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다각화 중책 맡아, 크레이튼과 시너지 효과 기대…DL 내 수많은 LG 출신 임원도 눈길
김종현 부회장은 1984년 LG그룹에 입사해 회장 비서실을 거쳐 LG화학에서 배터리, 석유화학 관련 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2020년 12월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GM 전기차 화재 리콜 사태에 책임을 지면서 지난해 10월 물러났다.
김종현 부회장이 맡은 DL케미칼은 DL그룹 차세대 먹거리는 물론, 그룹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중요한 회사다. DL케미칼이 비상장사이므로 지주회사 DL(주)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DL그룹의 건설 계열사 DL이앤씨, DL건설 등은 상장해 있지만 화학 계열사 중에서는 상장사가 없다. 김 부회장이 DL케미칼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중책을 맡은 셈이다.
#DL케미칼, 당분간 실적 부진 예상
DL케미칼의 현재 상황은 좋지 않다. 유가가 급등하고 있고, 지난해 인수한 크레이튼 인수 비용도 계속 반영되고 있다. DL케미칼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21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203억 원)에 비해 대폭 줄었다. DL(주)의 연결기준 영업이익 역시 323억 원으로 증권가 예상치를 밑돌았다. DL케미칼의 주력 제품인 폴리부텐 가격은 상승했지만 유가가 급등하면서 마진폭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DL케미칼의 2분기 실적도 부진할 전망이다. DL(주)는 2분기 200억 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크레이튼 인수 비용과 관련해 재고자산공정가치평가로 1000억~1300억 원을 손실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정원 교보증권 연구원은 “크레이튼 사업부는 비용 반영 부담이 감소하는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이익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DL케미칼은 지난해 9월 글로벌 석유화학 업체 크레이튼을 인수했다. 크레이튼의 2020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5억 6300만 달러(약 2조 원), 2억 6200만 달러(3335억 원)였다. 크레이튼의 주력 제품인 스타이렌블록코폴리머(SBC)는 미국 및 유럽시장 점유율 1위다. SBC는 위생용 접착제와 의료용품, 자동차 내장재, 5세대(5G) 통신용 케이블 등에 활용된다.
DL케미칼의 크레이튼 인수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DL케미칼의 폴리부텐 시장점유율은 세계 1위 수준이다. 하지만 폴리부텐이 구산업으로 분류되며 진입장벽이 낮아 공급 과잉 가능성이 제기됐다. 위정원 연구원은 “크레이튼 인수로 DL케미칼의 스페셜티(고부가가치) 매출 비중은 14%에서 36%로 급증할 것”이라며 “화학 시황 변동을 넘어서는 고부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체질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크레이튼 인수 가격은 16억 달러로 당시 환율 기준 1조 9000억 원에 달한다. DL케미칼의 기업 규모를 감안하면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다. DL케미칼은 피인수기업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수대금을 치르는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크레이튼을 인수했다. DL케미칼은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내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상대적으로 이자 부담이 덜하다. 그럼에도 금리 상승기인 만큼 계약 조건에 따라 추가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종현 부회장의 숙제는?
김종현 부회장 선임과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크레이튼 인수를 주도한 김상우 전 DL케미칼 부회장이 김종현 부회장 영입과 동시에 퇴진했다는 점이다. DL 측은 일신상의 이유로 김상우 부회장이 퇴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는 인수 가격과 관련해 최고위층의 불만이 있었거나 크레이튼과 DL케미칼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데 적임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우 부회장은 2012년 대림산업 전무로 합류하기 전 BNP파리바, 소프트뱅크코리아, SK텔레콤 등에서 투자 업무를 맡았다. 인수합병(M&A) 전문가지만 화학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DL케미칼이 당분간 추가 M&A보다는 크레이튼 인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배경이다.
김종현 부회장은 크레이튼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화학제품 국산화 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친환경 사업이 기대된다. 크레이튼은 소나무 펄프 공정 제품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김 부회장은 크레이튼이 가지고 있는 약 800개의 특허와 전 세계 13개 공장, 5개 연구개발(R&D) 센터 활용 방안도 고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DL케미칼이 당장 배터리 신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은 낮게 본다. 김종현 부회장은 LG그룹이 배터리 기술 유출에 얼마나 민감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DL그룹은 옥상옥 지주회사 체제인데 DL(주) 최대주주인 대림의 주력사업이 석유화학 트레이딩”이라며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대림 지분 52%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므로 결국 DL케미칼이 잘 돼야 오너십도 강력해진다. 그만큼 김종현 부회장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종현 부회장이 DL케미칼 조직원들과 얼마나 잘 융화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김 부회장에 대한 DL케미칼 내부 분위기는 엇갈린다. 또 다시 LG 출신이 왔다면서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반면 김 부회장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간 DL그룹에는 수많은 LG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선임됐다. 2013년 DL그룹에 합류한 남용 전 LG그룹 부회장(현 DL이앤씨 이사회 의장)을 시작으로 배원복 대림 부회장, 전병욱 DL(주) 대표, 마창민 DL이앤씨 대표, 윤준원 DL모터스 대표, 허인구 전 DL모터스 대표, 이준우 전 대림 대표, 김재율 여천NCC 대표 등이 LG 출신이다. 이해욱 회장의 부인 김선혜 씨가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외손녀인 관계로 DL그룹과 LG그룹의 친분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DL케미칼 관계자는 “김종현 부회장이 LG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입한 것은 아니고, 배터리 사업을 끌어올린 실적이 있어서 적임자라고 판단해 영입한 것”이라며 “크레이튼을 안착시키는 등 기존 사업을 고도화시킬 계획이고, 신사업 발굴도 계속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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