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2010년 신한은행 내분 사태 때 제기됐던 이른바 ‘남산 3억 원’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2008년 2월 남산에서 성명불상자에게 3억 원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확인에 나선 것이다. 이번 수사에 ‘남다른’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그동안 3억 원의 종착지가 대통령 ‘형님’ 이상득 전 의원으로 지목됐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지난 정권 사정 기류와 맞물려 검찰이 수사 강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검찰은 MB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비자금 부분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검찰이 지난 2010년 불거졌던 ‘남산 3억 원’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돈 종착지로 지목됐던 이상득 전 의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남산 3억이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을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부터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08년 2월 19일 새벽 신한은행 임원이 남산의 한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 트렁크에 3억 원이 들어있는 돈 가방 3개를 실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그 후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이백순 당시 신한지주 부사장이 ‘라응찬 회장 지시’를 받고 신상훈 전 사장으로부터 3억 원을 조달해 이명박 정부 실세에게 건넸다는 사실이 드러나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비상등 3번 깜박이면 트렁크 열어라’
정치권에서는 이 3억 원이 이상득 전 의원 측에게로 전해졌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실제로 “이 전 의원에게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신한은행 관계자 진술도 나왔다. 3억 원 조성 과정에 관여했던 한 은행 직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의원 측에게 간 3억 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은 ‘이 전 의원 측이 돈을 받기 위해 신한은행을 포함해 20여 차례 이상 금융권·대기업 관계자들과 만났고, 접선 방법으로는 남산의 한 주차장에서 자동차 비상등을 세 번 깜빡이는 식’이라고 보도(지령 1054호)한 바 있다.
2010년 당시 검찰은 3억이 누구에게로 흘러들어갔는지 수사에 착수했지만 밝혀내진 못했다. 돈을 담기 위해 구입했던 가방의 전표까지 확보하긴 했지만 이백순 전 행장이 입을 닫았고 목격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찰은 “돈을 받은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없고 라 전 회장이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선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정권 최고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 ‘눈치’를 봤다는 것이다. 라응찬 전 회장과 이 전 의원 실명이 오르내렸던 상황에서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파헤칠 수 있었던 사안이라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었다.
꺼져가던 3억의 불씨는 얼마 전 한 시민단체가 다시 지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월 5일 라응찬 전 회장(업무상 횡령․배임, 정치자금법, 금융지주사법 위반)과 이상득 전 의원(정치자금법 위반)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제개혁연대 측은 남산 3억에 대해 ‘지시자’ 라응찬-‘보고받은 자’ 신상훈-‘배달자’ 이백순의 공모로 ‘최종 행선지’ 이상득에게 전달된 불법 정치자금인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면서 검찰은 라 전 회장과 이 전 의원을 즉시 기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신한은행 사태 1심 판결문 등을 분석해 검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한 부분을 면밀해 검토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남산 3억’ 지시자로 꼽히고 있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라 전 회장의 건강한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키맨’ 라응찬, 정상적 활동 목격돼
검찰은 이 사건을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김한수)에 배당했다. 지난 2010년 신한은행 사태를 맡았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장검사를 비롯해 일부 인원들이 교체돼 새로 시작하는 수사나 다름없다는 평이 나온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고발장이 접수됐고, (신한은행) 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만큼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3억 원의 용처에 대해서 파헤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검찰은 그동안의 진술과 재판 등을 종합해봤을 때 이 전 의원이 3억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물증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을 수사 대상으로 올려놓은 셈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라 전 회장 조사 여부에 따라 남산 3억 원에 대한 수사 성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2010년 수사에서 라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며 참고인 조사에 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에는 라 전 회장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라 전 회장의 건강한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다. 어떤 식으로든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법원 역시 신상훈 전 사장 공판 과정에서 “라 전 회장이 직접 운전을 하며 헬스클럽에 다니거나 사무실에서 책을 보는 등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금융당국 협조를 받아 라 전 회장 비자금을 살펴보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라 전 회장이 차명으로 갖고 있는 계좌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고, 여기서 조성된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도 라 전 회장이 지난 십 수 년 동안 차명계좌를 만들어 거액의 비자금을 만들어 정치권 등을 상대로 로비에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라 전 회장 조사를 통해 남산 3억 원뿐 아니라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확인할 방침을 세운 상태다.
‘당선축하금’에서 ‘대선자금’으로?
정치권에서는 남산 3억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이 전 대통령에게로까지 ‘불똥’이 튈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3억이 ‘당선 축하’ 성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전 대통령 ‘대선자금’ 문제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사를 통해 라 전 회장의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 경우 이 전 의원뿐 아니라 지난 정권의 또 다른 인사들이 다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관계와 금융권 인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라 전 회장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 실세들과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일각에서는 경제개혁연대 고발로 시작된 검찰 재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번 수사가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또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 정부가 이명박 정권과의 고리를 끊으려 하는 움직임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재’를 놓칠 리 없다는 것이다. 검찰 전직 고위 간부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검찰은 정치적인 판단에 뛰어난 조직이다. 남산 3억 원 수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