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전 의원이 지난 10일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최근 이 전 의원이 대선을 전후로 기업인 등으로부터 수십억대의 돈을 모금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MB 캠프의 돈 창구 역할을 했다. 대선자금의 규모 및 사용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이 전 의원 한 명뿐이라는 얘기도 정설로 통한다. 당선이 거의 확실시됐던 이명박 대통령의 ‘형님’이자 캠프의 핵심 멤버였던 이 전 의원에게 각계의 후원이 쇄도했던 것은 당연지사. 특히 금융권과 재계는 ‘보험용’으로 상당한 액수의 ‘실탄’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승리 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기업들이 최고 실세로 부상한 이 전 의원 측에게 줄을 대기 위해 거액의 돈을 건넸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검찰이 대선자금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할 경우 그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신한은행이 이 전 의원에게 줬다는 3억 원 역시 그 시기가 2008년 2월경이라는 점에서 ‘당선 축하금’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이 대통령 취임식 엿새 전인 2008년 2월 19일 새벽 남산자유센터 주차장에서 이 전 의원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 트렁크에 3억 원이 담긴 돈 가방 3개를 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일부 드러났다. 신 전 사장 횡령액이라고 주장한 15억 가운데 이 전 의원에게 건네졌다는 3억 원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남산에서 돈을 줬다는 것까지는 밝혀냈다. 그러나 그 돈을 누가 받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었다”고 귀띔했다. 다만 서초동 주변에서는 사라진 3억 원의 종착지가 이 전 의원일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검찰이 알고도 덮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검찰은 뒤늦게 드러난 3억 원 행방과 관련한 재수사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직접적인 목격자 혹은 명백한 증거가 나오거나 당사자인 이백순 전 행장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확인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새로 조사를 시작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7월 27일 열리는 신한은행 사태 공판에서 새로운 진술이 나올 경우 재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야권 역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야당 원내대표(박지원)에 대한 집요한 수사 의지와 너무 다르다. 수사결과를 미리 조율해 놓고 정해진 것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면서 “검찰이 진실을 밝혀낼 의지만 있다면 증언을 한 신한은행 관계자들을 찾아내 ‘당선 축하금’ 전달 의혹에 대해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신한은행발 대선자금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일요신문>은 또 다른 이 전 의원의 돈 수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난 2007년 MB 캠프에 몸담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7월 1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전 의원 측이 (신한은행이 은밀히 돈을 전했다는 장소로 알려진) 남산 순환도로에서 적어도 20여 차례 이상 금융권·대기업 관계자들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마다 2억~3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총액은 수십억 원에 달할 것이다. 이 돈이 대선캠프 운영비 등으로 쓰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대선 당시 정치권과 재계 주변에서는 “이 전 의원 측이 남산순환도로를 접선 장소로 택하고 여기서 대선자금을 받고 있다. 비상등이 세 번 깜빡이면 차 트렁크를 열고 거액이 담긴 가방을 넣고 오면 된다”는 소문이 나돈 바 있는데, 이것이 사실일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이 전 의원에게 돈이 쏠렸던 시기는 MB가 당선자 시절이던 2008년 1~2월 사이라고 한다. 관례로 알려져 있는 소위 ‘당선 축하금’ 명목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외곽 단체 선진국민연대 출신 A 씨가 핵심 고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 10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주도해 만든 선진국민연대는 ‘1인당 3명씩, 500만 표 승리’라는 소위 ‘135 운동’을 전개하며 460만 명의 회원을 모아 대선 승리에 큰 공을 세운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여러 번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500만 표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국민연대 때문”이라며 그 공로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직후 당선 축하연에서도 이 대통령은 “선진국민연대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선진국민연대는 일부 인사들의 이권 개입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선진국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강욱 씨는 2008년 11월 실버타운 인허가를 받아주겠다며 사업자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같은 시기에 터진 노드시스템 주식 사기사건에도 몇몇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3월 ‘청와대 성접대 파문’으로 물러난 행정관 역시 선진국민연대 소속이었다. 특히 선진국민연대는 정권 초반 금융권과 공기업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 알려져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갔다는 의혹도 대두됐었다. A 씨가 기업 및 금융권과 이 전 의원 측의 돈 거래 ‘주선자’ 역할을 했다면 어떤 ‘대가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MB 캠프 출신 여권 관계자는 “A 씨가 캠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비선라인(이 전 의원 측)에서 은밀히 돈과 관련된 일을 수행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대선이 끝난 후 A 씨가 금융권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신한은행에서 촉발된 대선자금 파문의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갔다. 여전히 ‘수사 불가’ 기류가 강하지만 미묘한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새로운 진술이 나온 이상 신한은행 측과 이 전 의원 사이에 이뤄졌던 석연치 않은 거래를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내부에서는 “정권 말인데 눈치 볼 게 뭐 있느냐”며 이 전 의원을 둘러싼 대선자금 전반에 대한 강경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대선자금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전 의원이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용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은 맞다. 이게 대선에 쓰였다면 그게 대선자금 수사가 될 수는 있다”면서 “이 전 의원이 임석 회장과 신한은행 외에도 돈을 받았다는 정황이 나오면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