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18일 현대그룹 2010 비전 선포식에서 현대 깃발을 흔들어 보이는 현정은 회장. | ||
전인백 사장 영입은 단순히 그룹 체질개선 차원에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건설 출신으로 20년 넘게 ‘현대맨’으로 활동해온 전 사장을 자신의 최측근 자리에 앉혀 ‘현대왕국 재건’의 기치를 올리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 첫 단추로 현대건설 인수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란 평이 뒤를 따른다.
전인백 신임 기획총괄본부장(사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한창 현장을 누비던 시절인 지난 1975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와 연을 맺었다. 지난 1984년 현대전자로 옮긴 이후 2001년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 변경 이후 2002년까지 구조조정본부장 겸 경영총괄 부사장을 지낸 전형적인 기획통이다. 지난 10월 해체된 경영전략팀이나 신설된 기획총괄본부가 사실상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적임자’를 구했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전 사장이 하이닉스반도체의 독자생존을 위해 자금문제와 구조조정 업무를 진두지휘했던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현대그룹측은 전 사장 영입에 대해 “경영권분쟁 이후 경영안정화에 주력해온 현대가 이번 조직변경을 계기로 2010년 그룹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미래성장 위주의 공격 경영을 펼치게 될 것”이라 자평한다. 전 사장은 현정은 회장의 최측근으로서 그룹의 굵직한 현안을 챙길 전망이다.
재계의 관심은 전 사장 영입 이후 현대가 밝힌 ‘미래성장 위주의 경영’에 맞춰진다. 현대그룹의 주력분야는 역시 대북사업이다. 김윤규 전 부회장 해임과 이에 따른 북한의 ‘몽니’로 홍역을 겪은 터라 빠른 수습과 관광사업 확대에 따른 추가 인프라 조성이 시급하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가 건설업에 욕심을 낼 것이란 관전평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신임 전 사장이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라는 점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란 예측까지 낳게 한다.
실제로 전 사장의 롤백 이후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의 주택건설업 면허취득을 추진하는 등 건설업 분야를 확대할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에 대한 관심은 지난 4월에도 잠깐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엔 현정은 회장이 아닌 김윤규 전 부회장의 관심 표명이었다. 현 회장이 만약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한다면 ‘옛 현대왕국 재건’의 기치를 내걸 수 있다. 대북관광사업 수행과정에서 건설사업까지 겸하면 건설부문 매출실적 향상이란 시너지 효과도 예상된다.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 대목이다.
지난 2001년 현대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부실로 인해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던 현대건설은 빠른 경영개선을 통해 내년 1월 채권단 차입금 전액 상환을 앞두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1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내년 초 워크아웃 졸업이 예상되는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이 인수하게 되면 현 회장은 범 현대 정씨 일가와의 정통성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된다. 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이 묻은 현대건설 인수는 사업적 측면에서의 이익뿐 아니라 이른바 ‘시숙부의 난’으로 얼룩진 정통성 부분에서도 현 회장의 입지를 굳혀주는 계기가 된다.
▲ 전인백 신임 사장 | ||
그러나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여력이 되는가도 따져봐야 한다. 현재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소유한 현대건설 지분의 시가 총액만 2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영권에 필요한 51% 확보를 위해 최소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셈이다. 지난 4월 김윤규 전 부회장은 “대북사업권 일부 매각을 통해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지만 현재로선 현대그룹이 주력분야인 대북사업권 부분 매각을 검토할 가능성이 낮은 상태다.
자금 조달 부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정몽헌 회장도 현대건설을 지키려 무척 노력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대건설 인수 희망을 시사해온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현대건설 출신 전 사장 영입과 현대건설 매각 일정이 앞당겨진 상황이 맞물려 현 회장의 현대건설 인수 의지에 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지만 현대측은 이에 대해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북측의 ‘몽니’에도 ‘마지막 가신’ 김윤규 전 부회장을 내보낸 데 이어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시킨 현 회장의 다음 행보는 사업영역 확대가 될 것이며 첫 타깃은 현대건설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의 ‘함구’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시선은 이미 현 회장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 선언이 언제 터져 나올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