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낮췄지만 체감 효과 적어…“공급망 확충과 저소득층 집중지원 필요”
최근 가파르게 오른 물가 때문에 김 씨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직장인들은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이나 직접 싸온 도시락을 먹는가 하면 자영업자들은 밀가루, 식용유, 커피 등의 가격이 올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거기에 전기요금·가스요금 등 공공요금도 7월부터 인상돼 국민들의 생활은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9일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를 기록했다. 3.3%였던 5월보다 0.6%포인트(p)나 올랐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향후 1년의 예상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현 시점에서 앞으로 1년간 약 4% 정도 물가가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8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대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약 13년 만에 가장 높았던 5월(5.4%)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수준이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1월 물가 상승률이 6.9%였고, 외환위기 이후 6% 물가 상승률은 없었다. 물가 상승률이 6%대까지 올라가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20일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많이 올리고 있어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우려된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들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물가 상승의 대부분이 해외발 요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고물가가 상당 기간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정부의 태도에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별한 대안 없이 전 세계가 물가 상승으로 어려우니 버티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성토하는 국민들이 많다.
정부에서는 유류세 인하를 내세웠지만 소비자들은 전혀 체감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이컨슈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 분을 반영한 주유소는 극소수다. 유류세 인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곳이 많다 보니 소비자들은 유류세가 30% 인하됐다 하더라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정부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업 배만 불리는 부자감세이며 국민들의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물가 완화를 위해 대책을 마련했다지만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은 단 하나도 없는 셈이다.
정부는 기업 부담 축소를 위해 법인세 인하를 단행한 데 반해 7월부터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공요금인 전기요금·가스요금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연료비 조정단가가 5원 인상됨에 따라 4인 가구의 월 전기요금 부담은 약 1535원 증가한다. 도시가스요금도 다음달부터 메가줄(MJ·가스사용 열량 단위)당 1.11원 인상돼 가구당 월 평균 2220원 더 부담하게 된다. 이 뿐 아니다. 교육부가 대학등록금에 대한 규제 완화를 암시하면서 14년 동안 사실상 동결됐던 대학 등록금도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반해 지난 28일 추경호 부총리는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과도한 임금인상과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에 직장인들은 “물가가 오르는데 당연히 그에 맞게 올라야지”, “물가 올라서 체감상 월급의 30%가 줄어든 것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허리를 졸라매냐”, “물가는 물가대로 오르고 공공요금도 올리고 임금은 동결시킨다는 게 가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대책이 아무것도 없다”며 “정부 대응이 너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금리를 올리는 것까지는 이해를 하지만 국민들 숨통 트일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독일이나 미국처럼 대중교통비를 획기적으로 낮추거나 식료품 살 때 쿠폰 등을 발행해 물가 부담을 줄여주는 등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과 독일은 이달 1일부터 교통비 할인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또 정부는 앞서 1인당 1만 원, 최대 20% 할인하는 농축산물 할인쿠폰 지원 규모를 600억 원 늘린다고 했지만 1인당 1만 원이면 600명만 할인을 받을 수 있고, 할인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 안 소장의 설명이다. 추 부총리의 임금인상 자제 발언에 대해 안 소장은 “물가 오르는데 임금은 동결시키라는 게 말이 안 된다”며 “그러면서 공공요금은 올리겠다고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팀장은 “현재 물가 폭등을 막기 위한 돌파구는 기업들에서 찾을 수 있다”며 “기업들을 통해 우리 경제의 총 공급 능력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물가 상승기에는 저소득층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며 “저소득층에 집중된 재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류세는 생활 물가기 때문에 더 인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해외 공급망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 기업들은 경영 혁신을 보다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산을 가진 사람은 물가가 오른다고 피해보는 것이 별로 없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류나 식품 소비를 위한 보조금을 지원하면 물가 부담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공급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중요한데 이 부분을 해결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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