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타워. | ||
두산의 대우건설 인수 선언은 중공업그룹으로의 변신을 염두에 둔 것이다. 두산은 지난 2001년 한국중공업 인수 이후부터 중공업 강화에 박차를 가했고 지난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사들이며 본격적인 중공업그룹화에 나섰다.
두산은 중공업화에 필요한 부문 중 건설 분야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계열사 중 건설전문업체인 두산산업개발의 경우 국내 아파트 건설 분야에 치중해 있으며 해외 수주는 거의 없는 상태다. 현대건설과 삼성건설이 주도하는 국내 건설업계에서 두산의 대우건설 인수는 두산의 건설계열사를 건설업계 1위로 발돋움시킬 수 있다는 평이다.
그러나 두산의 대우건설 인수를 단순히 사업적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시각도 있다. 두산은 지난해 총수일가 내부에서 일어난 ‘형제의 난’으로 이미지를 구겼다. 따라서 인수합병 시장 최대매물인 대우건설 인수전을 통해 안으로는 흐트러진 전열을 재정비하고 밖으로는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올려 10대 그룹 안에 진입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동안 그룹 내 구조조정 작업과 중공업 강화를 주도해온 박용성-용만 형제가 이번 대우건설 인수 아이디어의 진원지일 것이란 평도 내놓는다.
두산의 인수전 참여를 냉랭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우건설 내부의 기류도 주목할 만하다. 대우건설 노조는 도덕성 시비에 휘말린 기업의 인수전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인수협상이 본격화될 때 부적격 기업 리스트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지난해 분식회계 비자금 논란에 휩싸인 두산을 표적으로 삼은 셈이다.
이에 대해 두산측 관계자는 “총수 일가 내부의 다툼과 이번 인수전 참여는 무관하다”며 “중공업그룹으로 특화시키기 위해 참여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용성 전 회장이 이미 그룹 경영에서 물러났고 박용만 전 부회장도 그룹 부회장직을 사퇴했다는 점을 들어 이들 총수 형제가 최근의 두산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두산의 이번 인수전 참여를 ‘국면 전환용’으로 보는 시각엔 ‘두산이 과연 대우건설을 삼킬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깔려있다.
DJ정부 이후 현정부까지 두산그룹이 한국중공업이나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서 잇따라 성공하자 재계에선 ‘두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일각에선 대형 거래에 ‘고관대작’의 입김이 오가는 그간의 관행을 들먹이기도 했다. 이런 시각은 두산그룹 내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진 이후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 그룹 오너들이 구속됐던 비슷한 다른 사례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 두산이 또 다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자 ‘뒷심’의 원천이 어디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대우건설은 대우그룹이 망한 이후 지난해 매출 4조원을 기록할 정도의 우량건설사로 발돋움했다. 반면 두산의 계열사인 두산산업개발의 지난해 매출은 2조원에도 못 미친다. 이는 두산의 자금력에 대한 의문과 함께 두산산업개발의 경영규모와 노하우로 과연 대우건설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두산측 관계자는 “다른 기업들과 인수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이므로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두산이 희망하는 것은 컨소시엄에서 1대 주주가 돼 경영권을 쥐는 것이다. 두산측은 “두산산업개발이 대우건설의 인수 주체가 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두산중공업이 해외수주 등을 통해 공업단지 건설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두산중공업이 대우건설을 흡수하는 형태도 가능하다”고 밝힌다. 두산 계열사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군인공제회와의 공동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두산측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룹 안팎에선 대우건설 인수 성공시 기존의 두산산업개발과 대우건설의 합병을 통해 대형 건설업체 구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측이 밝히는 ‘대우건설 인수를 통한 건설분야 1위 도약’ 역시 ‘두산산업개발+대우건설’조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서 보듯 두산산업개발은 박용성·용만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총수일가의 영향력이 어느 계열사보다 강한 곳이다. 동시에 두산산업개발은 주요 계열사 지분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두산산업개발만 잡으면 두산 계열사 전체 지배가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왔을 정도로 총수 일가에게는 알짜배기다. 때문에 이 회사를 건설분야 1위 업체로 만들겠다는 총수일가의 염원이 반영됐다는 평도 나온다.
두산산업개발과 대우건설에서 업무상 겹치는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중공업그룹으로 도약하려는 두산이 중공업과 관련성이 적은 일부 계열사에 대한 정리작업을 추진할 것이란 시각이다. 즉 ‘우량기업 인수’와 ‘부실 계열사 정리’가 병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최근 공개된 두산의 지주회사 형태로의 전환 움직임 역시 일부 계열사 매각설을 부추긴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해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덕분에 두산그룹이 역대 최고의 실적을 올린 한해가 됐다”고 밝힌다. 올해 대우건설 인수를 최대목표로 삼은 두산이 알짜기업이 된 옛 대우계열사들을 통해 재계 10위권 진입, 건설업계 1위 도약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재계 인사들의 관심이 계속해서 쏠릴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