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경 의원과 하태경 의원(원 사진). 임 의원이 하 의원에게 변절자라는 악담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10년간 정계에 새바람을 몰고 왔던 ‘386세대’ 정치인들이 어느 덧 국회의 주축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이들은 486으로 불린다. 지난 10년간 이들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기존 주류세대와는 다른 가치관과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본인들 스스로 기존 주류세대가 그랬듯이 현실 정치에 관성화가 됐다는 평가도 많다. 19대 국회는 486 정치인들이 주축세력으로 나선 본격적인 시험 무대가 되고 있다. 최근 이들은 진보당 경선조작의혹 및 분열사태, 임수경 의원 막말 논란 등 시작부터 연일 이슈메이커로 등장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19대 국회에 입성한 486정치인들의 면면 및 복잡하게 얽힌 이들의 애증관계를 살펴봤다.
민주통합당(민주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임수경 의원이 막말 논란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1일 종로의 한 식당에서 탈북자 출신 대학생 백요셉 씨에게 욕설과 함께 탈북자를 비하한 막말을 퍼부었던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임 의원이 북한인권운동가 출신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해운대기장을)에게 ‘변절자’라며 악담을 했다는 점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임 의원은 사건 발생 다음날 공식 사과했지만 정작 탈북자 진영과 하 의원은 진실성과 의도를 운운하며 사과를 받지 않고 있다.
막말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임 의원과 하 의원의 과거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68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동지로서 1980~90년대 민족해방계열(NL)의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선후배 사이다. 임 의원과 하 의원은 각각 전대협 3기와 5기 출신이다. 두 사람은 90년대 초반 국보법 위반으로 나란히 수감생활을 했으며 출소 후 문익환 목사 밑에서 함께 통일운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 의원은 90년대 후반, 북한체제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진영에서 이탈, 이후에는 북한인권운동에 투신하며 사상을 전향했다. 어찌 보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감정의 골이 이번 사건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셈이다.
두 의원은 뜨거운 혁명의 시절을 보낸 전형적인 486세대 정치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두 사람의 감정싸움은 어찌 보면 그 시대를 함께 공유했던 세대였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19대 국회는 지난 10년간 정계에 새바람을 몰고 왔던 486세대 정치인들이 중심세력으로 나서는 본격적인 시험 무대라 할 수 있다. 486세대 재선의원이 수두룩하고 이제는 3선 의원도 등장한 상황이다. 19대 국회는 과거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다 국보법 및 반공법을 위반한 의원의 수가 29명으로 역대 국회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
19대 국회에 입성한 486 정치인들중 민족해방계열(NL)과 민중민주계열(PD)로 나눠 살펴보면 NL계열 출신이 압도적이다. NL계열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는 진영은 역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대 초반까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전대협 출신들이다. 전대협 출신 인사들은 국회 내외에서 가장 강력한 결속력을 갖고 있는 486 진영으로 손꼽힌다. 이번 국회에는 한 차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다시 재입성한 전대협 출신 의원이 유독 많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19대 국회를 ‘전대협 간부 부활’ 국회라 부르기도 한다.
전대협 출신 의원은 대부분 민주당에 포진해 있다. 전대협 산파 역할을 했던 1기 출신으로는 이인영 의원(구로갑), 우상호 의원(서대문갑), 그리고 김태년 의원(성남수정)이 있다. 이 의원과 우 의원은 각각 초대 의장과 부의장을 맡아 초창기 전대협을 함께 이끌었다. 2기 출신으로는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전대협 2기 의장 오영식 의원(강북갑), 정청래 의원(마포을), 그리고 3선에 성공한 최재성 의원(남양주갑) 등이 있다.
현재 막말 논란을 겪고 있는 임수경 의원이 전대협 3기 대표 출신이다. 19대 국회 비례대표로 당선된 박홍근 의원은 전대협이 말로를 맞이했던 6기 의장대행 출신으로 막내 격에 해당한다. 박 의원은 최근까지도 전대협 동우회 대표를 역임하며 전대협 출신 인사들을 결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에서는 향후 사상을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에 뛰어든 하태경 의원이 5기 조통위원 출신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진보당 내 NL계열 인사들은 민주당 내 전대협 라인과 궤를 달리한다. 진보당 내에는 공식적 외부활동을 꾀했던 전대협과 달리 지하조직 활동에 주력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출신이 많다. 물론 전대협 출신인 민주당 이인영·우상호 의원은 전대협 해체 후 전국연합에 가담한 이력이 있다.
현재 진보당 내 경선조작 의혹과 분열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이석기 의원(비례대표)은 대표적인 전국연합 출신이다. 이 의원은 전국연합 산하 경기동부연합 소속이며 1990년대 지하당인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진보당 내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는 이상규 의원(관악을), 김미희 의원(성남중원을) 등이 있다. 이 의원은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 책임자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진보당 내에서 유일하게 지역구 재선에 성공한 김선동 의원(전남순천·곡성)과 오병윤 의원(광주서구을)은 광주남부연합 출신이다. 이석기 의원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재연 의원은 486세대는 아니지만, 전대협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한총련 대의원 출신으로 지난 2004년 국보법 폐지 기습시위를 주도한 바 있다.
