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조합과 시공사, 공사비 증액·부대시설 업체 선정 두고 갈등…시간 끌수록 조합 불리하다는 지적도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 불리던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올림픽파크포레온) 사업 공사가 중단됐다. 공정률이 52%가 넘은 상황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다.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4월 15일 0시부로 공사 현장에서 인력과 장비를 철수하고 유치권 행사에 나섰다. 조합 측은 4월 16일 2019년 12월 7일에 있었던 시공사업단과의 공사비 증액 계약과 관련한 조합 임시총회 의결을 취소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참석 인원 4822명 가운데 94.5%인 4558명이 찬성하는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어 조합은 공사가 10일 이상 중단될 경우 ‘계약 해지’까지 불사하겠다며 강경대응을 선언했다.
갈등의 첫 번째 도화선이 된 건 공사비 증액 문제다. 2019년 12월 7일 열린 조합 임시총회에 설계 변경과 자재 고급화를 이유로 공사비 5600억 원을 증액해주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설계를 변경할 경우 상가와 926세대의 일반분양을 추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계산이 섰다. 조합원당 분담금은 2억 원씩 늘어나지만 지금은 해임된 당시 조합장은 "일반분양할 경우 1평(약 3.3㎡)당 3500만 원씩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부담할 조합원 분담금을 8000만 원 수준까지 상쇄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타협 못할 금액도 아니었다. 86.4%의 조합원들이 동의하며 그 날 공사비 증액안은 가결됐다.
여기서 분양가 상한제 문제가 얽힌다. 2020년 7월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는 신축아파트 분양가 통제를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심사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HUG 분양가로는 앞서 논의한 내용과 달리 평당 분양가가 2900만 원대 수준이었다. 현재 조합 집행부 측은 3500만 원대의 평당 일반분양가를 근거로 들며 공사비 증액을 설득했던 전 조합장이 이번에는 빠른 공사 진행을 위해 HUG의 분양가를 수용하자고 했다고 주장했다. 분양이 진행되지 않아 공사대금을 정산 받지 못한 시공사들도 결단을 촉구했다. 조합원들은 전 조합장이 조합원의 이익에는 아랑곳 않고 시공사 편만 들어서 ‘헐값 분양’하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당시 이웃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평당 시세가 6000만 원에 육박하던 시기였다.
여론을 모은 조합원들이 수천 장의 조합장 해임발의서를 걷었고 2020년 6월 25일 총회에 해임발의안이 상정됐다. 그리고 해임이 발의된 당일 전임 조합장은 직인을 들고 혼자 시공사 현장사무실로 가서 공사비 증액안이 반영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조합 측은 “해임 발의된 조합장을 불러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행위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사비 증액 내용을 담은 계약은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공사 측은 “조합장 한 명만 불러서 날치기로 처리했다면 문제였겠지만 그전에 이미 총회에서 의결을 거쳐 절차를 다 밟은 정상적인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갈등의 두 번째 도화선은 부대공사 업체 선정 문제다. 공사비 증액안에 대해서는 2019년 12월에 의결을 했고 계약서에 도장을 날인한 건 2020년 6월이다. 새 집행부가 들어선 후로도 사업은 별 탈 없이 진행됐다. 그런데 돌연 2021년 11월 공사비 증액 이슈가 다시 불거졌다. 시공사 측은 “A 업체에 이미 발주를 넣어놨는데 조합 측에서 B 업체로 바꾸라고 통보를 했다”며 “안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갑자기 이전에 맺은 변경공사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도시정비사업 공사에서는 시공사가 경쟁입찰을 통해 부대공사 업체를 선정해 마진을 남긴다. 시공사가 조합의 의견을 수용해 부대공사 업체를 변경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그러기엔 둔촌 주공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너무 큰 사업장이었다는 게 시공사 측 주장이다. 기존에 계약한 업체가 이미 공장 생산을 시작했을 경우 시공사업단 측에서 물어줘야 하는 손해보상 부담이 상당해진다. 시공사 측은 “A 업체에 피해를 대신 보상해주는 거 아니면 업체 변경해줄 수 없다고 했더니 조합 집행부 측이 단지 고급화를 방해한다는 식으로 비난했다”며 “꼭 B 업체와 수의계약을 해달라고 고집부리는 걸 보니 결국 증액된 공사비보다는 부대공사 업체 선정의 문제가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핵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합은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결과를 총회 때 공개하지 않은 점과 계약서에 연대 보증인의 개인 서명이 없다는 점을 들어 계약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시공사 측은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결과는 발주처인 조합 측에 제공되기 때문에 해당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조합 측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연대보증인의 개인 서명을 요구해야 하는 쪽도 시공사인데 신속한 공사 진행을 위해 누락했더니 시공사가 아닌 조합 측이 이것을 문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조합 측은 “부대공사 업체 선정 문제는 같은 값이면 더 좋은 자재를 쓰자는 요구였다”며 “시공사가 마진을 남기겠다고 공사비를 과대 계상하는 문제가 너무 잦아 합리적인 요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부동산원 감정결과서 공개 문제에 대해서도 “저희가 해임한 전임 조합장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공사업단은 2년여 동안 1조 5000억 원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분양일정이 밀려 공사대금을 한 번도 정산받지 못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2년간 철거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공사를 외상으로 해준 시공사의 희생이 더 크다고 보인다”며 “계약금만 제때 안 들어와도 당장 공사를 중단하는 법인데 무상으로 50% 넘게 공사를 해주는 데가 어디 있나”라고 지적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둔촌 주공 분양이 미뤄진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양가가 올라 조합이 이익을 봤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미루면 손해만 보는 타이밍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을 길게 끌수록 조합 측에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공사업단과 조합 측이 강 대 강으로 대치 중이지만 공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부담은 조합원들이 지게 된다. 원자재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는 계속 오르는 중이고 당장 2조 1000억 원 규모인 이주비와 사업비 대출 만기도 각각 올해 7월과 8월이다.
조합이 시공사업단과 계약을 해지할 경우 다른 시공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2016년 계약 당시 서울 빌딩의 평당 공사비가 500만~600만 원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700만~800만 원까지는 오른 시점인 만큼 새 시공사를 구할 경우 정말 최소한으로 잡아도 30%는 오른 가격으로 공사단가를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건비 상승과 철근, 레미콘, 시멘트 등의 품귀난이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 맞물리면 60~70%까지도 공사비가 오를 수 있다는 게 업계인들 시각이다. 게다가 유치권 해제를 위해 기존 시공사업단에 1조 7000억 원의 외상공사비를 지급할 여력이 있는 시공사들을 찾기도 쉽지 않다.
앞서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시공사업단과 원만하게 마무리 짓고 빠른 시간 내에 정상적으로 입주하는 게 가장 나은 결말이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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