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주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훈련에 힘 쏟는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골프의 시작
“여섯 살 때 아버지가 태권도를 시키려고 스포츠센터에 가셨다가 친구 분 권유로 골프채를 잡게 했던 게 첫 출발이었습니다. 워낙 공 갖고 노는 걸 좋아했고 골프도 공을 갖고 하는 운동이다 보니 재미있게 배워갔던 것 같아요. 솔직히 그때 제가 어떤 기분으로 골프를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아요. 그러나 분명한 건 골프를 배우면 배울수록 더 좋아했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김효주는 아버지 친구가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 분은 김효주에게 체력 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강도 높은 훈련 프로그램을 주고 그걸 이행하지 못할 경우 골프채를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원주에서 산악훈련을 제대로 했어요. 산을 뛰어다녔으니까요. 연습장으로 돌아오면 윗몸일으키기는 물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훈련을 반복했는데 그 운동을 다 소화하고 골프를 치려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칠 수도 없을 정도였어요.”
▲ 사진제공=KLPGA |
김효주 아버지 김창호 씨는 여느 골퍼들의 아버지와는 달리 골프와는 인연이 없었다. 자신의 딸이 골프에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김효주를 뒷바라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빠는 골프를 잘 모르세요. 골프를 쳐보지 않으셨거든요. 그러나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해주면서 제 심리를 꿰뚫어보시곤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저에 대해선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세요. 아빠가 해주시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팍팍 꽂히니까요. 엄마요? 엄마는 일하시느라 같이 못 다녔어요. 이전에는 제과사업을 하셨는데, 지금은 숙박업 일을 하고 계세요.”
#지독한 연습벌레
“요즘 저한테 골프 천재라고 얘길하시던데, 사실 천재는 아니고요, 하루 9시간 씩 연습한 노력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거예요. 아마 골프가 싫었다면 그렇게 어메이징한 시간을 쏟아 부으며 훈련하지 못했을 거예요. 놀고 싶은 적도 많았죠. 지금도 훈련보다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사먹으면서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그래도 골프를 통해 얻는 보람이 더욱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수 있게 됐어요.”
나이는 어려도 김효주는 생각의 그릇이 깊고 넓었다.
“보통 훈련 끝나면 집으로 직행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요. 그래야 다음날 시합이나 훈련할 때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데 ‘아주’ 가끔은 아빠가 절 풀어주세요. 훈련 끝나고 친구들 만나서 스트레스 풀고 오라고요. 산토리레이디스 대회 때 그 효과를 봤으니까 앞으로 아빠가 절 자주 풀어주실지도 몰라요(웃음).”
▲ 사진제공=KLPGA |
김효주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골프 특기생으로 입학한 그는 시합이 없는 날에는 여느 여고생들처럼 학교에 등교해서 수업을 모두 들은 후 오후에 훈련을 시작한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냐고 묻자, “아니요. 공부보다는 운동이 더 맞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까르르 웃는다.
