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유니클로’ 론칭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동빈 롯데 부회장.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신 부회장은 최근 그룹 주력계열사인 롯데백화점이 벌이는 새사업장 개장행사나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사업을 챙기는 모습을 외부에 알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그가 직접 국내 도입에 관여한 크리스피크림도넛 신촌 1호점 개점 행사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9월1일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캐주얼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 사업개시 기자회견장에도 직접 참석했다.
행사장은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뉴스가 되기에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그가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의 뒤를 이어 롯데그룹의 차기 대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재계에선 그가 지난해 그룹정책본부장에 임명된 것을, 사실상 그가 형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을 제치고 한국 롯데의 2인자로 낙점된 것으로 보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좀처럼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그의 이런 행보가 사전에 공식적으로 언론에 통보돼 노출됐다는 것이다. 그에게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도록 배려한 셈이다.
재계에선 이를 두 가지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하나는 신동빈 부회장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신규사업의 출점 행사에 쏠리는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직접 참여해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곤란한 질문을 받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신 부회장이 새 사업의 성공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두 행사 모두 롯데쇼핑이 주관해서 들여온 사업 브랜드라는 점이다.
크리스피크림도넛은 롯데쇼핑의 사업부서이고, 유니클로는 롯데쇼핑과 일본 유니클로가 49 대 51의 지분 비율로 합작한 회사다.
즉 롯데의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신규 사업분야에는 신동빈 부회장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신 회장의 큰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이 오랫동안 백화점 분야에서 일했지만 롯데쇼핑의 중심에는, 롯데그룹의 중심에는 신 부회장이 서 있다는 점을 외부에 공표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한때 재계 일각에선 신 부사장이 신 회장의 큰딸이고, 오랫동안 롯데쇼핑에서 일했던 점을 들어 신 부사장이 독립할 경우 롯데쇼핑의 경영권이 바뀔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 같은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셈이다. 연이은 신동빈 부회장의 롯데쇼핑 챙기기는 그가 롯데쇼핑을 확실하게 관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신 부회장이 손댄 사업이 신통한 효과를 못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손댔던 롯데닷컴이나 크리스피크림도넛 등이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크리스피크림도넛은 신촌점에 이어 지난 3월 롯데백화점 본점에도 매장을 열었지만 일반 거리 매장 증설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또 그가 주도적으로 인수합병 작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 푸드스타(TGIF 운영 법인)도 롯데그룹에 인수된 뒤 패밀리 레스토랑 순위에서 오히려 한 단계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리아세븐의 증자문제까지 터졌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은 그가 국내 재계에 데뷔하면서 롯데닷컴과 함께 처음 경영책임을 맡았던 회사다.
지난 2000년 말 코오롱그룹의 로손을 인수하면서 몸집불리기에 나섰던 코리아세븐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3년에는 3백56억원의 순손실을, 2004년에는 2백5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중순 경영정상화를 위해 주주배정방식으로 7백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증권가에선 지난번 로손 인수 때 주주로 신규참여했던 호남석유화학의 증자참여가 논란이 됐다. 호남석유화학의 업종과 관련이 없는 분야인 데다 증자 참여 자체도 주주들의 동의 여부가 문제된 것. 결국 호남석유화학은 증자 참여를 포기해 코리아세븐의 증자는 6백억원대에 그쳤다.
세븐일레븐은 편의점 업계에서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음에도 GS25나 훼미리마트 등에 밀려 업계 3위 정도의 위치다. TGIF의 고민과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롯데는 식품 분야에서 부동의 1위다. 경쟁이 될만한 업체는 사전에 초토화시키던지, 아니면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자를 눌러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롯데의 전략이 실현되지 않는 게 바로 유통·외식업이고, 거기에 신동빈 부회장의 신규 사업 포트폴리오가 몰려있는 것.
이번에 새로 매장 문을 연 유니클로도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유니클로는 중저가의 캐주얼 의류브랜드다. 할인점에서 문구류 등의 공산품을 사듯 중저가의 의류를 캐주얼하게 소비하는 옷이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는 국내에도 이미 이랜드그룹의 후아유 등에서 시도되고 있는 방법인데다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차고 넘친다. 유니클로의 옷값을 일본에서 받는 값과 같은 값을 받겠다고 밝혔지만 환율차를 감안하면 일본의 중저가는 국내에선 중가 이상 브랜드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치면 블루오션이 아니라 레드오션에 뛰어든 셈이다. 물론 롯데는 신규진출하는 분야에서 시장이 익을대로 익은 상황에서 2위그룹에서 출발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곧바로 1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전략을 보여왔다.
하지만 신 부회장이 등장하고 난 뒤 롯데가 손 댄 사업 분야, 이를 테면 편의점(세븐일레븐)이나 커피전문점(자바), 도넛전문점(크리스피크림도넛), 패밀리레스토랑(TGIF) 등에서는 신규 진출 뒤 인수합병이나 대규모 출점으로 치고 올라가는 탄력 대신 1위와 격차를 줄이지 못하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롯데의 고민이다.
유니클로의 한국 진출 기자회견에 직접 출연할 만큼 유니클로의 성공에 공을 들인 신 부회장의 노력이 보답받을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