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창원 부사장(오른쪽)과 최태원 회장. | ||
지난 7월 초 SK케미칼은 금융감독원에 대주주인 최창원씨의 보통주 지분이 8%대에서 10.32%로 늘었다고 보고했다.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지분을 기준으로 SK케미칼의 나머지 주요주주는 최태원(6.84%)-SKC(6.20%) 순이었다. 지분 구성을 보면 최창원씨가 확실한 오너급 대주주인 셈이다.
최창원씨는 SK케미칼 부사장이다. 최 부사장의 형은 최신원 SKC 회장, 최태원 SK(주) 회장은 그의 사촌형이다. 최신원-최창원 형제의 아버지는 최종건 ‘SK그룹’ 창업주고, 최태원 회장의 부친은 최종현 SK그룹 2대 회장이다. 최종현 회장 별세 뒤 SK그룹은 손길승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활동하다 SK사태 여파로 물러나고 현재는 SK(주) 회장이 사실상 그룹 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SK사태 직전에도 최종건가와 최종현가의 2세 간에 그룹 분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SK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얘기는 물건너 갔다. 그러다 다시 최창원 부사장의 지분 증가가 두드러지면서 SK그룹 분리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최창원 부사장이 중심이 돼서 SK그룹에 미니 분할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올해 들어 최 부사장의 지분 증가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3월 말 사들인 지분 중에는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엔론 부회장이 처분한 SK케미칼 주식도 들어있다.
게다가 SK케미칼도 SK그룹이 지주회사격인 SK(주)의 주식 3.28% 가운데 0.86%를 SKC&C에 넘기기도 했다. SKC&C는 최태원 회장이 지분의 44.5%를 가진 최종현가의 지주회사격인 회사다.
전체적으로 SK케미칼의 그룹 핵심계열사에 대한 지분 보유를 통한 상호관계는 느스해진 대신 최종건가의 막내인 최창원 부사장의 지배력은 높아진 것이다.
지난 상반기 내내 최재원 부사장의 SK케미칼 지배력이 커지면서 이는 곧 최종건가의 분리 신호탄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자 최태원 회장은 지난 5월 말 “계열 분리는 없다”고 못박았다.
최창원 부사장이 SK케미칼이나 SK건설 등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구문이다. 그런 차원이지 계열분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은 SK사태를 계기로 SK엔론 부회장을 맡으면서 SK텔레콤 경영에서 빠졌다. 최창원 부사장은 SK사태 이전에는 SK네트웍스 경영에도 간여했지만 SK사태를 계기로 SK네트웍스 경영에서 빠졌다. SK의 3대 주력사로 부를 수 있는 SK(주)-SK텔레콤-SK네트웍스 경영현장에 남아있는 오너 경영인은 최태원 회장이 유일하다.
최태원 회장의 “분리는 없다”라는 말이 의미는 역설적으로 최신원 회장쪽에서 능동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한때 최신원 회장쪽에서 워커힐호텔과 SK네트웍스 등 과거 최종건 회장이 창업하거나 인수한 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워커힐은 SK사태로 구조조정 차원에서 매각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했고, SK네트웍스는 채권단인 은행관리로 남아있다. 게다가 계열 분리를 위해선 해당 계열사 지분을 최신원 회장가에서 사들일 만한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당장 큰 규모의 SK그룹 분가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최창원 부사장의 SK케미칼 대주주 등극이 ‘유의미하다’고 보는 시각도 재계 일각에 있다.
SK케미칼이 SK건설의 대주주(40%)고, 삼양사와 반씩 지분을 나누고 있는 폴리에스터 생산업체인 휴비스의 대주주(50%)다. 또 SK제약 등을 합병해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은 SKC 회장과 SK텔레시스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SK텔레시스는 SKC가 지분의 77.13%를 갖고 있는 회사로 SK텔레콤에 납품하는 중계기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4천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SKC는 SK(주)가 47.3%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로 최신원 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SKC는 SK해운이나 SK증권, SK케미칼, SK텔레시스 등의 주요주주로 등장하고 있어 SK그룹의 비주력 계열사 지배구조의 허리를 담당하는 격이다.
SK(주)와 SKC의 연결고리만 끊어지면 최종건 회장 2세들이 SK케미칼, SKC, 휴비스, SK건설, SK텔레시스 등으로 구성되는 소그룹으로 출발해도 되는 그림인 것이다. 물론 이 정도 크기의 파이에 대해 최종건가에서 만족할지 여부와 SK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계열사들이 계열 분리 후 껍데기 논란에 휩싸이지 않을 ‘보완장치’에 대한 논의도 필수적이다.
SK(주)와 SKC의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해도 대주주의 현금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신원 회장이 SK 계열사 지분은 미미하다. 이 부분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최태원 회장의 이야기대로 “계열분리는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독립경영을 하고 있는 계열사에서 파이를 키우고 현금마련이 되면 “계열 분리는 (당분간) 없다”로 새기는 편이 맞을 것이다.
SK케미칼의 대주주로 등극한 최창원 부사장은 최종건가 2세 중 유일한 주식부자다. SK 주변에선 최 부사장이 ‘내 몫에 대한 요구가 똑부러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종현 회장 생전에 아버지 몫을 당당히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SK쪽에선 그런 얘기에 대해 웃어 넘긴다. 어쨌든 그가 매사 명확하고 명석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번에 두산 ‘형제의 난’ 때 드러난 벤처기업 엔세이퍼에 대한 지분 매각 과정에서도 그는 깔끔함은 드러났다. 두산의 박용만 부회장과 삼양사의 김윤 회장과 함께 엔세이퍼에 지분을 투자한 그는 삼양사쪽 지분과 SK쪽 지분을 모두 두산에 넘기고 큰 손실 없이 퇴각했다.
SK케미칼을 최종건가의 분가 대비 베이스캠프로 보는 시각이 여기서 출발하기도 한다. 최태원 회장 등 최종현가 2세들의 상호 양해 없이 그가 SK케미칼의 대주주로 등극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최재원 부회장의 지분이 최창원 부사장에게 넘어간 것은 그런 ‘양해’의 시그널로 해석되기도 한다.
SK케미칼을 중심으로 최 부사장이 그려낼 그림에 재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