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5명 타자 1명 교체…한화 산체스 맹활약 등 평가는 ‘일단 합격’
그러나 출발을 함께한 외국인 선수 셋과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를 수 있는 건 일부 구단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매년 그랬듯, 올해도 부상으로 개점휴업하거나 극심한 부진으로 전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선수가 적잖이 나왔다. 그럴 때면 구단들은 더 큰 고민에 빠진다. 시즌 도중 에이스나 4번 타자를 맡길 만한 선수를 찾아내기 쉽지 않고, 대체자를 구한다 해도 새로운 환경에 빠른 속도로 적응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SG 랜더스,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 KT 위즈, 한화 이글스 5개 구단은 기존 외국인 선수를 웨이버 공시하고 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뒤늦게 대체 선수로 합류한 5인의 투수는 지금까지 일단 "잘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순위 전쟁에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대체 선수도 구관이 명관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은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 종종 유용한 팁으로 작용한다. 두산과 KT는 낙오자가 발생하자 빠르게 KBO리그 경력자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두산은 6월 8일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던 딜런 파일을 내보내고 13일 브랜든 와델을 총액 28만 달러에 다시 데려왔다. KT도 6월 9일 보 슐서를 방출하면서 2021년 창단 첫 통합 우승의 주역인 윌리엄 쿠에바스를 총액 45만 달러에 재영입했다.
딜런은 올 시즌 두산의 애물단지였다. 지난해 11월 총액 65만 달러에 두산 유니폼을 입었지만, 스프링캠프 막바지 연습경기에서 타구에 머리를 맞는 불운을 겪었다. 꽤 오래 후유증을 겪다 간신히 회복한 뒤 5월 4일 잠실 한화전에서 KBO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2경기에서 1패에 평균자책점 8.00을 남기고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오른쪽 팔꿈치 안쪽 굴곡근 염좌 진단을 받아 다시 재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좀처럼 팔꿈치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딜런은 결국 방출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두산은 딜런이 재활을 시작한 5월 중순부터 즉시 영입할 수 있는 대체 선수 후보군을 추렸다. 심사숙고 끝에 대만 프로야구 라쿠텐 몽키스에서 뛰고 있는 브랜든에게 연락해 빠르게 빈자리를 메웠다. 브랜든은 지난해 7월 총액 23만 달러에 아리엘 미란다의 대체 선수로 두산에 왔던 경험자다. 11경기에서 5승 3패 평균자책점 3.60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지만, 재계약은 하지 못하고 대만으로 갔다. 그러나 올해 두산의 S.O.S에 응답하면서 2년 연속 대체 선수로 한국에 오는 이색 기록을 남기게 됐다.
지난해 해설위원 신분으로 브랜든의 투구를 본 두산 이승엽 감독은 "그때는 딱히 인상적인 투수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까 구속도 시속 150㎞까지 나오고 변화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더라. 스트라이크를 모든 구종으로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이어 "올해는 미국이 아닌 대만에서 오는 거라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안 걸릴 것 같다. 또 작년에는 선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올해는 대만에서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다 왔다. 두산에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자 발급 절차를 거친 브랜든은 6월 24일 고척 키움전에서 복귀 신고를 했다. 비록 타선의 침묵에 패전투수가 됐지만 6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1자책)으로 잘 던져 두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브랜든의 합류로 여름이 돼서야 온전한 외국인 원투펀치를 구축한 이 감독도 모처럼 활짝 웃었다.
#돌아온 '우승 영웅'
KT는 부진을 이유로 교체를 단행했다. 지난 3년간 함께한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재계약하지 않고 총액 74만 달러를 들여 외국인 투수를 교체했지만, 슐서가 9경기에서 1승 7패, 평균자책점 5.62로 흔들리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이다. KT가 시즌 초반 예상치 못하게 하위권을 맴돌며 고전한 데는 슐서의 난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KT는 5월 이후 팀이 다시 궤도에 오르면서 중위권 싸움을 시작하자 곧바로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KBO리그 복수 구단과 치열한 경쟁 끝에 쿠에바스를 다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2022시즌 도중 부상으로 KBO리그를 떠난 쿠에바스는 올 시즌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A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에서 11경기(선발 9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평균자책점 6.14를 기록 중이었다.
