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당 지도부 연이어 만찬 회동, 당 세력균형 맞추려는 의도 해석…‘당무 개입’ 논란 고개
#윤석열 대통령, 주특기 가동
11월 7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 입주한 윤석열 대통령은 열흘 만에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오찬을 관저에서 진행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첫 번째’ 집들이 손님이 된 것. 대통령의 새 관저가 단순히 대통령 가족의 거주공간일 뿐만 아니라 언제 공개해도 외빈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외교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한 셈이라고 대통령실은 강조했다. 때문에 새 관저가 옛 청와대 영빈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외교의 장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빈 살만 왕세자가 방문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11월 25일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3시간 20분간 송년회를 겸한 만찬 회동을 했다. 지난 9월 출범한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와의 첫 공식 만찬이었다.
특히 지도부 만찬보다 앞서 윤 대통령이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이철규 등 이른바 ‘윤핵관’ 의원들을 부부 동반으로 관저에 초청, 만찬을 함께했다는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 잇따라 나왔다. 대통령실이 이 사실에 대해 적극 부인하지 않으면서 관저 식사정치가 일회성이 아닌 상시가동체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관저 식사정치가 관저 입주와 동시에 본격화하자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주특기 발휘가 시작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30년 가까이 검찰 조직에서 공직 생활을 해온 윤 대통령은 탁상공론보다 밥상좌담의 힘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고급 중식당과 한정식집에 우리를 데려가 식사대접을 했다. ‘뭐 이런 하숙생이 있나’ 생각했다. 우리는 하숙비를 다 받았는데 식사대접을 하니까. 생전 처음으로 빙빙 식탁을 돌리는 데 가서 밥을 먹었다.” 윤 대통령은 초임 검사로 1994년 3월부터 1996년 3월까지 대구지검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윤 대통령이 하숙했던 집의 주인 박정자 씨가 지난 2월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꺼내놓은 기억이다. 하숙비를 냈는데도 예를 갖추는 차원에서 하숙집 주인에 대한 식사대접까지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14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항명을 했다는 이유로 대구고검으로 좌천됐다. 당시 거들떠보는 직원이 많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밥값 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주 식사자리를 마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들은 물론 수사관들까지 두루 만나면서 자신의 지갑을 열어 이들을 격려하는 오·만찬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윤 대통령의 식사정치는 당선인 시절부터 예열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출근 첫날, 코로나19 피해를 본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남대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꼬리곰탕 오찬을 했다. 식사 때 윤 당선인은 상인회 회장의 꼬리곰탕에 직접 후추를 뿌려주기도 했다.
다음 날인 3월 15일 윤 대통령은 경북 울진 산불 피해 현장에서 소방관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 중식당을 찾아가 짬뽕을 먹었다. 3월 16일에는 통의동 집무실 인근 식당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등과 김치찌개 점심을 먹었다. 다음날에는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특별위원장, 박주선 대통령취임식 준비위원장과 인수위 사무실 주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 오찬을 했다.
“윤 대통령은 식사자리에서 좌중을 즐겁게 하는 실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게 그와 식사를 해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선후보 시절에도 ‘대통령이 되면 혼밥을 안 하겠다’는 다짐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던 만큼 소통을 통해 국정의 폭을 넓히고 국민들에게도 꽉 막힌 대통령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차원에서 관저 식사정치를 활성화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국민의힘 한 의원의 해석이다.
#윤핵관 독점? 세력균형체제?
최근 있었던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시종일관 당의 투톱인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띄워주려는 분위기가 보였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야3당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여당 지도부가 최종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당내 친윤 그룹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잠재우려는 의도로 당내에서는 읽고 있다.
