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대비 사회공헌 활동 미미…공시 의무 피하기 위해 유한책임회사 전환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명품시장은 2019년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에 비해 40% 정도 성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에르메스코리아 매출은 5275억 원으로 전년(4190억 원) 대비 26%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04억 원으로 전년(1333억 원) 대비 28% 증가했다. 샤넬코리아의 2021년 매출은 1조 2237억 원으로 전년(9295억 원) 대비 31.6% 늘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489억 원으로 전년(1491억 원)보다 67% 증가했다. 루이비통코리아 2021년 매출은 1조 4680억 원으로 전년(1조 467억 원) 대비 40%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018억 원으로 전년(1519억 원)보다 98.7% 증가했다.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의 국내 합산 매출이 3조 원을 넘어섰다.
하이 주얼리 부쉐론 등을 전개하는 케어링와치앤주얼리코리아도 2021년 매출 635억 원으로 전년(244억 원) 대비 160%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억 원으로 전년(16억 원) 대비 25% 증가했다. 보테가베네타코리아의 2021년 매출은 2333억 원, 영업이익은 116억 원으로 전년(1581억 원, 79억 원) 대비 각각 48% 상승했다.
명품업체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한데도 사회공헌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사회공헌도를 헤아려볼 수 있는 국내 기부금 지출액이 아예 없거나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루이비통코리아는 명품업체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지만 기부금은 2020년에 이어 0원이었다. 케어링와치앤주얼리코리아와 보테가베네타코리아도 2021년 기부금이 없었다.
2021년 에르메스코리아는 4억 5835만 원을, 샤넬코리아는 7억 원을 기부금 항목으로 지출했다. 에르메스코리아와 샤넬코리아는 매출액 대비 각각 0.085%, 0.057% 기부했다. 에르메스코리아 관계자는 “에르메스는 서울시립미술관 장기 후원, 궁궐 복원 프로젝트 등 에르메스만이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한다”며 자사의 사회공헌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품업체의 이러한 행보가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선호 현상을 꺾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업체들의 기부금이 없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구매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는 “기업이 ‘해야 할 것’을 안 하면 불매운동이 발생하지만 ‘더 해야 할 것’을 안 했다고 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며 “명품업체들의 사회공헌활동은 의무가 아니라 ‘하면 좋고’ 식의 활동이다 보니 불매운동까지 발생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명품업계가 수익 규모와 사회공헌활동 등 기업 경영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꼼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회사 형태를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 유한책임회사로 전환되면 공시 의무가 없어 명품업계의 가격 인상 적정성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없을뿐더러 수익 규모, 사회공헌활동 등 경영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2018년 11월 1일 시행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신외감법)에 따라 유한회사로 설립·전환한 글로벌 기업은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자산과 매출이 500억 원 이상이면 실적을 공시한다. 주식회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재무정보를 공시하게 해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유한책임회사는 신외감법에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한책임회사 제도는 본래 국내 벤처기업의 창업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유한책임회사는 회사채나 주식 발행이 불가능하고, 출자자들이 유한책임(출자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지분에 한해서만 책임을 지는 제도)을 진다. 이사나 감사도 의무적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즉 회사의 설립·구성·운영 등에서 사적인 영역을 폭넓게 인정하는 형태다. 명품업계가 이러한 점을 노리고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면서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고 외부 감시망을 피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케어링와치앤주얼리코리아는 법인 형태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발렌시아가코리아와 보테가베네타코리아도 지난해 10월 법인 형태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등기를 완료했다. 구찌코리아는 그보다 앞서 2020년 10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앞의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품업계는 항상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다른 업체들도 줄줄이 가격을 올리는 식”이라며 “유한책임회사 전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서, 신외감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시 의무 부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법망을 피해가는 행위”라며 “단기적으로 신외감법 개정을 통해 유한책임회사에도 공시 의무를 부과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또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명품업계가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행위)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선 법적 형태에 따라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닌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몇 명인지, 주주가 몇 명인지 등 실질적인 경제 상황에 따라 공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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