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내 집 마련하기 전 거주할 공간을 얻는 방식 중 하나로 주거사다리의 역할을 하며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은 독특한 제도이다. 그런데 최근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한순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진 세입자들이 늘고 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경매에 넘어가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의 아파트들을 찾아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에서 전세 세입자로 살고 있는 한 부부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이웃주민으로부터 듣게 된다. 계약 당시 안전한 집이라며 부동산 업자가 써준 이행보증서까지 받았던 집이 이사 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경매로 넘어가고 있는 아파트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피해자들이 파악한 아파트만 20여 채가 넘었다. 각 아파트 세대들이 모여 사건의 경위를 공유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계약이 공통적으로 5개의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이뤄졌고 이 아파트의 임대인이 저 아파트에선 중개인, 또 다른 아파트에선 대리인으로 등장하는 등 미심쩍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해당 아파트의 임대인과 아파트를 중개한 공인중개사를 찾아 왜 이런 일이 세입자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것인지 물어보았다.
'A' 아파트 세입자는 "(임대인이) 하고 있는 사업도 많고 믿을 만한 사람이고 그러니까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이행보증서를 써주는 거 아니겠냐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A'아파트 임대인은 "그분들이 만약에 (근저당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들어왔으면 사기인 게 맞죠. 하지만 다 알고 들어오셨잖아요"라고 맞섰다.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 여러 아파트들이 내는 관리비는 모두 하나의 관리업체로 입금되고 있었다. 이 관리업체의 대표 또한 피해 아파트의 임대인이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의심되는 가운데 이 업체에 대해 중요한 제보를 받게 된다.
이들은 모두 '남 회장'이라는 사람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고 남 회장은 강원도에서 큰 사업을 벌여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그 사업자금으로 투입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남 회장 측 대리인은 사업이 잘되면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변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 회장'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사업은 어떻게 진행 중인지 살펴봤다. 남 회장 측 변호사는 "동해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전세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궁극적으로는 현재 인천 미추홀구의 임차인들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거의 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무자본 갭투자로 300여억 원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일으킨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보았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하고 피의자가 사기죄로 구속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지만 전세금을 돌려받기는 요원하다.
꼼꼼히 확인하고 전셋집에 들어갔음에도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전세보증금을 갈취하는 치밀한 수법에 세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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