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됐지만 ‘약’ 관련 입법 처리 미뤄…정식허가 지연 속 전문가들 “불법구매 약 복용 위험”
방영주가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로 임신중절 약에 대해서 묻자 병원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산 (임신중절) 약은 다 가짜다, 먹으면 큰일난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는 정현이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자 댓글로 임신중절 약 판매 브로커가 ‘여자친구에게 임신중절 약을 선물해보라’고 권하는 내용도 나온다.
임신중절 약을 인터넷에서 구매하고 판매하는 일은 드라마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횡행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임신중절 약’, ‘임신중절약 구매방법’, ‘미프진 후기’ 등을 검색하면 구매 사이트나 구매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약물 낙태 방법을 상담해준다는 카카오톡, 텔레그램, 사이트 정보부터 약을 택배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광고 글까지 수십 건이 나온다.
그중 임신중절 약을 판매하는 ‘OO약국’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의사 및 의료 전문가와 협력해 상담을 제공한다”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임신 12주 안에 집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는 “미소프로스톨은 임신 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약이며 어떤 나라들에서는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이라며 “임신한 지 9주가 되지 않았다면 임신중절 약을 요청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약물을 복용하면 자연 유산과 매우 비슷한 과정을 유발해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98%의 확률로 임신을 중지한다. 수백만 명의 여성이 안전하게 이 방법을 사용해왔다”고도 홍보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미프지미소’라는 이름의 약을 7주차용은 36만 원, 12주차용은 59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주문 즉시 발송하며 택배비용은 무료였다.
임신중절 약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복용했다는 사람들의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약을 40만 원에 구입해 복용했다는 A 씨는 “이부프로펜 진통제를 8알을 다 먹어도 아프다. 24시간 내에 (이부프로펜) 8알을 다 먹었다. 그만큼 너무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3일차인 날도 통증에 자다가 깼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복통이었다”고 회고했다. 임신 5주차에 미프진으로 임신중절을 했다는 B 씨는 “안 죽는 게 신기한 통증이었다. 배 안이 불타고 찢기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을 이유로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현재까지 임신중절 약과 관련한 입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헌재 결정으로 66년간 ‘낙태죄’라 불리던 형법 제269조 제1항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와 제270조 제1항 중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은 2021년부터 효력을 잃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지 수술이 허용되는 범위는 여전히 효력을 갖는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임산부나 배우자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임부 건강 위험 등의 경우 임신 24주 내 낙태가 허용된다. 현재 상황에서는 수술 허용 범위는 남고, 처벌 규정은 사라져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수술이 이뤄져도 딱히 처벌할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낙태 허용 시점을 3단계로 구분해 임신 14주까지 전면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이 엇갈리자 지금까지 처리를 미루면서 공백이 생겼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임신중절도, 임신중절 의약품 구매도 모호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단 의료접근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약물적 방법으로 임신중단을 경험한 189명 가운데 42.8%는 국내 혹은 해외의 임신중지 약물 판매자·단체를 통해 약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약물적 방법을 택한 이유(중복응답)로는 ‘약물방법이 수술방법보다 좀 더 안전하거나 내 몸에 영향이 적을 것 같아서’(41.3%)가 가장 많았다. ‘임신중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에 관한 정보가 없어서’(25.9%), ‘알아본 의료기관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없다고 해서’(21.7%), ‘임신중단에 필요한 비용이 없거나 부족해서’(18.5%) 등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대체입법의 부재와 정부의 약물 도입에 대한 정책 마련이 늦어짐에 따라 불법 약물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구매하는 행위는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는 지난해 5월 14일부터 11월 5일까지 진행한 온라인 의약품 불법판매 모니터링에서 임신중절약 등 의약품 불법판매 3986건을 적발했다. 식약처의 의약품 온라인 판매광고 적발 현황을 보면 임신중절약 불법 거래는 2015년 12건에서 2019년 2365건 적발돼 20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임신중단 약물 합법화 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2021년 7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Linepharma International)’과 임신중절 약 ‘미프진’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품목 허가 신청을 했지만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당초 가교임상(해외 임상시험을 거친 약물이라도 한국인을 대상으로 다시 임상시험을 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절차)을 생략하고 빠르게 허가가 날 것이라는 업계 예측이 있었지만, 식약처는 현대약품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해당 품목의 일부 자료가 미비해 보완을 요청한 상태이며, 업체의 보완 자료가 제출되는대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식약처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해서 제출했는데 보완 요청이 있었다. 가교임상은 아직 시작 안 된 단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임신중절 약을 불법 구매해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불법 유통되고 있는 제품의 경우 식약처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한 바 없으므로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 산부인과 전문의는 “미프진은 자궁 외 임신이나 불완전 유산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복용 가능한 주수도 12주 미만인데, 월경일을 기준으로 계산한 임신 주수가 부정확할 수 있어 임신중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기형이 유발되거나 출혈이 심하게 나는 등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절 약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일부 임신중절 약의 성분인 미소프로스톨의 경우 불완전 유산 및 자궁출혈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다”며 “해외에서도 이 약을 복용하고 패혈증이나 사망 등의 사고가 있었다”고 얘기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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