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태’로 미국 대출 기준 더욱 강화…‘일자리 엔진’ 소기업 경제활동 위축 우려
그 결과 지난 1년간 양적긴축을 통해 약 6230억 달러 축소됐던 연준의 자산 규모는 불과 3주 만에 약 3640억 달러나 증가했다. 이를 놓고 양적완화냐 아니냐 갑론을박이 있지만 시장흐름만 놓고 본다면 유동성 증가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을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나스닥종합지수는 3월 13일 저점부터 3월 말까지 무려 11.3%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S&P 500 7.9%, 다우30 5.2%, 러셀2000 4.6% 상승 대비 큰 폭으로 아웃퍼폼했다. 또 연준의 통화정책과 연동해 움직이는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3월 8일 5.08%에서 3월 말 4.03%까지 1%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이는 연준의 추가적인 긴축 강도가 약화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 위기는 끝난 것일까. 지난 3월 FOMC 이후 파월 의장은 “가계와 기업의 신용 조건이 더 엄격해져서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 SVB 사태 관련 의회 청문회에서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 겸 은행감독의장은 “우리는 신용조건 강화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은행의 반응은 전반적인 신용 가용성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지표 중 하나가 시중 유동성을 나타내는 광의통화(M2) 증가율이다.
미국의 M2 증가율은 12월(-1.0%), 1월(-1.7%)에 이어 2월(-2.4%)에도 전년 대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196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M2 감소는 총수요 둔화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려는 연준의 의도에 부합하지만 유동성이 필요한 적시적소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을 저해할 수도 있다. 경제에서 유동성은 우리 몸의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하는 동맥경화처럼 경제에서 유동성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돈맥경화'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급격한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경기침체의 위험을 높인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3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경제가 높은 금리 수준에 적응할 정도로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SVB나 시그니처와 같은 금리 인상의 약한 고리가 발생했고, 미국경제가 생각보다 탄탄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실제 미국 경제지표에서 고용관련 지표를 제외하면 대부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ISM(공급관리협회)제조업지수는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S&P(스탠더드 앤 푸어스) 500 기업들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 추정치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미 국채 10년물과 2년물의 장단기금리 차는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1981년 이후 최대 수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가계, 기업과 같은 경제 주체가 경제활동에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미 연준에 따르면 지난해 금리 인상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은행들의 대출 기준이 크게 강화되면서 2020년 2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번 은행사태로 인해 은행들의 대출 기준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소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은행들의 소기업에 대한 대출 기준은 상업용부동산 다음으로 높게 강화되었다. 이는 미국 경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소기업들의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중소기업행정국(SBA)에 따르면, 미국 GDP의 44% 이상이 소기업에서 창출되며, 미국의 총 경제활동 중 48% 이상이 소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또 소기업은 고용 시장에서 일자리 창출의 엔진 같은 역할을 하는데, 2020년 기준 소기업은 노동 시장의 47.1%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미국 대형 기업들의 정리해고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지만, 실업률은 반세기만의 최저수준인 3.6%를 기록하고 있다. 주간단위로 발표되는 실업수당청구건수 역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지속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향후 빠르게 반전될 수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S&P 500을 구성하는 대형 기업들의 정리해고 소식이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중소형 기업들로 구성된 러셀2000 기업들의 정리해고 소식은 아주 미미한 정도다. 하지만 앞서 소기업들의 대출 기준이 강화됐다고 했는데, 이는 앞으로 소기업들이 재정 및 운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타이트해진 소기업들의 경영환경은 자연스레 정리해고 비중을 높여 실업률 상승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연준이 바라는 연착륙으로 가는 길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팀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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