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발탁’ 민주당 전투력 끌어올리는 방아쇠 역할…권성동 오락가락 행보 ‘윤핵관 입지’ 좁힐 수도
5월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앞에 포탄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발목 잡기’라고 공세를 가하지만 윤 당선인의 미숙한 위기관리가 어려움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인사가 만사인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등 새 정부 구성에서 민주당을 자극하는 조각을 한 것은 물론, 당에서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전투적 여야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돼버렸다는 것이다.
#불안한 국정운영 준비
윤석열 당선인에게 가장 많은 반대 의견이 접수된 것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었다. 윤 당선인에게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보수언론들까지 집무실 조기 이전에 대한 반대 의견에 가세,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하되 국가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하고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면서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였다. 대통령 취임일인 5월 10일까지는 물리적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 제시가 있었지만 새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정하고 취임과 동시에 이곳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려다 오히려 제왕적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광화문 시대를 약속했는데 용산 시대는 또 뭐냐”는 지적도 나왔고, 대통령 관저를 정하는 것을 놓고 윤 당선인 부인 김건희 여사 개입설까지 나오면서 당선인 측은 이에 대한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첫 조각을 놓고도 비판이 쏟아졌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후보자 19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16명에 이르고, 남자는 16명이었다. 원희룡 박진 권영세 한동훈 이상민 후보자 등 서울대 법학과 동문이 5명이나 되는 점도 눈총을 받았다. 60대 이상이 13명, 영남 출신은 7명이었다. 광주·전남 출신은 1명도 없었다. 이를 두고 ‘서육남(서울대·60대·남자)’ ‘남영동(남자·영남·서울대 동문)’ 인사라는 질타가 나왔다.
국민의힘의 한 대구·경북(TK) 의원은 “영남이 많은 것은 윤 당선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TK를 비롯한 영남에 대한 응답과 보상을 한 정치적 행위라고 봐야 한다”면서도 “지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국민통합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이번 조각에서 다소 소홀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후보자들의 재산이 너무 많다는 것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당선인과 한덕수 총리 후보자, 18명 장관 후보자의 평균 보유 재산은 43억 원이다. 재산이 가장 많은 사람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160억 8290만 원을 신고했다. 재산이 가장 적은 사람은 조승환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 11억 3000만 원이었다.
장관 후보자 18명 중 절반이 넘는 10명은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수입차를 보유한 후보자들은 6명이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국회 보좌관은 “공직 후보자의 재산이 일단 30억 원이 넘어가면 청문회에서 무조건 잡음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며 “윤석열 정부 첫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가 많이 나오는데 재산이 많은 것은 공세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동훈 후보자의 발탁은 민주당 전투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의 이러한 인사 강공 전략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통과 강행이라는 초강수를 부른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정국 경색을 부른 것은 민주당 책임도 있지만 윤 당선인이 방아쇠를 당긴 측면도 있다는 의미다.
4월 13일 한동훈 후보자 지명 소식이 나오자마자 나온 옛 이명박(MB)계 좌장 이재오 상임고문의 얘기는 그래서 주목된다. 그는 이날 KBS 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나와 “무리한 인사이고, 또 적절하지도 않다”며 “민주당하고 소통이 되겠나, 통합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집권 초 첫 내각에 법무부 장관을 자기 사람을 갖다 앉힌다(는 것은), 법무부와 검찰 사법체계를 대통령 자기 휘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로밖에 안 들린다”면서 “민주당의 반대 속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윤 당선인이 임명을 강행하게 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정권을 교체하는 의미가 없다. 지난 대통령과 똑같이 하려면 왜 정권을 교체하나. 나도 같은 편이지만, 같은 편이 볼 때도 인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윤핵관’ 권성동의 실책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월 22일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다. 이를 두고 당 내부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했다는 의원총회 결과가 알려진 이날 낮부터 밤늦게까지 1200여 개에 이르는 항의 글이 달렸다. 게시글 작성자 대다수가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비판하며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철회를 요구했다.
박 의장 중재안이 사실상 민주당 원안과 같은 내용이라며 중재안을 수용한 권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거나, 국민의힘 탈당을 예고하는 당원들의 글도 있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이러한 지지층 내부 여론을 돌려세우려 했다. 그는 4월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국회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을 국민의힘이 선제적으로 수용했다”며 “악법 시도를 전부 저지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국민도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180석 민주당을 상대로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차선의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재안에 대한 반발이 한층 거세지면서 국민의힘은 중재안 파기를 하고 말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4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부패한 공직자에 대한 수사나 선거 관련 수사권을 검찰에게서 박탈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매우 크다. 국회는 더 신중하게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중재안에 반대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이 대표에다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까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피력했고, 윤 당선인마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결국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을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고 중재안 합의 사흘 만에 이를 뒤집었다. 국민의힘이 오락가락하면서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부담이 컸던 민주당은 오히려 호기를 잡아챘고, 더욱 강경한 자세로 법안 통과 시도에 나섰다.
‘윤핵관’으로서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 원내대표로 선출된 권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권 원내대표는 4월 26일 “검수완박법 처리 과정에서 제 판단 미스, 그로 인한 여론 악화 부담을 당에 지우고 책임을 전가시켜서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면서 사과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권 원내대표가 겉으로는 협치를 통한 정국 안정화 차원에서 중재안 합의에 나섰지만 사실상 자기 정치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윤핵관이라는 지위만 믿고 너무 독단적으로 나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권 원내대표가 이번 파장의 책임을 과연 넘어갈 수 있겠느냐는 관측도 높다. 민주당의 국회 일방통행 관행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고발할 수 있었는데, 그 책임을 오히려 국민의힘이 덮어쓰게 됐다는 게 일부 의원들 의견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4월 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권 원내대표가 이 합의안을 막아내지 못하면 본인의 입지도 상당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민주당 공세에 무너지면 현재 윤핵관 중심의 당내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전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예측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내 기반이 약한 윤 당선인으로서는 권 원내대표가 당을 빠른 시간에 당선인 측과의 긴밀한 협조체제로 전환한 뒤 문재인 대통령 사례처럼 당정청이 확실한 원팀을 구성해 국정에 동력을 불어넣어줬으면 하는 기대치가 컸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가 꼬여가고 있고 향후 홍준표 의원이 보수 핵심 지지세력인 대구의 시장이 되는 등 기존 당내 실력자들의 목소리까지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의원이 당내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내부 반대세력이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윤 당선인도 임기 초반부터 여러 난관이 닥칠 수 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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