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지도부 명단서 빠져 항의하다 강제 퇴장설 무게…시진핑 3연임 공식화 후 벌어질 숙청 예고판 분석
중국 공산당 당대회 폐막식을 앞두고, 주석단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나란히 앉았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옆 자리에 앉은 리잔수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장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리잔수 상무위원장은 후진타오 전 주석과 말을 하면서 앞에 놓인 빨간색 서류를 치웠다.
시진핑 주석은 다가온 수행원에게 어떤 말을 건넸다.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수행원은 후진타오 전 주석 오른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을 일으키려는 행동이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몸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듯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행원은 여전히 후진타오 전 주석 팔을 잡고 있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시진핑 주석에게 말 몇 마디를 건네더니 리커창 총리 왼쪽 어깨를 툭 치고 퇴장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퇴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후진타오 전 주석이 건강 문제로 퇴장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매체와 미디어에선 후진타오 퇴장영상이 일제히 삭제됐다. 중국 당국의 검열 조치로 추정된다. 후진타오 퇴장 논란은 중국 내 시진핑 독자체제 개막의 상징적 사건으로 각인됐다. 일각에선 ‘시진핑 3연임 당헌 개정’에 대해 후진타오 전 주석이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레드카드’가 강제 집행됐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내부에선 조금 더 내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중국 소식통은 “당대회 폐막식에 놓인 지도부 명단이 베이다허(北大河) 회의에서 합의된 지도부 명단과 확연히 다른 것에 대해 후진타오 전 주석이 항의하다 퇴장당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베이다허 회의는 해마다 진행되는 중국 수뇌부 비밀 회의다. 여름 휴양지인 베이다허에서 국정 및 인사와 관련한 밑그림을 그리는 행사로 알려져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제20차 당대회를 앞둔 지난여름 진행된 베이다허 회의에선 시진핑 3기 지도부와 관련한 인사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타오 퇴장 논란 관련 핵심 인물은 리커창 총리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간 시진핑 체제에서 2인자로 활동했던 리커창 총리는 시진핑 3기에서 축출됐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중국 공산당 내 3대 계파 중 하나로 분류되는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소속 인사들이 시진핑 3기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공청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당내 계파를 허용해 왔다. 공청단, 상하이방, 태자당 등 계파가 협력해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다. 그러나 제20차 당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내 계파는 사실상 습가군(시자쥔·习家军) 일통으로 정리됐다. 습가군은 기존 파벌인 태자당 내에서 친시진핑계로 꼽히는 인사들이 집합한 신흥 세력이다. 말 뜻 자체도 ‘시진핑 가문의 군대’라는 뜻이다. 이로서 중국 내 파벌 간 균형과 견제가 사라지고 시진핑 단일체제가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소식통은 현지 복수 관계자를 인용해 “후진타오 전 주석은 명단에 리커창 총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리커창 총리 이름이 명단에 없자 ‘왜 리커창이 빠졌나’ 혹은 ‘합의된 명단과 이 명단이 다르다’ 등 취지로 항의성 질문을 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면서 “그러자 시진핑 주석이 수행원을 불러 후진타오 전 주석을 내쫓았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국 소식통은 “시진핑 3연임 조건으로 ‘리커창 연임’ 밀약이 있었는데, 당대회 폐막식 당일 리커창이 명단에 없는 것을 보고 후진타오 전 주석이 항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했다. 소식통은 “미스터리한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끌려나가기 전 앉아 있던 곳은 주석단이다.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모두 앉아 있는 자리다. 이곳은 경호원도 못 들어가는 ‘성역’과도 같은 구역이다. 그런데 수행원들이 전직 주석을 주석단에서 끌고 나갔다. 주석단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특정성을 이해한다면, 후진타오 전 주석 퇴장 논란이 중국 내에서 전례 없는 권력 투쟁이라는 것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소식통은 “후진타오 전 주석이 수행원에 이끌려 나가는 장면은 2013년 12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체포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떠오르게 한다”면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끌려 나가는데, 아무도 후진타오 전 주석을 쳐다보지 못하는 상황이 장성택 숙청 시작단계에서 포착된 분위기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 3연임이 공식화하면서 그간 균형과 견제의 주체였던 중국 공산당 내 파벌이 정치적 숙청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후진타오 전 주석 퇴장 논란이 그 예고편 격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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