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기기 활용한 심전도 측정 장치 개발…높은 정확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아
#인고의 시간들
1974년생 길영준 휴이노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 다루는 일을 유별나게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후 부산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당시 지도교수는 이정태 교수로 그는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었다. 제자인 길 대표도 생체신호 측정 쪽으로 연구 가닥을 잡아나갔다. 길영준 대표는 “공부를 하다 보니 몸에 닿는 디바이스를 통해 생체신호를 인식하고 인공지능으로 그걸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볼 만할 것 같았고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혁신이 되리란 걸 알았다”고 말했다.
길영준 대표는 2014년에 휴이노를 창업했다. 하지만 시장은 선뜻 열리지 않았다. 2014년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다. 상대적으로 신기술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미국 시장을 먼저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3~4년 동안 약 1500명의 투자자와 접촉했지만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이게 말이 되냐’며 반신반의했다. 길영준 대표는 “휴대용 센서로 생체신호를 감지해 건강상태를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시장이 닫혀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기존에 투자받았던 시드머니를 전부 소진하면서 2017년 사업을 접고 직원들을 전부 내보내야 했다. 길영준 대표는 “다 퇴사하고 혼자 남았었다. 저 혼자랑 그 당시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었던 양산 직전에 있던 시계 50개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불쑥 억울한 맘이 치솟았다. 수십억 원을 쏟아부어서 만든 자식 같은 제품이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만들었던 시계는 산소포화도, 맥전도, 심전도, 혈압 측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복합의료기기였다. 시장성을 위해 타깃을 명확히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전도 측정기능만 남기기로 했다. 가슴 위에 센서를 부착해 심전도를 측정하는 ‘메모 패치’도 그때 구상했다. 혼자서 인공지능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는 등 고군분투하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앞서 사업에 실패하면서 진 빚과 투자금 부족으로 연구를 더 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2017 서울혁신챌린지 대회’가 눈에 들어온 게 그 시점이었다. 16등 안에만 들어도 상금 1억 원을 받을 수 있었다. 길영준 대표는 ‘메모 패치’와 당시 부산대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던 후배 정성훈 박사의 자문을 받은 소프트웨어를 접목해 대회에 참가했다. 16강까지 올라가면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 대표는 “16등 안에 들어서 1억 원만 벌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받은 성적표는 1등이었다. 투자금 5억 원이 덜컥 수중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2018년에는 사업의 분기점이 찾아왔다. 애플이 심전도 측정 센서를 장착한 ‘애플워치4’를 출시한 것. 애플이 휴대용 전자시계로 생체신호까지 측정해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에서 만났던 투자자 중 다수가 애플워치4의 출시 소식을 듣고 ‘당시에 몰라봐서 미안했다’며 길영준 대표에게 연락했다. 국내 신문도 애플보다 먼저 심전도 측정 센서와 분석 기술을 개발한 휴이노를 앞다퉈 조명했다. 길영준 대표는 “굉장히 많이 울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홀로 고군분투하던 인고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고 말했다.
사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기사가 나면서 2018년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휴이노에 초청장을 보낸 것이다. 2019년 규제 샌드박스 프로그램 실행을 앞둔 상황이었다. 과기부는 국내 혁신기술 개발자와 사업자들을 초빙해 규제 샌드박스 프로그램 지원을 촉구했다. 휴이노로서는 국내 의료법의 간섭 없이 신기술을 테스트할 절호의 기회였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파트너로 나서면서 휴이노는 2019년 ‘ICT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출범할 수 있었다. 직후 시리즈A 투자를 본격적으로 받으면서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세계 1위의 혁신기술
의료 현장에서 환자가 손을 대고 있으면 심전도, 맥전도, 산소포화도, 혈압까지 한번에 측정해주는 손목시계형 복합의료기기인 메모워치와 메모패치의 호응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었다. 길영준 대표는 “저희 제품 덕분에 응급수술을 받고 돌아가실 위험을 넘긴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착용하기 쉽고 검사 결과가 정확한 데다 판독이 쉬워 의료진이나 환자분들이 모두 좋아했다. 제가 만든 기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하게 돼서 기뻤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휴이노는 2021년 규제샌드박스를 최우수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정식으로 사업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자회사 ‘휴이노에임’을 만들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심전도뿐만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측정할 수 있는 복합적인 생체신호를 두루 측정해 환자의 예후를 살피는 인공지능 기술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자회사 휴이노에임의 핵심 목표다.
휴이노의 인공지능 기술은 정교함에 있어 전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2021년 6월 메드텍 이노베이터가 의료 혁신 기업을 선발하는 ‘아시아 태평양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서 휴이노는 한국 기업으로서 유일하게 상위 20개사 중 하나로 뽑혔다. 2021년 10월에는 피지오넷이 주관하는 ‘글로벌 AI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AI 대회는 심전도를 측정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정교함을 겨루는 대회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곳곳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길영준 대표는 “현재는 전세계 각국의 시장에서 홍보와 판매를 담당해줄 글로벌 파트너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저희 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앞으로는 만성질환,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의 생체신호까지 의료진이 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혁신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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