실제 국정조사 수용 과정에서 여당 내부에서는 친윤 그룹과 당 지도부 간 갈등이 여러 장면에서 감지됐다. 주호영 원내대표 주도로 기존 ‘수용불가’ 입장을 접고 ‘예산안 처리 후 국정조사’로 입장 선회가 결정된 11월 23일 의원총회에 친윤계 의원들은 항의하듯 대거 불참했다. 다음날인 11월 24일 이뤄진 본회의 표결에서도 친윤 핵심 그룹인 장제원 윤한홍 이용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에 대한 친윤 그룹의 반발은 앞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운영위원장인 주 원내대표가 ‘웃기고 있네’ 필담 논란을 일으킨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국감장에서 퇴장시켰을 때도 강하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장제원 의원은 퇴장 조치를 두고 “의원들 사이에서 부글부글하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이용 의원도 비공개 의원총회 발언에서 “여당이 윤석열 정부 뒷받침도 못 하고 장관도 지켜주지 못하냐”며 주 원내대표를 직격하기도 했다.
이처럼 당 지도부를 향해 친윤 그룹이 잇따라 비판의 화살을 날렸는데, 윤 대통령은 관저 만찬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적극적인 스킨십까지 보여줬다. 모두가 보란 듯이 신뢰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지도부와의 공식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정진석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다가가 “정말 고생 많으시다”고 격려한 뒤 포옹을 했다. 윤 대통령이 양옆에 앉은 정 비대위원장과 주 원내대표를 향해 진심어린 격려의 모습을 보여주며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는 말이 전해진다.
특히 오후 9시가 넘어서 당 지도부가 자리를 마감하려 하자 윤 대통령은 “내일이 토요일이라 쉬는 날인데 좀 더 해도 되지 않느냐”고 해 만찬은 더 길어졌고, 윤 대통령 뜻대로 행사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런데 당 지도부 만찬에 며칠 앞서 윤 대통령이 친윤 그룹 핵심 의원들과 관저에서 부부 동반 만찬을 한 사실 역시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의도에 관심이 집중됐다. 참석 당사자들이나 대통령실은 관저 만찬 여부에 대해 함구했지만, 동시에 적극 부인하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만남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만남을 두고 ‘당 지도부보다는 윤핵관이 더 선순위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해석이 잇따라 나왔고, 윤핵관 결집 과정에 불화설이 나왔던 윤핵관 투톱 권성동 장제원 의원의 화합을 윤 대통령이 직접 주도하고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윤심은 역시 윤핵관’이라는 주장도 당 안팎에서 나오지만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적잖다. 의리를 중요시하는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준 이들에 대한 관저 입주 인사 차원일 뿐, 당의 지휘권 행사에 중요역할을 맡기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 등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공세가 거세지자 윤 대통령은 11월 30일 주 원내대표와 또다시 관저에서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원내대표가 이를 확인해주지 않고 대통령실이 이를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이 만찬 역시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국 일련의 관저 식탁 초청객들을 보면 여당 내 특정세력 키우기보다는 당의 세력균형을 맞춰가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게 여권 내부의 주류 의견이다.
#관저 식사정치 부작용
윤 대통령의 관저 식사정치에 민주당은 ‘당무 개입’ 프레임을 씌우면서 ‘민생을 위한 국정운영에 소홀하고, 당권에만 관심 갖는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 ‘한가한 비밀 만찬’으로 깎아내리면서 민생 소홀 대통령으로 연결 지은 것이다.
여당 지도부는 적극 부인하고 있지만 대통령 관저에서의 식사 소식이 나온 직후 ‘전당대회 시기가 내년 3월로 정해졌다’ ‘일반 여론조사 비율을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내용의 전대 규정 수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등의 말이 잇따라 나오는 것도 여당으로서는 부담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의 당무 개입 프레임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
여당 내부에서도 “야당을 안 부르는 것도 질타를 듣고 있는데 ‘여당 내부 초대장 소외 계층’은 도대체 어쩌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관저 식사정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여당 식구들의 박탈감이 급속도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걱정이다.
민주당 역시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11월 28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친한 사람들만 불러다가 밥 먹는 거면 그게 ‘끼리끼리 정치’지 그게 무슨 관저 정치냐”며 “집권세력이 얼마나 옹졸한지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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