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입 1건뿐, 휴가철 추가 유입 가능성…확진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 ‘숨겨진 위험’도
사실 이번 WHO의 PHEIC 선언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확산 속도, 전염력, 치명률 등을 놓고 볼 때 과연 원숭이두창이 PHEIC를 선언할 수준인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7월 21일에 열린 국제 보건 긴급위원회에서도 위원 15명 가운데 9명이 PHEIC 선언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지만 WHO는 PHEIC 선언을 강행했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긴급위원회 전원 찬성 없이 이뤄진 PHEIC 선언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WHO의 PHEIC 선언 강행을 두고 외신에선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주요국들이 골든타임을 놓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강력 대응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WHO의 이번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부분은 최근 들어 확연해진 확진자 급증세다. 애초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풍토병으로만 알려져 있던 원숭이두창은 5월 6일 영국에서 최초로 비아프리카 지역 확진자가 발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미국, 스페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데 6월 말까지 누적 확진자가 3000명대에 머물렀지만 7월 들어 확진자가 급증해 1만 8000명대를 넘어 2만 명대에 육박했다.
WHO의 PHEIC 선언은 이번이 일곱 번째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소아마비(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2014·2019년), 지카 바이러스(2016년), 코로나19(2020년) 등이 있었다. 앞선 사례들로 볼 때 WHO가 PHEIC를 선언했다고 해서 모두 국내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와 코로나19 정도가 국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아직 원숭이두창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단계는 아니지만, ‘경각심’은 가져야 할 단계로 풀이된다. WHO에서도 원숭이두창 위험도를 유럽만 ‘높음’으로 평가했을 뿐, 유럽을 제외한 전세계는 ‘중간’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6월 21일 독일에서 입국한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스스로 질병청에 의심 신고를 해 의심 환자로 분류됐던 내국인이 확진 판정을 받아 국가 지정 입원치료병상인 인천의료원에서 15일여 격리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확진자가 단 1명뿐이고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의심 신고를 해 지역사회 전파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실체적인 위협 수준은 아니다. 다만 공항 검역 단계에서 파악되지 않은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국내로 유입됐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는데 최근 휴가철을 맞아 해외 입출국 사례가 늘고 있어 국내 유입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7월 27일 오전 기준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국가는 스페인으로 3740명으로 미국(3487명)과 함께 유이하게 3000명대 확진자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2432명), 독일(2410명), 프랑스(1562명)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에 미국도 WHO의 PHEIC 선언에 발맞춰 자체적인 공중보건 비상사태 발령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이미 원숭이두창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 단계로 발령하고, 제2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한 국내 방역당국은 WHO의 PHEIC 선언에 따라 질병관리청이 위기상황 평가 회의를 개최해 조치 사항을 점검하는 등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구체적으로는 원숭이두창 국내 유입 지연을 위해 발열 기준 강화, 출입국자 대상 SNS(소셜미디어)·문자, 검역정보 사전 입력시스템(Q-code)을 활용한 입국 시 주의사항 안내, 원숭이두창 발생 국가 여행력 의료기관 제공 등의 조치를 시행한다.
또한 원숭이두창 진단·검사 체계의 지방자치단체(지자체) 확대를 위해 지자체 17개 보건환경연구원에 원숭이두창 시약 배포 및 진단·검사 교육을 시행한다. 백신과 치료제 도입도 속도를 내고 있는데 3세대 두창백신 진네오스 1만 도즈(5000명분)를 도입할 예정이며, 원숭이두창 치료제 테코비리마트 504명분을 시·도 병원에 공급한다.
원숭이두창의 숨겨진 위험성은 확진자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이다. WHO가 각국에 원숭이두창의 역학 조사와 치료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낙인과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할 것을 촉구했을 정도다.
실제로 확진자 상당수가 감염된 남성과 성관계를 한 남성이기 때문인데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을 통해 공개된 전세계 16개국 원숭이두창 확진자 52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확진자의 98%는 남성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이며 감염 의심 경로의 95%가 성적 접촉이었다. 그렇다고 남성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원숭이두창에 취약한 것은 아니고 유럽에서 열린 대규모 성소수자 축제를 통해 유행이 시작됐기 때문으로 외신은 분석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의 체액, 병변과 접촉해 발생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원숭이두창으로 인한 발진이 얼굴에서 시작해 몸통과 사지로 진행되는 방식이 많았으며 특히 얼굴과 손·발바닥에 발진이 많이 발생했다. 그런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원숭이두창은 항문과 성기 부분에 발진이 생기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뉴욕시 보건당국은 최근 유행하는 원숭이두창에 대해 “2~5일의 짧은 잠복 기간을 보이고 있으며 고열이나 림프절 비대는 없고 항문과 성기 부분에 약간의 병변만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잘 보이지 않는 부위에만 발진이 나타나 감염 확인이 어렵고 원숭이두창을 매독이나 헤르페스 같은 성병으로 오진할 위험성도 크다.
문제는 호흡기 분비물, 감염자의 상처, 바이러스에 오염된 옷이나 침구 등과 밀접 접촉 등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NEJM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서도 528명 가운데 9명(2%)이 남성 이성애자였다. 확진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의료진이나 가족도 감염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여성과 영유아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원숭이두창은 환자의 병변이나 체액에 직접 접촉할 때 주로 감염되기 때문에 성적 접촉이 아닐지라도 확진자와 밀접 접촉하면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서 여성과 영유아 감염 사례도 드물지만 나오긴 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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