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구택 포스코 회장. 이 회장이 취임한 지 4년째지만 여전히 ‘포스코’ 하면 박태준 전 회장의 이미지가 강하다. | ||
생산기술부문 마케팅부문 스테인레스부문 기획재무부문 조직인사부문 등 5개 부분으로 나눠 책임임원이 담당 부문의 경영을 책임지고 그 위에서 이구택 회장이 이 5개 부문에 대한 총괄운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은 오는 2월24일 주주총회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이 같은 대규모 개편 배경에 대해 포스코측은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선 경쟁력 강화 포석 외에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번 조직개편안을 이구택 회장의 조직 장악력 강화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포스코’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여전히 박태준 전 회장이다. 박 전 회장은 지난 1968년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지난 2003년 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포스코의 상징적인 인물로 군림해왔다. 지난 2003년 갑작스럽게 낙마해 이구택 현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준 유상부 전 회장도 박태준 전 회장의 사람이었다.
이구택 회장이 신임 회장직에 선임됐을 당시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만 해도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1969년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이 회장은 줄곧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고 한다. 박태준 회장도 그에 대해 “미래의 CEO(최고경영자)감”이란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포스코가 ‘친 박태준’파와 ‘반 박태준’파로 나뉘어 대립할 때 비교적 중립을 지킨 인물이었다. 양 진영에서 모두 이 회장에 특별히 거부감을 갖지 않았던 것이 회장직 선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던 바 있다.
그런데 최근 포스코의 조직개편을 바라보는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이구택 회장이 조직 장악에 팔을 걷어붙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구택 회장이 포스코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혀 ‘제2의 박태준’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극단적 평까지 등장했다.
포스코 이사회는 올해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강창오 사장과 류경렬 부사장을 대신할 새 상임이사 후보로 조성식 상무와 이동희 상무를 추천했다. 강창오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이구택 회장의 과 선배이며 이 회장보다 네 살 위다. 그러나 포스코 공채 1기인 이 회장의 입사연도는 1969년으로 1971년 입사한 강 사장보다 2년 선배가 된다. 강창오 사장은 그동안 이 회장과 더불어 공동대표이사를 맡아왔지만 이번에 물러나게 돼 이구택 회장이 대표이사로서 경영 전반을 ‘단독’으로 총괄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보다 한 살 아래인 류경렬 부사장도 지난 1973년 입사해 그동안 중진 경영인으로서 자리를 굳혀왔지만 후임 이사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됐다.
두 사람의 후임 상임이사가 될 것으로 보이는 조성식 전무(1950년생)와 이동희 상무(1949년생)의 약진을 두고 포스코가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조 전무와 이 상무 모두 이 회장보다 회사 경력 면에서 후배가 된다. 특히 이동희 상무는 1977년 포스코에 입사해 70년대 초반 포스코에 발을 들여놓은 강창오-류경렬 라인과 대조를 이룬다. 이 상무가 주주총회 이후 상임이사직에 이름을 올려놓게 되면 기획재무 부문을 맡을 예정인데 전무직 이하 임원 중 책임임원을 맡게 될 인사로는 이 상무가 유일하다.
재계에선 이번 개편으로 ‘박태준 시대’에 주목받은 고참급 임원들이 물러나고 70년대 중·후반에 입사한 세력이 경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세대 교체 인사로 이구택 회장이 자신의 조직 장악을 받쳐줄 신진인사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평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정에 서 이구택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곧 임기만료되는 사외이사는 새뮤얼 슈발리에 전 뉴욕은행 부회장과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등 3명이다. 지난 2월6일 열린 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이들 중 박영주 회장과 서윤석 교수를 재추천했다. 박 회장과 이 교수는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이구택 회장과 대학 동문이다. 특히 박 회장은 59년 경기고 졸업생으로 이구택 회장의 경기고-서울대 직계 선배가 된다.
인사 외에도 경영상 긴급사항이 발생했을 때 회장이 이사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집행할 수 있다는 정관 규정을 이사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으면 되는 것으로 바꾸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이 정관 개정안에 대해 포스코 측은 ‘경영상 효율성을 높이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회장의 권한 강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주총을 계기로 이구택 회장 체제가 더욱 강화돼 이 회장이 박태준 명예회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밝힌다. 이 관계자는 “강창오 사장 등이 물러나는 것은 나이 등 여러 문제가 고려된 것이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은 독립된 기관에서 한 것으로 특정 인사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친 이구택’ 성향 인사들로 이번 인사가 이뤄졌다는 항간의 평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적합한 인물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과 학연이 겹치는 인사들이 우연히 발탁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