지난 과거 사회주의 운동권 내에서 주류라 할 수 있는 NL계열과 달리 비주류에 해당하는 PD계열에서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은 재선 의원인 노회찬 의원(노원병)과 심상정 의원(고양덕양갑) 두 명에 불과하다. 노 의원은 1980년대 PD계열 주축으로 활동했으며 당시 전위조직인 인민노련 설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심 의원은 1980년대 위장취업 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다 10년간 도피생활을 했던 전력이 있다.
▲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은 과거 운동권 내 비주류에 속했던 PD계열 출신이다. 일요신문DB |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은평갑 후보로 나섰던 전대협 5기 조통위원장 겸 의장대행 출신 최홍재 은평포럼 대표는 “이제 486 정치인들은 신진세력이라기보다는 기득권 세력”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털어 놓았다.
“최근 연이어 터진 사건 때문에 486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사상검증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이 과한 측면이 있지만 이는 결국 기득권 세대로서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일부 486 정치인들이 기존 기득권 세력과 마찬가지로 관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19대 국회는 분명 시험대다. 그들이 초심으로 생각한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관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기자와 통화한 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그동안 486 정치인들이 보여 온 행태에 대해 많은 비판도 있었다. 당연히 그런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고 자성하고 타성해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최근 일고 있는 486정치인들에 대한 종북주의 색깔론 공격에 대해서는 “철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과도 다른 내용이다. 그런 사고 방식 속에서는 새 시대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그런 비판을 제기하는 세력들은 결국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라며 분명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용어해설
▲NL계열 : 민족해방전선. 자주파라 불리기도 한다. 정통 막스·레닌주의의 계급 모순보다 민족 모순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진영 내 한 계파.
▲PD계열 : 민중민주전선. 평등파라 불리기도 한다. 정통 막스·레닌주의의 기본인 계급 모순을 강조하는 계파로 북한체제에 대해 부정한다. 대중적 지지를 받았던 NL계열과 달리 PD계열은 사회주의 진영 내 비주류에 속한다.
▲종북주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등의 외교 방침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
▲주사파 : NL계열의 주축세력으로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여 활동했던 계파를 지칭한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 1987년 NL계열 대학생들이 주축으로 조직한 대학생 조직. 1992년 해체되고 후신인 한총련이 설립됐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계승해 발족한 재야운동세력의 연합체. 전노협, 전농, 한총련 등 NL계열 27개 단체가 참여했다. 2006년 한국진보연대가 발족하면서 공식 해산됐다.
▲ 김민석 전 의원과 신지호 전 의원. |
김민석 집필 활동 전념 중, 신지호 ‘완전국민경선제’ 주창
현재 원내에 진입한 486 인사들 외에 초창기 386돌풍을 몰고 왔던 원외 인사들도 존재한다. 가장 먼저 바람을 몰고 왔던 486 인사는 단연 민주당 김민석 전 의원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 전 의원은 전대협 전신인 전국대학생연합 의장 출신으로 미 문화원 점거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받으면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96년 32세 젊은 나이로 15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16대 재선에 성공하면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16대 대선 당시 민주당을 탈당해 많은 비판을 받았던 그는 다시는 원내에 오르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0년까지 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내며 재기를 노렸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현재까지 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태다. 201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현지서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지난해 연말께 귀국길에 올랐다. 현재는 집필활동에 전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대협 출신으로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의원 역시 초창기 386 돌풍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89년 당시 임수경 의원의 방북을 주선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이번 19대 총선 과정에서 임수경 의원을 추천한 장본인이다. 16대와 17대 의원을 지낸 임 전 의원은 18대 낙선 이후 이번 19대에 재기를 노렸지만 삼화저축은행 뇌물비리에 연루돼 공천을 포기하고 당 사무총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후 재야에서 지내고 있다.
PD계열에서는 송영길 현 인천시장이 초장기 386 돌풍을 이끌었다. 1985년 대우차 공장 건설노동자로 위장취업하면서 본격적인 사회주의 운동에 나섰던 그는 인천지역에서 운수노조 등 각종 노조활동을 벌였으며 사법시험 합격 이후에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지난 2000년 16대 국회 입성에 성공한 그는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하며 486 세대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송 시장은 지난 2010년 4월 의원직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인천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현재까지 인천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여권 486인사인 새누리당 신지호 전 의원은 특이경력의 소유자다. 연세대 81학번인 신 전 의원은 애초 1980~90년대 PD계열 노동운동에 몸담았었다. 한때는 노회찬 의원과 함께 진보정당 추진위에서 활동하기까지 했다. 1991년 소련붕괴 이후 그는 전격 사상을 전향했고 2000년대에 들어 자유주의연대 대표직을 수행하며 ‘뉴라이트’ 진영을 이끌었다. 18대 총선 도봉갑에서 당선된 그는 용산참사 경찰정당방위 주장, 광화문 촛불시위 강경비판 등 보수진영의 첨병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번 19대 총선 때는 당내 공천을 받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비박계 대선주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최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최근 당내 대권주자 경선과 관련해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창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