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분명 물의 계절이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바로 물이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물을 가까이하면서 거대한 자연의 숨결을 느끼기도 하고 삶의 묵은 때를 씻는다.
어디 그뿐인가. 때는 바야흐로 물에 의존해야 하는 논농사가 본격화되는 시기로 물의 소중함을 더 절실해진다. 이럴 때 가장 주목받는 곳이 바로 이름하여 '물 명당'이다.
특히나 오랜 가뭄 때문에 농사가 어려워지는 현실이라 물이 더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과연 물이 좋은 물 명당에서는 과연 어떤 음식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여름 밥상을 만난다.
함양군 운서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숨어있는 오지마을인데 마을 앞으로 흐르는 엄천강 때문에 물 걱정 없이 산다. 그러나 올해는 봄부터 시작된 길고 긴 가뭄 때문에 시름이 깊었다. 그 와중에 어렵게 논물을 대고 모내기를 끝냈다.
물찬 논을 보면 밥술 뜨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농부의 마음. 이제야 졸인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렇게 큰 고비를 넘길 때마다 보양식과 여흥으로 매듭을 지어주는 게 농부들의 삶이다. 지리산의 강줄기들이 모여 흐르는 엄천강으로 마을 남자들이 모인다. 천렵을 위해서다.
그들이 잡아 온 물고기로 푸짐한 잔칫상을 차려내는 것이 운서마을의 오랜 전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운서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개구쟁이 소년이 돼버린 마을 청년들은 물 만난 생선이 따로 없는데 어릴 적부터 갈고 닦은 노련한 실력으로 실한 것들을 잡아 올린다. 거기에 맑은 물에만 사는 다슬기까지 손이 무겁도록 건져내면 이제 잔치 준비 끝이다.
이제는 부엌이 분주해질 시간이다. 푹 고아낸 민물고기를 채에 여러 번 걸러 살만 발라낸 국물에 소면 투하하면 마을 잔치에 빠지지 않는다는 어탕국수다. 거기에 먹을게 귀하던 그 시절 엄마 눈을 피해 쏙쏙 빼먹던 추억의 음식인 다슬기장도 빠질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이장님은 머위 향이 감도는 흑돼지대통찜을 준비한다. 잔치 준비가 한창일 무렵 반가운 비 손님까지 찾아오자 마을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풍악을 울리며 잠시의 쉼을 한바탕 즐겨보는 산골 농사꾼들을 만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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