쿠에바스는 이미 KBO리그에서 검증이 끝난 정상급 외국인 투수다. 2019년 KT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통산 4시즌 동안 82경기에서 33승 23패,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했다. 특히 2021년엔 35년 만에 성사된 삼성 라이온즈와의 타이브레이커(2개 팀이 동률로 정규시즌 공동 1위에 오를 경우 단판 승부를 통해 승자를 가리는 경기)에서 사흘 만에 다시 선발 등판하는 투혼으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해내며 우승에 확실히 기여했다. 그해 가을의 쿠에바스는 KBO리그 최강의 에이스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두산과 마찬가지로 쿠에바스를 다시 데려온 KT의 결단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쿠에바스는 6월 17일 수원 삼성전에서 4⅔이닝 3실점으로 예열을 마쳤다. 이어 23일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를 만나 6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쿠에바스의 합류로 KT는 웨스 벤자민-쿠에바스-고영표-엄상백-배제성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선발 로테이션을 구축했다.
돌아온 쿠에바스는 실력과 더불어 멘탈도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전엔 종종 돌발행동을 하는 천방지축 과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진중한 태도까지 갖춘 1선발로 거듭났다. 이강철 KT 감독은 "예전과 달리 쿠에바스에게 연륜이 느껴진다. 엄청 진지해졌다. 자신의 볼 배합을 고집하지 않고 포수의 사인대로 던진다"며 "우리와 결별하고 미국에서 뛰면서 많은 걸 느낀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긍정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복덩이'가 들어왔다
처음 KBO리그에 왔지만 빠르게 적응하면서 단숨에 '복덩이'로 거듭난 외국인 투수도 있다. 한화 리카르도 산체스다. 한화는 개막전에서 어깨를 다친 버치 스미스를 지난 4월 내보내고 연봉 40만 달러에 산체스를 영입했다. 지난해 말 새 외국인 선수 몸값 총액 상한선인 100만 달러를 받고 한화와 계약했던 스미스는 당초 선발진을 이끌 에이스 감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와 3분의 2이닝 동안 공 60개를 던진 뒤 올 시즌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먼저 KBO리그를 떠나게 됐다. 선수 생활 내내 문제가 됐던 부상에 또 한 번 발목을 잡힌 탓이다.
그 자리를 메우러 온 산체스는 26세의 젊은 왼손 투수다. 패기를 앞세운 공격적인 피칭으로 한국에 오자마자 한화 팬과 코칭스태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8경기에 등판(이하 6월 29일까지 성적 기준)해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48를 기록했을 정도다. 산체스는 5월 11일 대전 삼성전에서 KBO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기복 없는 꾸준함으로 팀을 안심시켰다.
산체스는 특히 지난 10일 대전 LG 트윈스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가장 인상적인 투구를 했다. 3회 폭우가 쏟아져 경기가 43분이나 중단됐는데도, 공 112개를 던지면서 삼진 8개를 잡아내는 괴력을 뽐냈다. 23일 창원 NC전에선 3회 박건우의 타구에 팔뚝을 맞고도 5회까지 버텨내 박수를 받았다. 무엇보다 한화는 산체스가 등판한 첫 8경기에서 7승 1무를 기록해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무승부로 끝난 16일 대전 키움전도 0-2로 끌려가다 경기 후반 뒷심을 발휘하며 패전을 피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산체스는 투구 템포가 빠르고 스트라이크를 공격적으로 던진다. 그 덕에 야수들의 공격력도 상승하는 것 같다"며 "한국에는 왼손 타자 몸쪽을 공략하는 왼손 투수가 거의 없는데, 산체스는 (그렇게) 할 줄 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코스 활용을 많이 연구한 듯하다"고 흐뭇해했다. 손혁 한화 단장도 "산체스가 공격적으로 투구해 좋은 결과를 얻는 걸 보면서 (기존 외국인 투수) 펠릭스 페냐도 더 자신감 있게 공을 던지게 된 것 같다. 두 투수가 서로 도움을 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됐다"고 귀띔했다.
선두 SSG가 데려온 왼손 투수 로에니스 엘리아스의 구위도 위력적이다. 쿠바 출신 엘리아스는 부상으로 한 경기도 못 던지고 떠난 애니 로메로의 대체 선수로 지난 5월 4일 한국에 왔다. 계약 규모는 총액 54만 달러. 그 후 6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4.00을 기록했다. 산체스만큼 빠른 적응 속도다.
