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셀럽 거주하던 왕부세기빌딩도 경매 입찰자 없어…부동산 불황에 코로나19로 외국인 떠나 수요 급감
최근 중국의 한 자산경매플랫폼엔 왕부세기빌딩이 경매로 나왔다. 경매 시작가는 11억 2000만 위안(2200억 원)이었다. 시장 평가액 15억 3900만 위안(3030억 원)보다 4억 위안 이상 낮은 금액이었다. 베이징시 동안먼가에 위치한 왕부세기빌딩은 지리적인 이점이 매우 많은 곳이다. 남쪽으론 장안, 동쪽으론 금보대로로 갈 수 있어 교통의 요지에 놓여 있다. 또한 서쪽으론 고궁과 호수 등이 있어 전망도 뛰어나다. 유동인구가 많아 상권도 발달해 있다.
시장가보다 낮은 금액, 좋은 입지 등으로 인해 무난히 낙찰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입찰자는 아무도 없었다. 추후 경매에선 더 낮은 금액으로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다시 유찰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왕부세기빌딩의 유찰 소식이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 등에서 큰 화제를 모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그 소유주 때문이다. 왕부세기빌딩은 북경왕부세기발전유한공사가 갖고 있다. 이 유한공사의 회장은 왕즈차이다. 유한공사는 장안 거리의 랜드마크인 ‘장안 8호’ 소유주이기도 하다.
왕즈차이의 아내 왕옌은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청아라는 공주 역으로 출연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배우다. 또 활발한 SNS 활동으로 많은 팔로어를 갖고 있는 ‘파워 셀럽’이다. 왕옌의 가족은 왕부세기빌딩 꼭대기의 저택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저택을 ‘공주의 집’으로 불렀다. 왕옌은 자신의 SNS에 건물 꼭대기 저택에서 보는 전망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곤 했다. 그가 다른 건물의 옥상을 찍어서 사진을 올릴 때마다 팔로어들은 “도대체 얼마나 높은 빌딩에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또 왕옌이 자신의 침실에서 찍은 한 영상엔 고궁이 보여 세간의 부러움을 산 바 있다. 왕옌의 집에서 고궁까진 500m 정도의 거리다. 왕옌 SNS의 한 댓글엔 “침대에 누워 고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부러움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인터넷 등에서 ‘고궁 뷰’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특히 왕부세기빌딩 꼭대기엔 화려한 정원이 꾸며져 있다. 정원엔 진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통로 바닥은 회색빛이 나는 대리석이 깔려 있다. 왕옌은 SNS를 통해 자신이 가꾸는 정원을 여러 번 소개했다. 이 정원은 전국의 유명 정원 못지않은 시설로 유명세를 탔다.
왕부세기빌딩이 경매에서 낙찰 받지 못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셀럽이 살고 있어 실시간 검색어에도 자주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건물조차 거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경왕부세기발전유한공사 측도 경매 유찰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적으론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많다. 부동산 처분을 통해 회사 경영을 개선하려던 목적에도 차질이 빚어졌다고 한다. 유한공사 측은 “후속 경매 절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말을 아꼈다.
사실 부동산 시장에선 왕부세기빌딩이 경매에 나올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후 부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대형 빌딩을 판다는 것 자체가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올해 상반기 중국에선 총 74건의 대형 빌딩이 매매됐는데, 이는 2021년 대비 31%나 줄어든 규모다. 총 금액도 750억 위안(14조 8000억)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 감소했다.
화북구의 투자 및 자본시장 업무 운영 책임자인 쉬시시는 “현재 부동산 시장은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주요 투자자들이 전통적인 오피스 빌딩 부동산에 대해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자는 신중해졌다”고 설명했다. 다이더량싱화동구 자본시장부의 루창 전무이사도 “대형 빌딩 구매자를 찾기 어려워졌다. 코로나 영향으로 외국인 구매자들이 떠난 것도 주 요인”이라면서 “당분간 대형 빌딩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경기 위축으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부동산 매각으로 자산 유동성을 높이려 했던 일부 기업들로선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현재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경제 도시에선 대형 빌딩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3분기 룽후그룹이 9억 위안(1770억 원)가량에 보유 빌딩을 매각한 게 거의 유일한 사례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형 빌딩 투자 의향을 갖고 있는 구매자가 사라졌다. 가격이 파격적으로 내려간 왕부세기빌딩조차 경매에서 입찰자를 찾지 못했을 정도”라면서 “앞으로 가격을 더욱 내린 매물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점쳤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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