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이건희 회장이 왼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 ||
서울대 법학과 출신의 현 회장은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 12년간 감사원 생활을 지낸 후 1978년 2월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전주제지(현 한솔제지)에 입사하며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자서전에서 현 회장은 삼성에 몸담으면서 보고 느꼈던 삼성그룹의 면면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28년간 삼성에 몸담고 있는 현 회장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지내며 2인자의 역할을 했다. 3년간 이건희 회장을 아침저녁으로 대면했던 현 회장의 눈에 비친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비서실장이 되기 전에는 일년에 대여섯 번 정도 이건희 회장을 볼 기회가 있었던 현 회장은 그 때마다 이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항상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비서실장으로 직접 옆에서 보고 느꼈던 점과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이 회장을 옆에서 보필하면서 느낀 것은 그의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한 문제에 골몰하면 그 문제의 본질에 닿을 때까지 파고 들어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 정도는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물은 찬 데 ‘왜 차냐?’ 한번, 물이 찬 건 얼음 때문이라는 답이 나오면 ‘그럼 얼음은 왜 차냐?’라며 재차 질문을 한다. 얼음이란 0℃ 이하에서 얼기 때문에 차다는 답을 찾아내고 나면, ‘그럼 왜 0℃ 이하에서 얼음이 되냐?’는 식의 질문을 한다.”
이런 집중력으로 이 회장은 반도체의 중요한 기술뿐만 아니라 전기오븐의 구체적 디자인과 기술까지도 핵심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때 삼성그룹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막대한 돈이 들어갔던 반도체 사업이 오늘날 삼성의 기반이 된 것은 이 회장의 선구안 때문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회장은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꼭 일을 회사에 나와서 사무실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회장은 사무실이 따로 없다는 주의였다. “일하는 곳이 오피스다. 내 방도 오피스다. 왜 꼭 사무실에서만 일을 하느냐. 타고 다니는 차도 오피스다. 그런 고정관념을 깨자”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집과 영빈관, 자동차를 최고급으로 꾸민 것은 그곳도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중요한 회의를 할 때는 생각을 집중할 시간을 택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는 시간인 새벽 2∼4시에 회의를 하기도 했다. 또 이 회장의 방에는 시계가 다섯 개 있는데, 서울 뉴욕 런던 남미 등 세계 곳곳의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회장의 머릿 속은 밤낮 구분, 장소 구분이 없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을 모두 보필했던 현 회장은 두 사람의 차이를 양적인 경영과 질적인 경영으로 설명했다. 현 회장이 신라호텔 이사로 재직하던 시절, 신라호텔에서 만든 만두를 맛본 이병철 회장은 그날 가져간 만두의 가격은 얼마고, 원가와 이익이 얼마인지를 조사할 것과 다른 호텔에서 만드는 만두 맛이나 크기를 비교하여 어떤 차이가 나는지를 분석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것은 이익을 늘리기 위한 것인데, 원가의식과 이익에 대한 개념 없이 매출에만 신경써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현 회장은 해석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창업주가 이루어놓은 경영철학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양적인 경영’에서 ‘질적인 경영’으로 변모시켰다. 품질과 기술의 혁신을 위해서는 비용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었다.
삼성이 사카린밀수사건에 연루돼 정부에 헌납한 한국비료를 되찾기 위해 민영화를 위한 입찰에서 입찰가를 3백억원이나 높게 써 낸 것에 대해 걱정하던 현 회장에게 이 회장은 “우리가 시장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데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들려 주었다고 한다.
이 회장의 지론은 인재를 채용할때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천재가 수천 명을 먹여살린다”는 것이 이 회장의 인재론이다. 이런 인재의 활용에 있어서도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차이를 보인다.
이병철 회장이 창업 동지들과 공채 출신을 양성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공채 삼성맨들 외에 관계, 금융계, 학계 등에서 인력을 수혈받는 데 힘을 쏟았다. 창업주가 자신의 성격처럼 조직 장악력이 크고 맡은 일을 야무지게 처리하는 관리형 인물을 중용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공채 위주의 인사가 파벌을 형성하는 등 동맥경화증을 유발한다고 판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외부 인사 영입에 힘썼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아 우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그만두거나 다른 그룹으로 옮기면 화를 내고 아쉬워하곤 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현 회장을 비서실장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그룹에서 오랫동안 몸담지 않았던 것이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강점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현 회장은 1996년 이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되고 재판을 받자 책임을 지기 위해 비서실장에서 스스로 물러났다고 한다. 뒤를 이어 이학수 비서실 차장이 비서실장을 맡아 현재까지 구조본부를 이끌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