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중국 봉쇄’ SK하이닉스 직격탄…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성공 가능성 미지수
#피할 수 없는 고난의 길
21세기 반도체 산업은 모바일과 클라우드가 이끌었다. 스마트폰 보급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메모리 반도체가 천문학적으로 소요됐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 성장이 정체되고 데이터센터 구축도 성숙기에 들어서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고 이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8기가 낸드플래시 가격은 2018년 6~8달러였지만 현재는 3달러를 밑돌고 있다. 2018년까지 1달러가 넘었던 2기가 DDR3 가격도 현재는 30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에만 가격이 60% 넘게 급락했다.
미국 마이크론의 자체 2023 회계연도 2분기(2022년 12월∼2023년 2월) 매출액은 36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3% 줄었다. 손익에서도 23억 달러(약 3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가 팔리지 않으면서 재고가 쌓였고 가격 하락으로 재고자산에서만 14억 3000만 달러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3위인 마이크론이 이 지경이면 1~2위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상황은 더 심각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 모두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 수요가 회복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당장 수요가 늘어날 만한 요인이 별로 없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일찌감치 감산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전망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더 팔 곳은 없고 재고만 쌓인다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위기 때마다 오히려 생산을 늘리는 역발상으로 메모리 최강자에 오른 삼성전자도 이번에는 결국 감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일단 감산을 하면 증산으로 전환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삼성전자의 ‘역사적’ 감산은 공급 축소로 반도체 가격 하락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상당기간 수요회복이 어렵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중국 장사로 먹고 살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문제는 반도체가 안 팔리는 것뿐만이 아니다. 공들여온 중국 사업에서 철수해야 할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반도체 수요를 양분하는 곳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현지공장까지 지었고 상당한 결실을 거둬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국 경제가 봉쇄됐던 지난해를 제외하면 2017년 이후 2021년까지 5년간 SK하이닉스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최소 33.5%, 최대 46.6%에 달했다.
SK하이닉스의 이익은 중국 매출 증감에 따라 움직였다. 중국 장사가 잘돼야 돈을 버는 구조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불과 2년 전인 2020년 인텔의 중국 낸드(NAND) 플래시 반도체 공장을 무려 10조 원이나 주고 인수했다. 이 공장의 쓸모가 줄어들면 엄청난 부담이다. SK하이닉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부문의 정확한 중국 비중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회사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이 26%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최근 자국에서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업체는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10년간 5% 성장이면 사실상 축소다. 미국이 주는 보조금을 포기해 이 규제를 피해도 중국 공장 유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반도체 공장에 꼭 필요한 각종 소재와 장비 등의 대중국 수출을 이미 막았다. 소재와 장비가 없으면 정상적인 공장 가동이 어렵다.
중국 공장을 접고 대신 국내 생산을 더 늘려 수출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규제는 현지 생산뿐 아니라 수출에도 해당된다.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겠다는 접근이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큰 손님’인 미국의 애플조차 중국 공장을 인도 등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애지중지 키워온 중국 시장을 10년 내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 반도체 시장 포기는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이다. 무역협회가 밝힌 올해 1~2월 대중국 무역적자 누적액은 50억 7310만 달러다. 원자재와 석유를 주로 수입하는 호주(48억 1502만 달러), 사우디아라비아(46억 6890만 달러)를 제치고 최대 적자국이 됐다. 연간 적자를 내면 1992년 이후 31년 만이다. 한국은 2018년만 해도 중국과의 무역에서 556억 3600만 달러(약 72조 3268억 원) 흑자를 냈다. 당시 전 세계 국가 대중국 흑자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19년 2위, 2020년 및 2021년 3위에 이어 지난해에는 22위(12억 1300만 달러)로 추락했다. 대한민국 반도체 수출의 40%가 중국으로 향한다. 반도체 수출 비중은 올해 1∼3월 12.8%에 그치며 2016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15%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부진이 대중국은 물론 전체 무역수지 적자에도 주요한 원인이다.
#파운드리 격차 좁힐 수 있을까
수요 절벽에 다다른 메모리 시장의 부진을 타개할 길은 비메모리 또는 위탁생산(Foundry)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업체들이 경쟁 열위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위지만 부가가치가 더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크지 않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는 엔비디아(NDIVIA), 인텔, 퀄컴 등 미국과 서방 업체들이 절대 강자다.
이들 설계업체의 주문을 받아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에서는 TSMC의 위상이 독보적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가 58.5%, 삼성전자가 15.8%다. 삼성전자는 TSMC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 17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텍사스에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기도 용인에 300조 원을 투입해 5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가 결실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설계 업체들이 삼성전자보다 TSMC를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반도체 수요가 기대되는 AI 기술에는 메모리보다 비메모리가 핵심이다. 이 부문 최강자는 미국의 엔비디아인데 최근 TSMC를 생산 파트너로 택했다. TSMC는 엔비디아가 최근 선보인 ‘H100 NVL’을 곧 생산한다. 이 제품은 챗GPT 고도화에 필수적이다. 엔비디아는 2나노미터(nm) 공정 개발에서도 삼성전자가 아닌 TSMC와 협업을 예고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nm 양산에 성공해 일단 유리한 위치지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AI용 비메모리 반도체에 꼭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절대강자다. AI 수요가 늘면 HBM도 더 많이 필요하다. HBM 등 일부 품목이 유망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워낙 격변하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은 압도적인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허브(Hub)로 도약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TSMC도 파운드리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대만은 반도체를 지켜야 나라 경제도 안보도 유지되는 구조다.
한국에 메모리 반도체 패권을 내줬던 일본도 최근 민관합동 투자 등으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생산장비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견제로 첨단 반도체 생산은 물론 수입도 어려워진 중국의 반격도 변수다. 중국은 최근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 반도체 기술 확보에 국가적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기술이 아직은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지만 국가적 역량을 동원한다면 빠른 속도로 추격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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