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는 극장에서, 스토리 영화는 OTT로…확 바뀐 관람 방식 충무로 시장 축소로 이어질 듯
하지만 낙관하긴 이르다. 언제든 대중은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뚝 끊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싼 관람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범람 속, 대중의 영화 관람 행태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심심한 데 영화 한 편 보자”는 이제 옛말이다. 이제는 옥석을 가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볼만한 ‘똘똘한 한 편’을 골라보는 문화가 형성됐다.
#‘똘똘한 한 편’의 시대
‘범죄도시3’는 5월 31일 개봉해 불과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 605만 명을 동원했다. 특히 개봉 첫 주말의 위력은 대단했다. 6월 2∼4일 사흘 동안 281만 7238명을 모았다. 이 기간 극장 점유율은 무려 87.6%였다. 같은 기간 2, 3위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와 ‘포켓몬스터’의 점유율은 각각 2.9%, 2.1%에 그쳤다. 극장을 찾은 관객 10명 중 약 9명이 ‘범죄도시3’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범죄도시3’는 ‘1일=100만’ 시대도 다시 열었다. 3일 하루에만 116만 2578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4일에도 107만 2180명을 모았다. 볼만한 영화가 있다면, 하루에 1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여전히 극장을 찾을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범죄도시3’의 성공을 기점으로 충무로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범죄도시3’는 휴일이었던 6일에도 84만 명을 추가로 모으며 600만 고지를 밟았다. 같은 날 개봉된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의 스코어는 21만 1239명이었다. 반면 3위 ‘포켓몬스터’(4만 172명), 4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2만 6371명)의 성적은 미미했다. 결국 최근 충무로의 성공은 곧 ‘범죄도시3’의 성공이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이 개봉 당일 ‘휴일 효과’를 누렸지만 지속적인 성과라 보기는 어렵다.
이는 예매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7일 오전 9시 현재 예매율 순위를 보면, 여전히 ‘범죄도시3’(51.9%)가 1위다.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13.8%)가 2위에 올랐지만 1위와 격차가 크다. 14일 개봉을 앞둔 ‘플래시’는 DC코믹스를 원작으로 삼은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지만 13% 수준이다. 두 영화의 예매 관객수를 합쳐도 8만 명 남짓이다. ‘범죄도시3’의 상영이 끝나면 여전히 극장가는 흉작이라는 의미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범죄도시3’의 성공과 더불어 온갖 핑크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기대치는 오히려 ‘범죄도시3’ 상영 종료 후 상대적 박탈감을 키울 뿐”이라고 꼬집으며 “언론 역시 ‘범죄도시3’의 반짝 성공에 기대 긍정적 기사만 양산해서는 안 된다. ‘똘똘한 한 편’을 고르는 관객들의 관람 행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충무로의 시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쏠림 현상 얼마나 심각한가
2023년 상반기 박스오피스를 살펴보면, 충무로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범죄도시3’를 제외하면 상반기 개봉흥행 톱10 안에 든 한국 영화는 단 2편뿐이다. 그나마도 흥행 순위는 8위와 10위다. 게다가 채 200만 관객을 모으지도 못했다. ‘교섭’이 172만 명이고, ‘드림’은 112만 명이다. 두 영화가 각각 현빈, 박서준·아이유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참여한 것을 고려하면 위기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빈자리는 외화가 메웠다. ‘스즈메의 문단속’(552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468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410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37만), ‘존 윅4’(192만),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173만) 등이 2∼7위를 석권했다. 이 영화들의 특징은 영상미가 빼어난 애니메이션이거나 블록버스터급 시리즈라는 점이다. 반면 ‘교섭’이나 ‘드림’은 볼거리보다는 스토리로 승부한다.
또 다른 충무로 관계자는 “극장 스크린과 스마트폰 화면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대중은 ‘스토리 위주 영화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OTT로 즐겨도 무방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반면 대형 스크린으로 볼 때 그 쾌감이 배가되는 블록버스터나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보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범죄도시3’ 역시 강력한 액션과 주인공 마석도가 상대방을 제압할 때마다 커다란 파열음을 효과로 사용해 ‘보는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개봉된 대부분 한국 영화는 100만 명 미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드림’의 뒤를 잇는 ‘대외비’가 75만 명 수준이다. 이어 ‘리바운드’(69만), ‘유령’(66만), ‘스위치’(42만), ‘카운트’(39만), ‘웅남이’(31만)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대부분이 코믹 장르 소품에 가깝다. 스릴러적 요소가 높은 ‘대외비’나 ‘유령’ 역시 볼거리가 많은 작품은 아니다.
앞서의 영화계 관계자는 “코믹 ‘극한직업’으로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이병헌 감독의 신작 ‘드림’이 112만 명에 그쳤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뻔한 장르로는 더 이상 관객을 유혹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2019년 극장가가 최고점을 찍은 후 코로나19가 극장에 가지 않는 문화를 이식했다면, OTT가 이를 가속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경제 침체와 팍팍한 살림 속에 ‘똘똘한 한 채’의 아파트를 갖듯, ‘똘똘한 한 편’에 올인하는 관람 문화에 맞춘 기획과 제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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