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 사이로 계산기 소리 요란
지난 3월 17일 KT&G 주주총회에서 KT&G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외국자본 칼 아이칸 연합이 사외이사 1인 선임에 성공했다. KT&G 입장에선 국내 투자자들의 위임장을 대부분 확보해 아이칸 측의 사외이사 진출을 한 명으로 막았지만 이사회에 아이칸 측 인사가 들어감으로써 앞으로 KT&G 경영에 관한 대부분의 결정 사항에 아이칸 측이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KT&G는 적장을 내부 진영에 둔 채 결전을 벌여야 하는 입장이다.
아이칸 측은 올 초부터 KT&G 경영권을 공개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KT&G 자산 처리에 대한 간섭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그리고 외국자본과의 연합을 통해 우호지분을 15%선까지 끌어올리면서 KT&G에 대한 침공을 본격화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토종 자본 지킴이’를 자처하며 KT&G를 위한 ‘백기사’로 나서게 된 것이다. 양측이 연합해 결성하는 ‘KT&G 성장위원회’는 아이칸 측의 침공을 저지할 1차 방안으로 KT&G 자사주 매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지분율 9.7%인 KT&G 자사주를 우리은행·기업은행 연합이 매입해주면 그 자금을 통해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다른 투자를 할 수 있으며 두 은행이 확보한 지분은 KT&G에 대한 우호 지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만만치 않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주주 공동의 자산을 특정주주에게 파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논란이 민사소송으로 번질 수 있는 탓이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의 눈치도 봐야 한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3월 15일 ‘대주주 지분이 적거나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떠오른 국내 우량 토종기업 주식으로 펀드를 구성해 앞으로 의결권 행사를 통해 경영권 방어 등을 수행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일명 ‘백기사 펀드’ 상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약관상 토종 지킴이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펀드가 사회적 역할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금융측의 ‘백기사 펀드’ 약관에 나온 모집 총액은 1000억 원인데 이 중 한 종목에 대해 투자할 수 있는 한도는 10%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펀드를 통해 우리금융이 ‘특정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쓸 수 있는 금액은 100억 원이 최대라는 이야기다.
물론 KT&G 자사주 매입을 천명한 우리은행이 KT&G 같은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고작 100억 원만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 입장에선 토종 자본 지킴이 구실로 1000억 원 모아 100억 원만 토종 자본 수호에 쓸 수밖에 없는 우리금융측의 상품에 제동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선 “우리금융 상품 같은 것 여러 개가 나오면 토종 자본을 지킬 수 있다”며 금감원을 향해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우리은행이 이 같은 난관을 예상하면서도 KT&G 경영권 방어에 대한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LG카드 인수를 위해 신한은행과 일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은행의 KT&G 자사주 매입 등의 노력에도 KT&G 경영권을 외국 자본에 빼앗긴다면 우리은행은 토종자본을 지키기 위해 애쓴 기업이 되며 이는 차후 업계의 호의적 여론형성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은행과 함께 ‘백기사’를 자처한 기업은행은 현재 KT&G 지분 6% 가량을 갖고 있다. KT&G 경영권 향배에 따라 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 가치가 요동칠 수 있는 셈이다.
외국계 투기자본 소버린은 SK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에 대한 도전을 선언하며 2년 4개월간 분쟁을 벌였지만 허다한 명분은 뒤로한 채 결국 지난해 8000억 원 시세차익만 챙기고 국내시장에서 철수했다. 물론 최 회장 측도 소버린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SK의 경영권 방어는 물론 엄청난 주가 상승이란 두 마리 토끼를 챙겼다. 이는 KT&G와 아이칸 측의 경영권 분쟁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결국 KT&G 지분 가치를 높여줄 것이란 예측을 가능케 한다. KT&G 대주주인 기업은행 측이 이를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아이칸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난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아이칸측은 “KT&G의 경영진이 현재 자산과 기업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회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투자 목적이 단기이익 취득이 아닌 경영 참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아이칸 연합의 조기 철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미 아이칸 측은 KT&G 투자로 인해 30%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업계 몇몇 인사들은 “아이칸 측이 KT&G 자사주 매각 추진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적당한 가격에 아이칸 보유 KT&G 주식을 사달라’고 KT&G측에 사인을 보낸 것”이라 입을 모으기도 한다. 소버린과 마찬가지로 경영 참여를 주장하고 지분 쟁탈전을 벌여가며 해당 주식 가치를 높여놓은 뒤 적당한 시점에 철수하는 이른바 ‘치고 빠지기’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업계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이다.
아이칸파트너스 스틸파트너스 플랭클린뮤추얼 템플턴자산운용 등으로 구성된 아이칸 연합이 각자 다른 셈법을 취할 가능성도 있다.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연합 세력 사이 균열이 일어날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국내 자본과 정치권 등이 ‘KT&G 지키기’를 위해 똘똘 뭉칠 경우 이들이 각자 다른 계산기를 두드릴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선 외국계 담배회사의 정치권 로비설이 번져 나가고 있다. ‘현재 KT&G에 국한된 국내 담배 판매권을 자유경쟁체제로 돌려달라’는 것이 이 미확인 소문에 등장하는 로비 내용의 골자다. 이럴 경우 KT&G의 기업가치는 종전에 비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외국계 자본의 KT&G 경영참여가 국내 담배시장에서 외국계 담배회사의 지배력을 더 높일지, 아니면 단순히 투기자본의 머니게임으로 끝날지 주목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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