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3대 요소 ‘신뢰성’ ‘폐쇄성’ ‘화제성’ 두루 갖춘 공간이 바로 병원이라 이목 집중
#‘병원’이라는 단어의 신뢰성
과거에는 초임 연예부 기자에게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하는 조언 가운데 하나는 ‘주위에 연예계 관련 이야기, 특히 확인 안 된 루머를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돌고 돌아 ‘아는 ○○인 연예부 기자한테 들었는데…’라는 루머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르다. ‘기레기’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기자의 신뢰성이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는 ‘아는 ○○’ 시리즈가 있다. 바로 병원 관계자다. ‘아는 친구인 병원 의사한테 들었는데…’ 내지는 ‘아는 언니인 병원 간호사한테 들었는데…’ 등의 루머다. 최근 불거진 박나래 성훈 루머 역시 ‘오빠 회사 직원이 대학병원에 친구가 있어 들었는데…’로 시작된다.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병원은 건강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곳이다. 질병에 걸리거나 어딘가를 다치면 병원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병원이라는 단어가 갖는 신뢰성에 루머가 슬며시 올라탄 모습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믿게 만들기 위해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신뢰하는 병원이 루머에 자주 활용되는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의 폐쇄성
병원은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다. 물론 환자나 보호자, 문병객 등이 드나들 수 있지만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의료진이 사용하는 용어 역시 매우 어려워 의학 드라마에 자막이 자주 등장할 정도다. 진료기록 같은 민감한 사생활의 영역은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기자들에게도 병원 취재는 매우 제한적이다. 기자 역시 병원에선 취재를 위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인 데다 의학 용어도 생소하다. 게다가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진료기록에는 접근할 수 없고 행여 확인했을지라도 기사화할 수 없다. 진료기록은 민감한 사생활로 법적 보호가 철저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쇄성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가 갈 수 없는 곳, 내가 잘 모르는 얘기, 행여 알아도 누군가에게 절대 얘기하면 안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이라는 씨앗이 뿌려져 루머가 생겨나면 병원이라는 단어가 가진 신뢰성이 루머를 쑥쑥 크게 만든다. 다시 말해 병원은 루머의 씨앗과 자양분을 모두 갖추고 있다.
#‘병원’이라는 업무의 화제성
병원의 다양한 공간 가운데 가장 흔한 루머의 배경은 응급실이고 수술실이 그다음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루머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누가 병원에서 무슨 수술을 받았다는 루머다. 사실 응급실과 수술실은 대중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공간이기도 해 의학 드라마에서도 주요 배경이다. 요즘 잘나가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도 응급실과 수술실이 주요 배경이며 전문 의학 드라마는 아니지만 병원이 배경인 ‘닥터 차정숙’의 차정숙은 가정의학과 레지던트지만 수술을 많이 하는 외과로 파견 나가 있다.
의학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병원에서 드라마틱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이 루머에 재미를 더해주며 화제성을 극대화한다.
특히 유명 연예인이 급히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틱한 내용의 루머가 많은데 최근 화제가 된 박나래 성훈의 루머와 유사한 내용의 루머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펴졌었다. 비슷한 내용에 등장 연예인의 이름만 달라진 셈이다. 이외에도 실제로 연예인이 응급실을 찾았고 그 이유도 소속사를 통해 공개됐음에도 자살을 시도했다는 등의 루머가 생겨나기도 한다. 누군가 화제성을 극대화할 루머를 만들어 유포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역시 질병에 걸릴 수 있고 다칠 수도 있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이런 자연스러운 일은 루머의 소재도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듯 병원이 갖는 공간의 폐쇄성 때문에 병원 방문 이유는 타인이 알 수 없다. 이 대목을 파고들어 자극적이고 화제성 높은 병원 방문 이유로 포장된 루머가 탄생하곤 한다.
#병원 방문 자체가 부담스런 연예인들
이러다 보니 연예인 입장에선 병원 방문 자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부인과다. 다양한 부인과 진료를 위해 찾을 수 있는 병원이지만 ‘임신’ ‘낙태’ 등의 루머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병원 측에 양해를 구해 진료 시간이 끝난 뒤 몰래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연예인들도 있는데 사실 이게 더 위험하다. 행여 누가 본다면 이런 모습이 오히려 루머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임신 루머에 휘말렸던 가수 가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왜 모든 여자 연예인이 산부인과를 숨어 다녀야 합니까. 내과나 외과는 그냥 가면서. 그리고 임신은 축복할 일입니다”며 “그런데 전 임신이 아니고요. 모든 여자 연예인이 당당히 병원에 갔으면 합니다”는 글을 남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그나마 대중의 인식 변화로 연예인들이 정신의학과를 찾는 데에는 불편함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은 정신의학과 방문도 쉽지 않았다. 어떠한 질환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정신병’이라는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공황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등을 고백하는 연예인들이 많고 대중도 그런 연예인들을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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