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소자 “VIP급 대부분 독방, 변호사 접견 자유, 간식 품질도 달라” 주장…구치소 “특혜 있을 수 없어”
정치 1번지가 종로라면, 대한민국 교정 1번지는 서울구치소다. 경성감옥과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로 이어지는 족보가 서울구치소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셈이다. 서울구치소는 서울에 있는 시설이 아니다. 1987년 11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던 서울구치소는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했다.
그동안 서울구치소에 머물렀던 인물들 면면은 화려하다. 전직 대통령 2명이 서울구치소에 구속된 전력이 있다. 2021년 사망한 노태우 씨와 2021년 12월 사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탄핵정국을 전후로 서울구치소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남재준 전 국정원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울구치소를 ‘서울구치소 청와대’라는 의미에서 서청대란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재벌 총수들도 저마다의 사건으로 구속됐을 당시 서울구치소에 머무른 이력이 있다. ‘사법농단 의혹’ 중심에 섰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드루킹 사건 주인공인 ‘드루킹’ 김동원 씨,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도 서울구치소에 머물렀던 인사를 논할 때 제외할 수 없는 이들이다.
2022년 지금도 서울구치소엔 화제 인물들이 모여 있다. 이른바 ‘VIP급 범털’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2020년 12월 23일 자녀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부터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정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 중반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만든 ‘조국 사태’ 핵심 인물로 꼽힌다.
지난 1월 27일 대법원이 징역 4년, 벌금 5000만 원, 추징금 1061만 원 원심 판결을 유지하며 형을 확정한 뒤에도 정 전 교수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4월 9일 정 전 교수는 외부 병원으로 이송돼 뇌출혈 의심 소견을 받고 정밀 검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와 부산대가 잇따라 자녀 조민 씨에 대한 입학을 취소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이 악화됐다는 후문이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정국을 격랑 속으로 빠뜨린 ‘대장동 개발사업 논란’ 관계자들도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2021년 10월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대장동 의혹 관계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서울구치소에 들어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최측근인지 여부를 두고 논란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2021년 11월 4일엔 대장동 의혹 열쇠를 쥐고 있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핵심 관계자들이 서울구치소에 들어왔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와 화천대유 자회사 NSJ홀딩스(천화동인 4호) 실소유주로 지목된 남욱 변호사다.
김만배 씨는 2021년 10월 14일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서울구치소에서 나오며 교도관에게 현금 165만 원을 건네 청탁금지법 혐의가 추가되기도 했다. 현금을 받은 서울구치소 교도관이 이 사실을 즉시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3월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청탁금지법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지난 2월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구치소에 합류했다. 곽 전 의원은 아들이 화천대유를 퇴사하며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아 논란 중심에 선 뒤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는 알선수재, 뇌물수수, 정치자금법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다.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 아들도 서울구치소에 머무르며 재판을 받았다. 노엘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래퍼 장용준 씨다. 장 씨는 2021년 9월 18일 밤 서울 반포동 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 음주측정에 응하지 않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장 씨는 2019년 서울 마포구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재판부는 장 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장 씨 측은 4월 14일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서울구치소 안에서도 논란에 휩싸였다. 약 5개월간 독방생활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독방 특혜 논란’이 불거진 까닭이었다. 장 씨가 독방생활을 한 것에 대한 특혜 여부가 논란 쟁점이었다.
2022년 초엔 ‘박사방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조주빈이 서울구치소를 무대로 다시 한 번 논란 중심에 섰다. 옥중 블로그 운영 논란이 불거진 까닭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조주빈입니다’라는 블로그가 개설됐고, 이 블로그엔 조주빈 상고이유서 등 자료가 게재됐다.
2월 4일 법무부가 직접 해당 논란을 해명했다. 법무부는 “조주빈이 작성한 편지, 재판 관계, 서류 등을 우편으로 받아 부친이 블로그에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구치소는 조주빈을 ‘편지 검열 대상자’로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방침을 결정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 중 대부분은 구치소 내에서 ‘범털’이란 은어로 지칭된다. 최근엔 범털 중에도 VIP 등급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범털은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화제의 인물로 거론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재소자들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자칫하면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교정 당국에서도 이들을 관리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은 4월 13일 익명 제보자 A 씨로부터 구치소 내에서 일어나는 범털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A 씨는 최근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석방된 인물이었다. A 씨는 “교도소 안에서도 ‘돈과 힘의 논리’는 통한다. 범털들은 각종 특별대우를 받으며 교정생활을 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범털 중에서도 VIP급이 있다. VIP들은 간식으로 과일이 나와도 제일 좋은 품질을 골라준다. 플라스틱 칼로 깎아주기도 한다. 사소(교도관 업무를 보조하는 재소자)가 그렇게 한다. 교도관들도 VIP급 범털들에겐 특별대우를 해준다.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은 따로 있었다. ‘VIP급 범털’이 신발 신을 때 교도관이 직접 신발을 신기 편하게 돌려주는 장면이었다.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씨는 “최근 들어 일반 재소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호사 접견이 제한되는 상황”이라면서 “VIP급 범털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변호사 접견을 하더라”고 주장했다. A 씨는 “그들은 아침에 변호사 접견하러 가면 오후 2시쯤 돼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A 씨에 따르면 범털 중에서도 VIP급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대부분 독방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노엘(장용준 씨)을 둘러싼 독방 특혜 논란이 불거진 배경으로 볼 수 있다”면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방에서는 서로 부대끼면서 생활을 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일반 재소자들은 ‘독방이 편하다’라는 인식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독방생활이 특혜로 느껴질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교도관이나 사소들이 재소자를 대하는 자세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A 씨는 “대선이 펼쳐졌던 3월 9일부터 3월 10일 오전까지 일어난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고 돌아봤다. A 씨는 “대선 개표결과가 윤곽이 나던 시점은 재소자들은 TV를 보지 못하는 시간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어떤 재소자가 ‘윤석열이 됐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순찰하는 교도관에게 물어본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이 됐는데 교도관이 그 동에 있던 범보수 진영 범털 재소자를 향해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A 씨는 “구치소 안에서도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돈과 힘의 논리가 구치소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것이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교정당국의 수용시설 관리 투명성이 상당히 강화됐다”면서 “독거 수용 관련된 내용에 대해선 상급 기관에서 독거 수용 사유를 일일이 살펴본다”면서 “각종 특혜와 관련된 의혹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제반 규정에 따라 철저한 심사를 거쳐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정 관계자가 특정 재소자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행위가 일어날 수 없다”면서 “재소자 시선에서 바라보면 특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실제로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있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과거 다른 구치소에 수용된 이력이 있는 한 인사는 “사실 구치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층과 층이 다르고 실과 실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서 “실제로 누군가가 목격했다고 떠도는 이야기가 허위일 가능성도 많고, 소문이 방과 방을 돌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인사는 “폐쇄된 공간의 좁은 틈 사이로 여러 가지 소문들이 떠돌다보니 교정 당국에서도 교정시설을 운용하는 데 있어 굉장히 조심스럽고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 “구치소에서 나오는 모든 소문은 재소자 시각에서 나온다는 점을 염두할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나도 구치소 안에서 상당히 많은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 대부분은 재소자들 사이에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구나 이해하는 정도만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당부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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