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일 우호 노선에 중국인들 노골적 반감…정용화·현아 뒤통수 맞는 등 한한령 7년 만에 고개
#이미 녹화 마쳤지만 출연 불발된 정용화
5월 24일(현지시간) 중국 매체들은 가수 겸 배우 정용화의 아이치이 새 오디션 프로그램 ‘분투하라 신입생 1반’의 출연이 돌연 불발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정용화는 중국 출국 스케줄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SNS를 통해 중국에 온 그의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미 녹화까지 마쳤던 정용화 측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용화의 출연 불발은 중국 네티즌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류 스타가 중국 방송에 출연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중국 미디어 산업을 총괄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아이치이 측은 “정용화 출연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치적 논리를 우선시하는 중국 사회 분위기 상 한류 스타 출연을 강행할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가수 현아 역시 SNS를 통해 한 중국 페스티벌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페스티벌 주최 측은 “현아의 참가는 미정”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는 전방위적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걸그룹 블랙핑크는 마카오를 비롯해 중어권 국가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이 자리에는 중국의 유명 연예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에 일부 중국 네티즌은 안젤라 베이비를 비롯해 블랙핑크의 콘서트에 다녀왔다는 자국 연예인 이름이 적힌 명단을 공유하며 ‘매국노’라고 악플을 달고 있다.
이는 미국·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외교 노선과 맞물린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은 한미·한일 공조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열린 G7 정상회의에도 윤 대통령은 개최국인 일본의 초청을 받아 참관국(옵서버)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기간에 맞춰 중국 내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접속 장애 현상이 빚어졌다.
개별 연예인들의 활동 제한보다 우려되는 것은 중국 내 혐한 분위기다. 몇몇 네티즌은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한류 스타들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는 수준을 넘어,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중국을 여행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혐오 분위기가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중국 시장
한한령은 2016년 처음 가동됐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응이었다. 물론 중국 측이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한한령 이후 한류 스타의 중국 공연이나 팬미팅 등은 전면 금지됐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상영될 수 없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앞다투어 한류 콘텐츠를 흡수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13억 명이 넘는 중국을 무대로 삼는다는 것은 20개가 넘는 국가와 교역을 하는 것에 맞먹는 효과를 발휘한다”면서도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은 정치적 이슈에 의해 언제든 문화 교류가 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리스크가 매우 크다. 정치·외교적인 분란이 있어도 이와 별개로 문화 교류가 활발한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고 말했다.
2016년 촉발된 한한령이 해빙기를 맞기까지 약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 ‘암살’ 이후 6년 만인 2021년 말 배우 나문희 주연작 ‘오! 문희’가 중국 극장에 걸렸다. 내로라하는 한류 스타가 출연한 작품은 아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작품이 중국 내 상영된다는 것은 한중 교류의 재개를 뜻하는 마중물로 읽혔다.
2022년 초에는 배우 이영애·송승헌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후난성 망고TV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중국 언론 바이두는 “‘사임당’이 (수입된 지) 6년 만에 방송돼 (중국)네티즌의 관심과 화제를 모으고 있다”면서 “당초 2016년 하반기 한 위성TV에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객관적 요인으로 인해 시청자들과 만나지 못했는데 팬들의 아쉬움을 덜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한류 스타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며 다시금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양국 관계가 경색되며 중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던 콘텐츠 업계는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시장은 상수(常數)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엄청난 인구를 보유한 유망한 시장이지만, 언제든 정치적 이슈로 인해 교역망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중국은 변수가 너무 큰 시장이고, 그 변수를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국가 차원의 조치가 이뤄지면 민간에서는 활로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한류 콘텐츠 업계에서도 중국 시장은 계산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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