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4월 KTF 내부에서 작성된 ‘L사 인수타당성 검토안’. | ||
지금까지 KTF의 LG텔레콤 인수는 일종의 가능성으로만 언급될 뿐이었지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없었던 것. 하지만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KTF의 내부 보고서는 KTF가 LG텔레콤을 상당히 매력적인 인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젝트명 ‘럭키(Lucky)’로 명명된 인수 시나리오는 KTF 전략기획부문 경영전략실에서 2004년 4월 작성한 것으로 총 16페이지 분량의 ‘L사 인수타당성 검토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서 KTF는 ‘SK텔레콤을 추월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를 LG텔레콤 인수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동통신 시장이 성숙단계로 진입함에 따라 규모의 경제 및 고객확대가 긴요”하다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KTF와 LG텔레콤 양사의 M/S(Market Share: 시장점유율)를 단순 합산시 47.4%로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에 육박(2004년 3월 기준)한다. 합병시 가입자수는 1656만 명으로 SK텔레콤 가입자수 1844만 명의 89.8%에 해당해 비로소 대등한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합병될 경우 비용구조 개선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양사의 통합을 통해 2세대, 3세대 이동통신 신규투자에 대한 중복투자를 회피할 수 있다는 것. 또 공동마케팅을 통한 마케팅 비용, 인건비 및 R&D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LG텔레콤 인수 후 강력한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임을 예상케 한다.
무엇보다 KTF가 매력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LG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IMT-2000 사업권. 현재 SK텔레콤과 KTF는 비동기식인 W-CDMA를 추진하고 있고, LG텔레콤은 동기식인 EV-DV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KTF가 LG텔레콤을 인수하게 되면 향후 정보통신부의 정책 변수나 KTF의 중장기 전략에 따라 W-CDMA와 EV-DV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하나의 주파수를 다시 반납하고 출연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 보고서는 KTF가 매각한 주파수 대가를 LG텔레콤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인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KTF는 LG텔레콤을 인수한 후 주파수 및 시설 통합에 따른 역시너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지만 이미 LG텔레콤과 로밍(기지국 공유)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망 연동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외 인수의 이점으로 ‘규모의 경제로 요금인하에 대한 부담완화 및 저렴한 대고객 서비스 가능’‘이강 체계로의 전환에 따른 요금인하 및 가입자 확보경쟁은 상당부분 축소 전망’‘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 발생시 기업가치 제고로 주가가 상승하고 주주이익이 확대’됨을 들고 있다.
한편 LG텔레콤 인수 방식에 대해서는 ‘언아웃(Earnout: 매도자와 매수자가 나중에 이익이 나면 이익을 나누는 방식)’ 방식과 ‘일괄 인수’ 방식 두 가지를 검토하고 있다. 2004년 4월 당시 LG텔레콤의 지분구조는 (주)LG 및 특수관계인이 37.5%, BT홀딩스B.V(BT)가 16.6%를 소유하고 있었다.
언아웃 방식의 경우 최초 (주)LG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제3의 해외투자자가 매입한 후 2∼3년간의 경영성과에 따라 KTF가 정산하여 LG텔레콤을 인수하는 구조다. 먼저 해외투자자가 일정 시점에 (주)LG의 지분 37.5%를 ‘P가격’에 인수한 후 (주)LG와 언아웃에 의한 지분인수 계약(2∼3년 내 정산)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LG텔레콤의 불분명한 미래가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후 경영성과를 고려해 KTF가 ‘P±α가격’에 이 지분을 인수한다. 지분 인수와 동시에 BT의 지분 16.6%를 추가로 매입해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 방식인 일괄 인수의 경우 먼저 KTF가 (주)LG의 지분을 전량 매입함으로써 처음부터 LG텔레콤을 인수하는 구조. 대신 최초 매매시점에 가격 설정시 LG텔레콤의 불확실한 미래 가치에 대해 디밸류에이션(하향평가) 검토를 주문하고 있다. 이후 2∼3년이 지난 시점에서 BT가 가지고 있는 지분의 인수 여부를 판단한다. 이는 BT 지분을 조기 확보하는 데 따른 경영상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KTF가 LG텔레콤을 인수하는 것이 시나리오만큼 손쉬운 일은 아니다. 경쟁사인 SK텔레콤, 정보통신부, 그리고 자금동원이라는 문제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KTF가 LG텔레콤을 인수하면 시장이 2강 체제가 되기 때문에 공정위가 승인을 해줄 것인가를 변수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 사례를 예로 들면서 KT의 PCS재판매 조직을 분리하는 등의 조건부 승인을 예상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 합병 때 2년간 시장점유율 50%를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정보통신부가 합병을 승인해 준 바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사업 3강 체제를 고수할 경우 합병은 불가능해지고 합병을 승인하더라도 이용자 보호, 3세대 통신망사업 등 합병이행조건이 부여될 것을 예상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인수로 인해 SK텔레콤과 대등한 위상 확보시 시장지배력 감소를 우려한 SK텔레콤의 상당한 견제가 예상된다고 보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04년 4월에 작성된 것으로 이는 2004년 말까지 LG그룹이 GS그룹과 분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LG그룹의 계열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신사업 매각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서에서는 ‘(주)LG 회사분할 및 지주회사 전문화 계획이 주는 시사점’에 대해 “구씨와 허씨 간의 지분정리가 완료되는 대로 돈되는 사업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향후 한계사업군에 대한 계열분리 및 매각이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씨 일가는 LG카드로 인해 자금력이 약화된 상황으로 화학/전자 분야의 육성을 위해 신속한 구조조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LG그룹은 통신사업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고 최근 LG텔레콤은 매출액과 수익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KTF를 위협할 정도다. KTF가 지금도 LG텔레콤을 인수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밝혔듯이 KTF가 SK텔레콤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 위해서는 LG텔레콤 인수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KTF의 경영진으로서는 이동통신시장이 성숙기에 이르면서 더 이상의 가시적인 가입자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LG텔레콤에 더 미련을 가질 수 있다.
LG텔레콤 매각 문제는 초고속통신망 서비스 회사인 하나로텔레콤 매각문제와 연계돼 있다. 이 보고서에서 보듯 KT그룹은 PCS 천하통일을 통한 ‘타도 SK텔레콤’에 대한 집념이 크고, 이 경우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를 통한 유무선 겸용을 협상책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통신시장은 급속히 KT-KTF그룹과 SK텔레콤그룹으로 재편되고 LG그룹의 통신사업은 계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정통부는 산하 사업자의 수가 많은 3강체제를 고집할 가능성이 더 크다. 통신시장 구조조정 문제가 피할 수 없는 현안으로 불거지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