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사장의 부친 이병각씨는 이병철 회장의 형. 이 이사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부친에 대한 진술보다는 그가 ‘존경하는’ 이 회장과의 인연과 이 회장이 그가 의업의 길을 가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다.
현 제일병원 터와 그 주위 땅 상당 부분이 바로 삼성그룹의 뿌리였던 제일제당(현 CJ) 소유의 나대지였다. 당시 이 회장이 교통이 편리한 안국동의 제일제당 땅도 병원부지로 추천했지만 세브란스 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이동희씨는 당장 병원건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묵정동의 현 제일병원 부지를 택했다는 것이다. 물론 땅값은 이 회장이 싼값에, 병원 완공 뒤 분할납부하는 조건으로 편의를 봐줘 제일병원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삼성가의 후원을 받은 제일병원은 63년 12월 개인이 설립한 최초의 민간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지난 96년 3월 이 이사장이 급작스레 폐암 발병을 하면서 제일병원의 소유권에 변화가 생겼다.
그해 5월28일 그의 사망 직전 그는 유언장 공개를 통해 “오랜 심사숙고 끝에 제일병원의 경영권을 삼성그룹에 이양키로 결심하고,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제일병원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청하였다. 그 후 이 이사장은 일주일 만인 6월4일 세상을 떴다.
그는 제일병원의 삼성 양도에 대해 4대조 할머니인 광산 김씨 할머니의 일화를 소개했다. 삼성가가 의령 일대에서 만석꾼으로 통할 수 있었던 부를 일군 사람이 바로 광산 김씨 할머니였다고 한다.
죽은 전처 자리에 시집간 광산 김씨는 억척스럽게 일해 평생 큰 재산을 모았고 이를 대부분 전처 자식에게 물려주어 삼성가 이씨 집안의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도 생전에 광산 김씨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광산 김씨 할머니가 오늘날 삼성을 있게 한 뿌리였다”고 회고했다는 것이다.
이동희 이사장의 부친인 이병각씨나 이병철 회장은 그 전처 자식의 후손이다. 이 이사장의 고조할머니인 셈이다. 광산 김씨의 제사는 대대로 종가인 이 이사장 집안에서 모셔졌고, 광산 김씨의 소생과는 8촌간이지만 지금도 우애있게 지내고 있다는 것.
실제로 광산 김씨의 자손이자 이 이사장과 8촌간인 이홍희 동서식품 명예회장은 삼성그룹에서 오래 일하다가 동서식품을 창업해 일가를 이뤘다. 현재 삼성도 동서도 서로의 업종을 존중하며 범 삼성가의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동희 이사장은 제일병원을 더 사세가 크고 더 큰 규모의 삼성병원을 설립한 삼성그룹에 넘긴 이유를 바로 이 광산 김씨 할머니의 ‘의로운 행동’에서 찾고 있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