김효주한테는 비밀 노트가 있다. 이른바 ‘멘털 노트’다. 골프를 하면서 갖게 된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 반성과 후회들, 그리고 다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절 골프 선수로 인도한 아버지 친구 분께서 멘털 노트를 만들라고 얘기하셨어요. 일기 형식의 글을 적다 보면 나중에 자신한테 많은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덧붙이셨죠. 그래서 시작을 했는데 처음엔 적을 말이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두세 줄 쓰고 끝낸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멈췄다가 작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제가 어떻게 골프를 해야 하는지 길이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그 멘털 노트는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부모님도 그 노트에는 손을 못 대십니다. 아, 산토리레이디스 대회 때 첫째 날과 둘째 날, 너무 공이 안 맞아서 노트에다 엄청나게 긴 자기 반성을 했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날, 버디 쇼를 벌였나?^^”
#프로, 첫 경험
김효주는 중2 때 하이마트오픈 대회에 출전하면서 프로에 첫 발을 내딛었다. 중학생 신분으로 쟁쟁한 프로들과 시합을 치르는 기분이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뭐, 정신줄 놓고 다녔죠(웃음). 프로님들한테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매사에 조심스러웠습니다. 저야 경험 삼아 출전하는 거지만, 프로님들한테는 상금이 걸려 있다 보니 대회 내내 머리카락이 곤두 서는 긴장감을 맛봤어요. 프로님들과 시합하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샷은 물론이고 퍼팅도 보완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그렇게 가끔씩 프로 대회에 출전하다가 지난 4월 KLPGA 개막전이었던 롯데마트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거고요. 2위와 7타차를 벌여놨는데 상금은 못 받아도(아마추어 신분이기 때문에) 엄청난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김효주는 지난 4월 KLPGA 개막전인 롯데마트오픈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사진제공=KLPGA |
김효주한테 일본 산토리레이디스오픈은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의미를 전해준다. 일본 프로 대회에 처음 출전해서 엄청난 성적을 올린 데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회라 그 결과는 더 큰 선물로 다가온다.
“진짜 이런 결과가 나올지 몰랐어요.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시종 드라이버가 불안했거든요. 9타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맞이한 탓에 부담 없이 경기에 임했는데 전반 홀이 끝나고 보니 7언더를 쳤더라고요. 사람들은 우승이 확정된 이후 제 얼굴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제 스코어를 몰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났는지, 얼마나 좋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최연소, 최저타라는 것도 대회 끝난 후에 알았어요. 기분은 좋죠. 그런데 제가 우승해서 기분 좋은 것보다 절 위해 많은 걸 양보하고 희생하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비로소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아빠가 행복해 하시는 걸 보면서 저도 행복해졌습니다.”
#우승이 목표가 아니다!
김효주는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많은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었단다.
“이번 산토리 우승 때는 백스윙이 내려올 때 뒷근육을 많이 쓰자는 게 목표였고요, 롯데마트에서 우승했을 때는 타수를 줄이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어느 대회에선 후회없는 플레이를 하자고, 실수없는 플레이로 미련을 남기지 말자는 목표도 세워요. 설령 우승하지 못한다 해도 제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면 전 그 대회 결과에 만족합니다. 선수가 매번 우승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승은 제 골프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진로 문제
일본 JLPGA 토너먼트 이사회에서 김효주에게 내년 시즌 풀시드를 주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김효주의 거취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대로라면 김효주는 오는 9월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프로로 전향해 KLPGA 정회원 자격을 얻고 시드전을 거쳐 내년 시즌 KLPGA 무대에서 활약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JLPGA 투어 우승으로 일이 복잡하게 됐다.
“일단 지금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요. JLPGA에서 연락이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예정된 수순대로 갈 계획이에요.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하다 LPGA 진출하는 꿈인데, LPGA에서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분이 ‘골프의 신’인 박세리 프로님입니다. 제가 막 골프를 시작했을 때 박 프로님이 미국 골프계를 평정하고 계셨거든요. 박 프로님이 치시는 골프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10년 후 김효주의 모습은 어떤 그림으로 그려져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는 “10년이요? 그럼 스물일곱 살인데…, 에이 당연히 세계 정상에 가 있겠죠. (최)나연 프로가 스물세 살 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잖아요. 전 더 일찍 세계 정상에 올라서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킬 겁니다. 그렇게 되는지 지켜봐주실래요?”
riveroflym@ilyo.co.kr
△1995년 7월 14일 강원도 원주 △165㎝ △드라이버샷 평균 260야드 △아마추어 14승 △2012년 롯데마트여자오픈 우승 △2012년 JLPGA 산토리레이디스오픈 최연소 우승(만 16세332일), JLPGA 18홀 최저타(61타), 한 라운드 최다 버디(11개) 신기록, 4라운드 17언더파 271타 타이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