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동안 미녀>의 한 장면. |
이런 치마가 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불편한 이도 있다. 억지로 입다가 탈이 나기도 하고 때로 치마를 몸에 맞추는 게 아니라 몸을 치마에 맞추기도 한다. 좋아서 입더라도 많은 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다 보니 조심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치마에 관한 직장인들의 에피소드를 들춰봤다.
입기 편하고 생활하기 좋은 치마도 있겠지만 가장 불편한 치마 중 하나가 정장 치마다. 회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단정해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일하는 데는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C 씨(여·29)는 치마 때문에 밥 먹고 나면 소화도 잘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복장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는다.
“정장 치마라는 게 굉장히 불편한 스타일이거든요. 좀 편한 플레어스커트 같은 치마를 입으면 좋은데 그건 또 규정상 안 된대요. 업무 특성상 거의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요, 정장 치마를 입고 있으면 정말 답답합니다. 허벅지랑 배 부분을 항상 압박해요. 한번은 좀 편한 치마를 입고 왔는데 부서장님이 따로 부르시더라고요. 불편한 점을 호소했는데도 다른 여직원들도 있는데 혼자만 봐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회사에 외부 손님도 많이 오는데 이미지 상 어쩔 수 없다나요? 남들 보기 좋으라고 건강까지 해치면서 일할 때도 지장 받아야 하니 이해가 안 돼요.”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7)는 불편한 치마 유니폼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활동에 제약이 많은 유니폼은 근무할 때도 도움이 안 된단다.
“제품 상자를 들고 날라야 할 때도 있고 쭈그리고 앉아서 박스를 처리해야 할 때도 많은데 유니폼은 일의 능률을 올리기는커녕 떨어트리죠. 유니폼 치마 때문에 종종 걸음을 해야 하는데 일이 급할 땐 오히려 넘어질까 봐 겁나요. 지난봄에 가을 유니폼을 미리 맞췄는데 요새 입으려니까 너무 불편한 거예요. 살이 많이 쪘더라고요. 야근도 많고 하니 제대로 관리를 못했죠. 복장이 자유면 다른 옷 입으면서 서서히 빼거나 할 텐데 당장 입을 옷이 없으니 급하게 독한 다이어트를 했어요. 힘든 회사 생활에 굶으면서 다이어트까지 하려니 진짜 지치더군요.”
치마와 관련한 ‘아픈 추억’을 간직한 이도 있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L 씨(여·28)는 전에는 가끔씩 치마를 입었지만 이제는 그나마 결혼식 외에는 거의 입지 않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예전에 오래간만에 치마를 입고 출근했는데 점심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스타킹 속에 치마가 끼어 들어간 걸 모르고 나온 거예요. 그날따라 바빠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는데 갑자기 선배언니가 절 잡아끌고 화장실로 데려가서 알았어요. 남자직원들이 먼저 봤을 텐데 차마 얘길 못했겠죠. 얼굴이 화끈거려서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겠더라고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나왔는데 그 뒤로 치마 잘 안 입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아직 얼굴 빨개지네요.”
설계회사에 근무하는 J 씨(여·30)는 여직원이 본인 한 명뿐이라 치마를 꺼리게 된다고 이야기 했다. 관심과 시선이 집중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란다.
“1년 내내 거의 바지만 입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가뭄에 콩 나듯 치마를 입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다른 직원들이 소개팅 하느냐, 집에 무슨 일 있느냐 등등 하도 물어봐서 신경 쓰이더라고요. 일단 치마를 입고 오면 다리로 오는 시선이 먼저 느껴지고요, 뒤에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모여서 쑥덕거리는 게 보여요. 치마 입는 것 자체도 관심 집중이더니 나중에는 길다 짧다 꼭 한마디씩 하고…. 치마만 입으면 하루가 길게 느껴져요. 여직원이 하나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남자 직원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어서 이제 치마는 거의 입지 않습니다.”
치마의 여러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치마를 즐겨 입는 직장인들도 있다. 그들은 치마에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외식업체에 근무하는 E 씨(여·25)는 평소에 원피스나 치마를 즐겨 입는다. 자율 복장이지만 항상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키가 크고 살집이 있는 편이어서 바지를 입으면 더 커 보이는 것도 있고, 남자 같다는 소리를 들어요. 게다가 매일 바지만 입으면 제 스스로도 관리를 안 하게 될 것 같아서 치마를 자주 입어요. 가끔 공주대접도 받고 싶은데 예쁜 원피스를 입고 가면 대우도 달라지는 것 같고 그래요. 행동할 때도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있고 더 예쁜 치마를 입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되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저는 치마가 적당한 긴장감을 줘서 좋은 것 같아요.”
치마에 관한 추억은 여성들만 있는 게 아니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동료 때문에 곤란한 적이 있었다는 직장인도 있다. 침구 회사에 다니는 D 씨(31)는 유독 짧은 치마만 입는 동료가 곁에 오면 저절로 조심스러워진다고 털어놨다. 또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서다.
“자기 맘대로 입는 건 좋지만 직장에서 미니스커트는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거든요. 한번은 여직원이 제 옆에 서서 다른 직원과 업무 협의를 하고 있는데 제가 급한 서류를 정리하다가 한 장을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아무 생각 없이 서류를 집어 드는데 그 여직원이 저를 째려보더라고요. 억울했지만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오해가 깊어질까 봐 가만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짧은 치마 입은 여직원이 보이면 긴장합니다. 옆에 오기라도 하면 부동자세 되고요.”
최근 영국의 한 대학과 의류업체가 직장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직장 여성이 정장 바지를 입었을 때보다 치마를 입었을 때 더 좋은 첫인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간주돼 더 많은 연봉을 받았다는 것.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입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까 싶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