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훈 영도건설 회장 소유지에서 바라본 문제의 담장. 가운데 철조망이 설치돼 있는 곳이 이 회장측이 공사하면서 허물어낸 부분이다. 철조망 너머는 신준호 롯데햄 부회장의 집으로, 철조망은 신 부회장측이 설치했다. | ||
신 부회장은 롯데가 1세대 5남5녀 중 9번째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신춘호 농심 회장의 동생이다. 신격호 회장의 동생으로는 유일하게 계열사 사업체인 롯데햄·우유를 경영하고 있다.
신 부회장의 이웃으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인물은 영도건설산업의 이정훈 회장(76). 영도건설산업은 건설업 하도급순위 161위로 그다지 이름이 알려진 회사는 아니다. 이 회사는 주로 도로공사 등이 발주하는 관급의 토목공사를 위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동은 성북동, 한남동과 더불어 서울 강북의 3대 부촌. 이곳에 자리 잡은 신 부회장의 집은 평균적인 평창동의 고급주택처럼 보인다. 대지 3백62평에 1층 72평, 2층 34평짜리로 그다지 눈에 띄는 규모는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공사는 이 회장 자택이 아니라 개인 미술관을 짓기 위한 것이다. 이미 완성된 미술관의 외관은 지중해풍의 고풍스런 스타일이 인상적으로, 일반주택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회장은 이 부지에 있던 기존 4채의 집을 매입한 뒤 전체를 합해 2층 건물을 짓고 있다. 4개 번지를 모두 합한 대지 면적은 총 7백95평에 달한다.
두 이웃이 법정 다툼을 벌일 정도로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은 두 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높이 1.5m 가량의 담 때문. 전체 담 중 현재 15m 가량이 허물어진 상태로 남아 있다.
지난해 초 영도건설은 공사를 시작하면서 담 문제를 들고 나왔다. 20년 전 세운 담이 그간 지반붕괴로 안쪽으로 밀려오면서 담이 어긋난 데다 일부 균열이 생겨 무너질 조짐을 보였다는 것이 영도건설의 설명이다.
공사를 시작하며 영도건설은 신 부회장에게 공동 부담으로 담을 새로 쌓을 것을 제안했으나 신 부회장측은 이를 거절했다. 영도건설측은 자신들 쪽으로 밀린 담을 원래의 위치대로 복원하자고 주장했지만 신 부회장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신 부회장은 ‘돈이 없다’며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 영도건설은 6개월 후 “우리가 담을 쌓는 비용을 댈 테니 신 부회장측은 담을 허문 뒤 생기는 폐기물 처리만 맡아달라”며 다시 제안을 했다. 그러나 신 부회장은 또다시 이를 거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돈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 영도건설은 “모든 비용을 우리가 대겠다”며 또다시 담을 새로 쌓을 것을 제안했으나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의 1년이 다 될 정도로 해결이 지지부진하던 담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영도건설이 문제의 담 일부를 허물면서부터. 서쪽 부분 15m를 무너뜨린 것이다. 화가 난 신 부회장은 이를 문제삼으며 영도건설을 재물손괴죄로 고발했고 직접 담을 복원하기 위해 나섰다. 재료와 인부까지 구한 신 부회장측이 담을 새로 쌓으려 하자 이번에는 영도건설측의 현장 관계자들이 이를 못하도록 말리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신 부회장은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임시방편으로 철조망을 설치했다. 담이 무너진 이후부터는 새로 쌓는 담의 위치가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영도건설측은 담이 밀려온 만큼 최초의 위치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 부회장측은 무너지기 직전 담의 위치대로 복원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법원은 신 부회장이 낸 두 건의 고발과 가처분신청에 대해 기각했다. 담을 처음 쌓은 사람이 신 부회장이 아니라 이웃집이므로 이를 승계한 이 회장의 소유이기 때문에 재물손괴죄가 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는 “실측량을 새로이 한 뒤 공사를 실시하라”며 기각했다. 결국 영도건설의 주장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편 법원의 판결 후 영도건설의 이 회장은 신 부회장을 무고죄로 고발했다. 상황이 역전되자 신 부회장은 모든 문제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웃과의 다툼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처지에 놓인 것은 재벌가의 어른으로서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이렇듯 치열하게 다툴 정도인 문제의 담이 어긋난 땅의 넓이는 얼마나 될까. 담벼락을 무너뜨린 후 남은 잔해를 통해 추정해본 담의 구조로 보아 밀려난 거리는 20cm에 불과했다. 양측이 치열하게 싸우고 법정 다툼까지 벌인 이유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해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