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상인들 보행길에서 소외 불만 높아…엎치락뒤치락 바뀌는 시정에 혼란 가중
휴일이면 젊은이들이 이 보행길에서 산책을 하고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공중보행길 아래로 내려가면 보행데크 아래에 숨어있는 1층 상가가 보인다. 공중보행길과 달리 젊은층 유동인구가 거의 없고 보행데크 탓에 빛이 들지 않아 어둑하게 그늘이 지는 곳이다. 밝은 낮 시간대에도 지하나 다름없이 어두운 탓에 세운·청계 상가 1층 가게들은 창문 앞에 LED 조명을 가득 켜 놨다. 을지로4가역 인근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밝힌 A 씨는 “3층 보행로로는 산책할 겸 자주 가지만 1층 상가는 너무 을씨년스러워서 접근하기 꺼려진다”라고 말했다.
보행길을 따라 충무로 쪽으로 걷다 보면 아직 공사 중이라 개방하지 않은 인현·진양상가 공중보행길이 나온다. 보행길 곳곳에는 ‘공중보행길은 3층만 대박찬스, 1층은 슬럼화’, ‘시민공간 탈취한, 효용성 없는 보행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18년 9월에 착공한 공사는 완공 일정이 밀려 2022년 5월인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시 측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의 소음 민원으로 야간 공사가 중지된 까닭이 크다. 그러나 인근 상인들은 공사를 진행할 때마다 매설돼 있던 전기배선, 통신배선, 가스배선 등이 계속 튀어나오는 바람에 공사 진행에 제동이 걸렸다고 주장한다. 인근 상인들은 “무리하게 배전을 건드리다가 화재가 난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진양·인현상가 환경개선추진위원회 이영상 위원장은 “다 낡아서 헐어야 되는 육교를 굳이 무리하게 복원하느라 공사가 4년씩 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안전진단 D급 판정을 받은 시설물을 보수한다고 개선하기는 요원한 일일 뿐더러 50년 넘은 상가 건물 옆에 굳이 재건축도 못하게 육교를 왜 다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행데크가 천장을 가리는 바람에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에서 나오는 매연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점포 안으로 유입되는 것도 상인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고충이다. 실제로 2018년 9월 서울시 중구청 환경과에서 발간한 자료를 살펴보면 진양상가 일대의 대기오염 농도가 서울시 전체 평균의 약 2배에 달했다.
진양·인현상가까지 보행길이 이어지면 1층 상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자 공구 상가 중심이라 고객층이 명확한 세운·청계상가와 달리 진양·인현상가 상권은 평범한 음식점이나 마트 등이 주로 입점했기 때문이다. 청계상가처럼 3층에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설 경우 3층 보행데크에서 1층으로 내려올 유인이 없어 1층 상권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진양·인현상가 인근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상인 B 씨도 “우리한테 보행교는 필요없는 건데 몇 년 동안 장사도 제대로 못하고 고생하느라 여기 상인 중에 저걸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며 “먼지 뒤집어쓰면서 소음에 시달리고 매출도 떨어졌는데 지자체에서 보상해준 적도 없고 완공되면 매출이 떨어질까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을지로 공중보행길 조성을 결정하던 당시 거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도시 계획이나 개발은 한 번 방향성을 잘못 잡으면 상당한 예산을 소모하면서도 주변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보행교가 지어져서 주변 상인들 매출이 떨어졌다기보다는 공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불편이나 코로나19 등 다양하고 복합적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보행교가 개통되고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옛날에 어땠는지는 잊고 적응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소인 종묘 부근에 공중보행길이 들어서며 산책로를 찾는 MZ세대의 유입이 늘어난 탓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가게들이 들어서고 새로 상권이 형성되기도 했다. 보행길 데크와 연결된 청계상가 3층에는 공구상가 중간 중간에 카페와 식당, 책방, 꽃집, 술집 등이 자리를 잡았다. 인근의 직장인들이나 휴일에 놀러오는 MZ세대들이 이곳의 주 고객이다. 청계상가 3층에서 근무하는 상인 C 씨는 “이미 젊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카페도 오고 가면서 유동인구가 많이 늘어난 곳”이라며 “보행교가 없어지면 지금처럼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또 다시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4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하며 고 박원순 전 시장의 도시 재생 사업을 완전히 뒤집고 세운상가 일대를 철거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주변을 연결한 공중보행길도 걷어낸다는 구상이다. 공사비용이 1000억 원 가까이 소모된 다리지만 완공도 되기 전에 철거 계획부터 잡힌 셈이다.
세운상가 일대 정비계획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등장해 시장이 바뀔 때마다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지속성 없고 수명 짧은 재정비계획이 수립됐다 엎어지길 반복하며 인근 상인들의 불신과 불만은 커졌다. 1988년 세운상가 2·3구역 재개발계획, 1994·1996·2001년의 도심재개발 기본계획, 2003년 도심형 재개발사업 모델 개발, 2009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등을 거쳐 2015년엔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이 수립됐다. 여기에 오 시장이 다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불러낸 것이다.
앞서의 박합수 교수는 “도시 재생을 한다고 해서 공사 과정을 참고 견딘 주변 상인분들 입장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정에 혼란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단숨에 전면 철거를 하기보다는 소폭의 보완을 통해 개선을 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게 우선이고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철거를 결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은 최소 10~20년이 소요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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