임하실 분이고, 대통령은 공천 개입이나 선거 개입은 절대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경고성 발언을 날렸다.
4선의 김학용 의원이 4월 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은혜 의원 지지를 공식 선언하며 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한 것도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이를 두고 현직 공관위원이었던 김학용 의원이 사퇴 직전까지 특정 후보를 도왔던 것은 부적절하다고 유 전 의원 측이 지적하는 등 당 내부는 뒤숭숭한 모양새다.
#윤심은 있나, 없나
윤석열 당선인으로선 민주당을 크게 앞서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대한 많은 우군을 확보해 당내 기반을 넓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지방권력 교체와 동시에 지방권력 내부에 자신의 ‘깐부’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한 해 뒤인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곳을 싹쓸이하는 유례없는 대승을 거두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 기반이 크게 강화됐다. 더욱이 당시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철호 울산시장 등 문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문 대통령은 당정을 확실하게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지방선거에서 윤 당선인 우군이 얼마나 많이 지방권력으로 들어오느냐가 향후 윤 당선인의 ‘정치적 힘’을 결정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불출마하고 충남지사 출마 쪽으로 선회한 것도 이런 분석과 멀지 않다. 김 의원의 충남지사 출마는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가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 윤 당선인은 김 의원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충남지사 출마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당선인이 새 정부 국정 운영 동력과 직결되는 이번 지방선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윤 당선인이 4월 11일부터 TK를 시작으로 해 전국을 돌며 지역 순회에 나선다. 이번 방문도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보인다. 윤심이 없다고 하지만 윤 당선인도 사람인데 부담스러운 거물 선배들보다는 마음 편한 사람들이 좋지 않겠나. 지방권력을 국민의힘 거물 정치인들이 장악하면 윤 당선인을 향한 내부 태클이 심해지고, 무엇보다 차기 권력이 조기 급부상하는 걱정도 만들어질 것이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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