6월 24일 인천 삼성전에서 5이닝 6실점으로 부진해 평균자책점이 4점대까지 치솟았지만 저력은 이미 보여줬다. 지난 5월 31일 삼성전과 6월 6일 KIA전, 13일 KT전에서 잇따라 7이닝을 던지면서 3실점 이내로 막아냈다. 특히 KT전에선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안타 3개만 맞고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는 위력을 뽐냈다. KIA전에서는 7회 말 엘리아스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 KIA 측이 글러브 안에 이물질이 묻었는지 검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검사 결과는 이상 무. 엘리아스의 공이 그만큼 위력적이었다는 방증이었다. 엘리아스가 6월 초중반의 위력을 남은 시즌에도 이어간다면, SSG는 LG와의 치열한 선두 경쟁에서 확실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요키시 후임자는 누구?
키움은 장수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와 작별하는 큰 결단을 내렸다. 요키시는 2019년 키움에 입성한 뒤 매년 꾸준하게 10승 이상을 올리고 지난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KBO리그 정상급 외국인 투수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5년 차인 올해 12경기에서 5승 3패, 평균자책점 4.39를 남긴 뒤 왼쪽 내전근이 파열돼 짐을 쌌다. 복귀까지 6주가 걸린다는 소견이 나오자 키움은 결국 방출을 택했다. 치열한 5강 싸움 중이라 마냥 회복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키움은 다른 구단과 달리 미국 독립리그에 스카우트를 파견해 대체자를 물색했고, 왼손 투수 이안 맥키니를 찾아내 18만 5000달러에 계약했다.
맥키니는 올 시즌 독립리그 8경기에서 4승 1패, 평균자책점 4.24를 기록하면서 투수코치도 겸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키움은 "전력 분석 데이터를 폭넓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6월 25일 고척 두산전에 선발 등판해 KBO리그에 첫선을 보였다. 성적은 4이닝 5피안타 3볼넷 2탈삼진 2실점. 압도적인 기록은 아니었지만, 입국 일주일도 안돼 데뷔전을 치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외국인 타자도 바꿨다
한화는 산체스와 함께 외국인 타자도 바꿨다. 올 시즌 22경기에서 타율 0.125, 8타점으로 침묵한 브라이언 오그레디와 결별하고 총액 45만 달러를 들여 새 타자 닉 윌리엄스를 영입했다. 윌리엄스는 최근 2년간 미국이 아닌 멕시칸리그를 폭격하면서 한화의 레이더에 포착됐다. 토로스 데 티후아나 소속으로 지난해 타율 0.370, 홈런 29개, 72타점을 올려 타격 각 부문 상위권에 고루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에도 타율 0.340, 홈런 9개, 28타점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 한화의 러브콜을 받았다.
윌리엄스는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외야수다. 중견수 문현빈, 우익수 이진영이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라 한화는 윌리엄스를 좌익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윌리엄스는 오자마자 기량과 인성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외국인 선수는 기량만큼이나 한국 리그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이 중요한데, 윌리엄스는 금세 팀에 잘 녹아들고 있다"며 "여러 모로 조짐이 좋다.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타격도 더 낫고, 포구 능력도 뛰어나다"며 "타격할 때 파워는 다소 부족하지만, 타격 메커니즘은 (NC에서 뛰다 메이저리그로 갔던) 에릭 테임즈와 비슷한 것 같다. 공을 따라가고 포구하는 모습을 보면 수비 기본기도 잘 돼 있는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실제로 윌리엄스는 홈 팬들에게 첫선을 보인 6월 27일 KT전에서 그림 같은 호수비로 갈채를 받았다. 28일에는 적극적인 베이스러닝을 앞세워 KBO리그 첫 안타를 2루타로 장식하는 등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한화는 이 경기에서 3년 9개월 만의 6연승에 성공했다. 손 단장은 "팬들이 (첫 경기에서) 윌리엄스가 안타를 못 쳤는데도 매 타석 박수를 보내주셨다. 윌리엄스도 그 덕분에 힘을 얻어서 더 의욕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한화에 오면서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이 달던 등번호 3번을 택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이 가장 좋아했던 숫자라서다. 그는 "코로나19 때 ESPN으로 KBO리그 중계를 보고 한국 야구에 대해 알게 됐다.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며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이 대단하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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