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5개사를 합하면 5조원이 넘는 규모인 데다 5개 업체가 이렇게 한 뜻으로 일치단결해 움직인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럼에도 법원에서는 이들 업체들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법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채널H는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위성수신기를 설치한 뒤 상품광고방송을 내보내는 사업을 올해 5월부터 시작했다. 채널H의 사업방식은 아파트단지에 수신기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광고를 하는 대신 상품판매이윤의 10%를 아파트자치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채널H를 법적으로 막지 못하는 데는 채널H가 방송전파가 아닌 통신전파를 이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위성에서 운용되는 주파수는 방송용과 통신용으로 나뉘어져 있다. 방송용 전파의 경우 사용자는 방송국이 되며 방송심의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통신용 전파는 정보통신부의 관리하에 있다.
채널H의 경우 통신사업자로 등록이 되어 있어 방송위원회가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방송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방송이라기보다 광고방송을 전달해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 이를테면 인터넷을 통해 이메일로 광고를 전달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채널H측은 “방송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방송심의가 필요하지만, 채널H의 광고방송은 회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홈쇼핑과는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다. 채널H가 아파트 부녀회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고, 가입을 신청한 아파트단지에 한해 광고를 내보내기 때문에 방송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홈쇼핑업체들은 “시스템 운영방식의 차이 때문에 방송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TV를 통해 나오는 동영상을 보기 때문에 통신이 아닌 방송으로 받아들일 것이다”며 반박하고 있다.
채널H는 “우리가 방송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제조업체에서 제작한 광고를 전달해주는 것뿐이기 때문에 방송이라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직접광고방송을 틀어주는 사업모델은 채널H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 사업자들은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한 데 반해 채널H는 판매수익을 아파트자치회에 돌려준다는 영업방식을 선택해 전국의 아파트자치회에서 가입문의가 올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채널H측은 지난 5월 시험방송을 시작한 이후 아파트단지 두 곳에서 가입을 받아 영업활동을 본격화하려던 7월 소송에 걸려 모든 영업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채널H의 홍영기 대표는 “직원수 7명밖에 되지 않는, 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영세업체를 대상으로 대기업 홈쇼핑업체가 대응을 해 처음에는 놀랐다. 지금도 홈쇼핑업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채널H는 아직 콘텐츠가 부족한 데다 판매상품 종류도 30가지밖에 되지 않아 24시간을 다 채우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홈쇼핑이라고 보기에는 미숙한 점이 많은 셈이다. 홍 대표는 물류업체를 운영하다 친구들과 뭉쳐 채널H를 설립했다. 물류업체 출신이다 보니 채널H도 방송이라기보다는 상품판매 창구의 일종으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영세한 업체를 대상으로 홈쇼핑업체들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채널H의 사업 전망이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광고방송만 틀어주는 초보단계이지만 사업모델을 발전시켜 홈쇼핑과 거의 흡사한 형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A홈쇼핑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TV방송은 일단 신뢰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홈쇼핑업체가 난립하다 보면 품질이 미달되는 채널까지 생겨날 수 있고, 이는 홈쇼핑업체 전체에 마이너스로 작용하게 된다. 지금도 홈쇼핑업체가 과포화되어 2002년부터 매출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홈쇼핑 방송을 규제할 당위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채널H측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홈쇼핑 채널이 상당히 많은 자유경쟁체제이지만 한국의 경우 5개 업체가 다른 업체의 진입을 꽁꽁 막고 있어 오히려 소비자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송위원회측은 “현재로서는 법적으로 규제할 방안이 없고, 채널H의 경우 방송위원회가 관여할 성질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소송에 나선 홈쇼핑업체들도 법원의 판결 이후부터는 이 문제에 대해 겉으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한 홈쇼핑업체측은 “처음에는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작은 업체이다 보니 지금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사홈쇼핑 난립을 막아야 한다는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 “방송과 통신의 영역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에 제도 또한 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 법률로 규제가 안 될 경우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채널H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당분간 홈쇼핑업체와의 분쟁은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채널H를 ‘기막힌 틈새시장’으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채널H가 선전할 경우 또다시 기존 업체의 견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