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치른 지 80여 일 이번에는 우리 동네의 일꾼을 뽑는 선거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일부 격전지를 중심으로 제 2의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고 대선이 0.7%p 차이라는 박빙의 승부였던 탓일까.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함으로써 국정을 안정되게 운영할 수 있는 동력으로,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을 견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우리가 피부로 당면해있는 여러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이며 각종 난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일꾼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지역의 정치가 중앙의 정치에 오랫동안 예속돼오면서 이번 선거에서 역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민의는 가려지거나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또 인구의 소멸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은 민의의 소실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방선거에 '지방'은 존재하는가. 지역 살림을 꾸려갈 사람들을 뽑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역의 민의가 과연 잘 반영될 수 있을지,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떻게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이번 지방선거의 여러 현장을 취재했다.
지방선거 분위기가 막 시작되던 5월 초 경북 군위에서 취재 중이던 제작진은 길에서 쓰러진 한 어르신을 발견했다. 119에 신고를 한 뒤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구급차는 27분이 흐른 후에야 도착했다. 군위에는 병원이 없기 때문에 응급환자를 싣고 안동이나 대구까지 가야 하므로 다른 응급환자들까지 수송하다 보면 길에서 수 시간을 버리게 된다는 것.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 소멸 위기와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치열한 정책 대결과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 자리다.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던 5월 19일 0시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는 사당역 광역버스 정류장으로,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는 군포 물류센터 현장으로 향했다. 경기도민의 민생을 두 발로 뛰어 챙기겠다는 두 후보의 다짐과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는 윤석열과 이재명이라는 거물 정치인들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대선이 치러진 지 80여 일밖에 지나지 않았고 결과 역시 0.7%p라는 박빙의 승부였기 때문이다.
김동연, 김은혜 두 후보는 이번 선거가 윤심과 명심의 대결이나 대선 2라운드처럼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의 지원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고 있다. 김은혜 후보는 국민의힘 안철수 성남 분당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와 출근길 인사를 함께했다. 김동연 후보 역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후보와 함께 시민들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 지역 자체의 현안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두 후보의 공약 역시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 교통과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은 큰 틀에서 차이가 없어 보인다.
5월 9일, 경북 경산시에서는 국민의힘 경산시장 후보 공천 과정이 불공정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탈당 후 무소속으로 경산 시장 선거에 출마한 오세혁 후보는 당내에서 경산시장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 당협위원장인 윤두현 의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와 윤두현 의원은 절차에 따라 공천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공천 잡음이 불거진 데는 또 있었다. 국민의힘 하동군수 후보 공천 과정에서는 하영제 의원이 지역당협의회장과 통화하며 이정훈 후보를 밀어주자 하는 내용이 경남도민일보를 통해 공개되었다.
경산 공천과 마찬가지로 당과 하영제 의원은 적절한 절차를 따라 후보가 정해진 것이며 오히려 사적인 통화 내용이 공개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서도 공천 갈등은 마찬가지다. 성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배국환 후보가 전략공천 되면서 경선을 준비하던 예비후보들과 일부 시민들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조신은 당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하는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단독으로 출마해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되는 무투표 당선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500명을 넘었다. 1998년 지방선거 이후 최대 규모다. 서울 양천구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16명의 구의원을 뽑지만 이중 14명이 이미 당선이 확정되었다.
거대 양당의 '자리 나눠 먹기'라는 비판이 상당한 가운데 무투표로 당선된 후보들은 또한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있어 당선된 후보들의 공약이나 정책 등의 정보를 유권자들은 알기 어렵다.
이런 문제를 선거구 획정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다양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민의를 폭넓게 수용하고자 이번 선거에서는 전국 11곳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실시된다. 중대선거구제는 기존의 소선구제를 탈피하여 선거구당 최대 5명까지 선발하는 제도이다.
시범 실시구역을 시작으로 본격적 제도 도입이 이번 선거에서 이루어지려 했다. 그러나 대구시의회는 중대선거구제 시범지역 중 하나인 '수성구 을'을 제외한 모든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충남 예산군은 선거구 쪼개기가 아닌 합치기가 논란이 되었다. 기초의원 선거구 중 '나' 선거구(대술면, 신양면, 광시면)의 경우 인구 감소로 '가' 선거구(예산읍)와 통합될 위기에 처했다. 기존대로라면 '나' 선거구에서 2명, '가' 선거구에서 3명으로 총 5명의 군의원이 선출되어야 하지만 선거구가 합쳐지면서 총 4명을 선출하게 된 것이다.
예산읍과의 유권자 수 격차로 4명의 기초의원이 모두 예산읍에서 나올 것을 우려한 3개 면 주민들은 투표 보이콧까지 선언했다. 예산읍 출신의 기초의원들이 굳이 3개면을 위한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유례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 지역과 주민의 현안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응답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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